드라마작가 아카데미
고등학교 시절, 내 꿈은 드라마 작가였다. 당시 나의 유일한 낙은 저녁에 가족들과 함께 TV 드라마를 시청하는 일이었다. 항상 학원 숙제에 밀려 저녁에 편한 마음으로 텔레비전을 보는 날은 거의 드물었다. 공부를 하다 쉴 때 잠깐 짬 내서 본 드라마와 그 시간은 너무 나에게 달콤하고 불안 속에서도 평온했다.
책과 글쓰기를 좋아하는 나는 언젠가 드라마 작가가 되어야겠다고 생각했다. 글을 잘 모르는 할머니도, 외할머니도 항상 주말 저녁 드라마는 꼭 챙겨보고 즐거워하셨다. 내가 쓴 드라마가 텔레비전에 나와 사랑하는 사람들이 나의 드라마를 통해 일상을 좀 더 활기차게 보내고 또 울고 웃을 수까지 있다면 그보다 행복한 일은 없다고 생각했다.
대학교 2학년, 드라마 아카데미에 지원했다. 정식 루트는 아니었다. 방송사에서 주관하는 아카데미는 나에게 좀 비쌌다. 아르바이트를 해서 모은 돈으로 다녔기 때문에 액수가 부담되었다. 게다가 나 같은 대학생이 신청해서 수업을 듣고 과제를 하려면 기초반이라고 해도 허들이 높을 것 같았다.
드라마 아카데미를 검색하며 알아보던 중 다른 사설 기관에서 하는 과정이 있었다. 기독교의 가치를 바탕으로 커리큘럼을 구성한 곳이라고 했다. 그 문구를 보자마자 바로 여기다,라고 생각했다. 마침 1회 수강생을 모집하고 있어 내가 첫 제자가 될 수 있었다. 설렜다. 세상적인 드라마가 아닌 선한 영향력을 전파는 드라마를 만들 수 있으리란 기대가 품어졌다.
수강생으론 6명 남짓의 사람들이 모였다. 성별은 모두 여자였다. 각자 어떤 마음으로 아카데미를 신청했는지 이야기 나눴다. 둘은 이미 선생님 밑에서 수학하며 드라마를 배우고 있었고, 한 아이 엄마는 예전부터 드라마 작가의 꿈이 있었는데 용기 내어 도전해보았다고 했고, 가장 연장자였던 싱글 언니는 기기와 관련된 사업을 하고 있지만 무슨 계시 같은 걸 느껴 이곳에 왔다는 소감을 전했다.
그리고 어릴 적부터 드라마 작가의 꿈을 가지고 이제 본격적으로 무언가를 해보려고 꿈틀 거리는 나. 이십 대 초반인 나, 이십 대 중후 반인 언니, 삼십 대인 아이 엄마와 습작생 언니, 사십 대인 싱글 언니로 다양했다. 막내인 나는 크게 무얼 하지 않아도 이해와 사랑을 듬뿍 받았다.
선생님은 KBS 일일 연속극에서 무려 40%를 넘겼던 드라마의 공동 집필 작가였다. 그 드라마는 나도 나름 재밌게 봤던 작품이었다. 이 정도면 선생님에 대한 신뢰는 충분했다. 각자의 사연과 꿈을 가지고 우리는 매주 화요일 혹은 목요일에 모였다.
매 수업에 가는 길이 설렜다. 한 주 한 주 나의 꿈에 다가가는 것 같았다. 희뿌연 하게 원하던 것을 점점 더 선명하게 그려나가는 기분. 당시의 나는 꿈을 먹고 자랐다. 오늘은 어떤 걸 배울까. 배움 못지않게 교제도 모두 충만했다. 먹을 것을 풍성히 나누기도 하고 각자 삶의 고충을 자연스레 이야기하기도 했다. 그리고 다시 드라마라는 주제로 다시 몰두했다.
기초반의 커리큘럼이 끝나는 마지막 주, 그동안 배운 내용을 바탕으로 ‘단막극’을 완성하여 제출했다. 에이포 용지 40장에 달하는 분량이었다. 우리가 흔히 보는 미니시리즈도 아닌 단막극을 얕봤던 나는 큰코다쳤다. 40장은 만만한 분량이 아니었다. 게다가 나 혼자 구성을 하고, 캐릭터를 만들고, 이름을 짓고 이 캐릭터들을 움직여 사건을 만들어나가야 했다.
나는 이 세상의 창조주였다. 인물은 내가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 달렸다. 그들의 생각과 감정, 행동을 결정할 수 있었다. 내 선택 하나하나에 그들의 운명이 달렸다. 쓰기가 두려워졌다. 나는 이들의 행동과 그 결과에 책임을 져야 했다. 기분대로 썼다가 수습이 안 되는 경우도 부지기수였다. 신중해야 했다.
며칠 밤을 새워 극 하나를 완성했다. 주인공도 악역도 모두 내가 창조한 인물들. 그들에게 서사를 부여하고 그들 행동의 이유를 만들었다. 그리고 그들의 운명과 삶의 결과까지도 내 손 끝에서 완성됐다. 내가 창조한 나의 세상을 자랑스럽게 보여주기는 겁이 났다. 완성도가 어쨌든 무언가를 해보고 끝낸 경험은 ‘쓰는 감각’과 이 정도의 분량을 ‘쓰는 근육’을 조금이나 만들어주었다는 점에서 일종의 뿌듯함과 자신감이 생겼다. 나뿐 아닌 다른 이들도 어렵게 어렵사리 완성시킨 극을 통해 행복감을 맛보았다. 분명 쓰는 과정은 고통과 고뇌의 연속이었는데 말이다.
대학교 시절, 나는 꿈 사냥에 적극적이었다. 무엇이 나를 설레고 흥분시키게 하는지, 눈에 불을 켜고 찾아다녔다. 그 과정은 설레기도 좌절스럽기도 했다.
과연 나는 드라마 작가가 되었을까? 단막극에서 넘어가 미니 시리즈 한 편은 썼을까? 그렇지 못했다.
드라마 아카데미는 기초반에서 중급반, 심화반으로 올라갈수록 정체성이 흔들렸다. 드라마에 대한 전문성보단 친목성이 더 강했다. 점점 배울수록 내가 드라마를 정말 좋아하는지, 계속 쓰고 싶은지, 잘하고 싶은지 혼란스러웠다. 이 판에서 내가 살아남을 수 있을까, 라는 자신감 없는 의문도 존재했다.
영원할 것 같았던 드라마에 대한 열정이 끝났을 때의 충격은 컸다. 나는 소심하고 겁이 많다. 그래서 제대로 시작도 하기 전에 발을 뺀 것이다. 열악한 보조 작가 생활, 그리고 지난한 습작생 생활을 견디면서까지 이곳에 헌실 할 만큼 드라마를 사랑하지 않는다는 걸 깨달았다.
그즈음에는 대학에서 문예창작학과 복수전공을 시작했다. 사실 드라마를 그만둔 원인에는 그게 컸다. 나의 관심은 이제 드라마에서 소설로 넘어간 것이었다. 조금 더 어둡고 깊은 이야기를 하기에는 소설이라는 도구가 조금 더 적합하다는 사실을 깨달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