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예창작학과 전공 수업

글쓰기 입문

by 안해



내가 다녔던 대학교에는 문예창작학과가 있었다. 그러고 보면 신기하게도 먼저 합격한 다른 학교에도 문창과가 존재했다. 수시 12개의 원서를 모두 사학과로 지망했지만 나는 결국 문예창작학과를 복수 전공할 예정이 아니었을까.



고등학교 때 두어 번 논술 대회에서 상을 받곤 했지만 나 혼자서 한 번도 제대로 된 글을 써본 적이 없었다. 그러니 당연히 실기 전형 위주인 문창과를 지원할 엄두는 꿈에도 꾸지 못했다. 그때도 역시나 책을 읽는 사람이긴 했어도 글을 쓰는 사람은 아니었다.



사학과 말고 국어국문학과를 지원하고 싶은 생각도 있었으나 문법을 그렇게 배우고 싶지 않았다. 고등학교에 진학하면서 좋았던 건 문과와 이과로 나뉘면서 이제 더 이상 내가 좋아하지 않는 과목을 배우지 않는다는 점이었다. 그 생각은 대학교에 가서도 유효했다. 아니 더욱이 그래야겠다. 앞으로 내 인생을 싫어하는 일을 하면서 살도록 희생시키지 않겠다는 무언의 다짐과 같았다. 그래서 나는 12개의 수시 원서를 모두 사학과로 지원했다.



우리 학교는 복수 전공이 그리 까다로운 편이 아니었다. 손쉽게 시작할 수 있었다. 하지만 그다음이 문제였다. 3학년인 나는 문창과 1학년 수업부터 듣기 시작했는데도 따라가지 못했다. 소설, 시, 희곡 이 중에 시가 가장 난관이었다. 그나마 소설은 어릴 적부터 좋아해 쓰진 않아도 곧잘 읽었고, 뭐 가끔은 좋아하는 연예인이나 나와 친구를 주인공으로 한 연애 소설 등을 초중학생 시절 끄적거린 적이 있었다.



하지만 시는 초등학교 4학년, 한시 쓰기 특별 활동 시간을 마지막으로 ‘시’라는 걸 써본 기억이 없었다. 친구들이 써 온 시를 읽는데, 분명 이건 한글인데 모르는 외국어를 읽는 것처럼 무슨 뜻인지 도통 이해가 되지 않았다. 차라리 영어로 된 문장을 해석하라는 게 더 쉬웠다.



우리 학교 문창과는 대학 정시에서 상위권을 차지하는 학과일 정도로 굉장히 유명하다. 알고 보니 이 친구들은 대부분 예고 출신이거나 공모전 입상을 통해 입학한 아주 특출한 케이스였다. 고등학교 3년 내내 읽고 쓰는 친구들 사이에서, 인문계 고등학교에서 읽고 외우는 일밖에 하지 않았던 나는 모든 것에서 달랐고 이질감을 느꼈다.



방금 말한 대로 그 친구들은 외우는 거라면 딱 질색했다. 자신이 가지고 있는 느낌과 생각을 아름다운 한 편의 작품으로 표현해해는 데 익숙한 이들은 달달달 암기하여 시험을 보는 주입식 교육에는 익숙하지 않았다. 사학과는 반대였다. 교수가 넓은 칠판에 빼곡히 판서를 하면 그것을 한 글자라도 놓칠까 팔이 빠지도록 필기를 한 후 나중에 그것을 외워 시험 보는 형식이었다.



또한 우리는 수업 시간에 교수가 앞에 나와 모든 걸 쏟아내고 이야기하는 반면, 문창과 수업에서는 각자가 써 온 글이나 작가들의 작품을 읽고 함께 생각을 나누는 시간을 가졌다. 그 수업 방식은 내게 굉장히 충격을 안겨주었는데, 그건 글공부가 아니라 마치 인생 공부처럼 느껴졌기 때문이었다. 인물들이 왜 이렇게 말을 하고 행동했는지 이야기하면서 나도 모르게 인간에 대한 이해도가 높아졌다. 그것은 창의적이면서도 논리적이었다. 각 인물의 말과 행동에는 다 이유가 있었다. 사랑, 우정, 질투, 미련, 후회 등 인간이 느낄 수 있는 감정에 자연스레 공부했다.



이렇게 작품을 통해 인간사를 탐구하다 보니, 어릴 적부터 늘 숙제였던 ‘관계’라는 엉켜있던 실타래까지 술술 풀렸다. 소설 속 인물들의 감정을 되짚고 따라가면서 서운하고 화나고 슬펐던 나의 감정들과 상대의 감정들이 이해가 됐다. 수학 공식을 풀듯이 명쾌했다. 요즘 심리학 트렌드인 ‘모든 감정은 다 옳다’라는 명제를 나도 모르게 받아들인 셈이었다.



이게 학교 수업이라고? 말도 안 됐다. 한 번도 학교 수업에서 삶에 대해 심도 깊이 이해하고 느껴본 적도 없었다. 평생 강단에 선 누군가가 자신이 알고 있는 지식을 양껏 전달하고 그것을 벅차게 흡수하기 바빴던 나의 수업과는 너무 달랐다. 마치 영화 죽은 시인의 사회의 로버트 윌리엄스가 학생들에게 다른 각도에서 끊임없이 사물을 바라봐야 한다고 책상 위에 올라가는 모습을 바라볼 때 같았다.



이 사람들은 이 좋은 걸 매일 아무렇지 않게 누려왔다니, 여태 나는 이 풍성하고도 감미로운 세계를 모르고 살아왔다니 새삼 너무 부럽고 질투가 나는 동시에 댕~ 하게 머리를 세차게 맞은 기분이었다.



문창과 수업은 글을, 문장을 잘 쓰는 수업이 아니라 세상을 이해하는 수업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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