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년 전 제주살이의 기록을 재편집하였습니다.
지난주에 우연을 가장하여 나타난 인연, 강순덕이모님과 함께 우도에 가는 날이에요. 세명의 딸을 가진 멋쟁이 70대 '이모!'. 이모님의 셀프소개입니다.
떨려요, 우도는 처음이에요. 배를 타고 가야 해서 혼자 다녀올 생각이었는데 오늘따라 겨울이의 분리불안 증상이 심해서 혼자 두고 나갈 수가 없어서 동행했습니다. 겨울이도 가자, 우도! 이렇게 우리 셋은 버스를 타고 성산에 있는 선착장에 도착했어요. 강순덕 이모님의 고향으로 출발. 강순덕 이모님의 친동생이 운전하시는 배를 타고 시원한 바닷길을 헤엄칩니다. 태풍이 오고 난 뒤라 파도가 잔잔하고 자외선은 굉장히 강해 윤슬이 더 화려하게 빛을 내고 있네요.
우리는 우도를 걸었어요. 여기저기서 바이크가 달리는 사이를 여유로이 걸었어요. 걸어가는 길목에 정좌가 있어 잠시 해님을 피해 앉았어요. 간식을 꺼내 먹으니 선선한 바람이 우리를 스칩니다. 서로의 살아온 이야기가 아주 자연스럽게 나왔어요. 시원하고 나른한 기분이 마음의 자물쇠의 열쇠가 된 듯, 이야기가 술술 나오네요.
산에 올라가자는 이모를 말려 카페로 갑니다. 우도에 왔으니 땅콩 아이스크림은 먹고 가야 하는 거 아이겠습니까. 겨울이는 뻗었습니다. 배를 탄 게 피곤한 모양이에요. 행복하네요. 사랑스럽게 자는 겨울이가 옆에 있고 소녀가 되어 재잘재잘 수다쟁이가 된 강순덕이모님이 귀여워서, 웃음이 끊기질 않아요. 우도에서 살아온 이야기를 우도에서 듣고 있으니 다큐멘터리를 보는 것 같아요.
이제 배를 탈 시간이에요. 마지막 배를 타고 육지? 아니 다시 섬으로 나갑니다. 우도는 관광객이 다 빠진 다음 날의 아침이 가장 아름답대요. 언젠가 한 번 꼭 그 아름다움을 보겠다는 약속을 하고 배를 탑니다. 이번에는 혼자예요. 이모는 아래에서 제게 손을 흔들어줍니다. 우리 다시 만날 수 있을까요? 그렇지 않더라도 건강하세요. 훗 날 오늘을 기억하게 될 거예요. 우리가 함께 걸으며 눈으로 찍어온 기억이란 사진이 서로의 마음속 어딘가에 있을 거예요. 그때마다 안부를 물을게요. 건강하시죠?
제주의 4계절은 단조로워요. 가을에 오셔도 푸른 나무들을 많이 보실 거예요. 단풍이 심어진 곳이 흔하지 않아 낙엽이 떨어진 거리를 걷는 게 참 특별합니다. 서울의 가을은 참 예뻐요. 단풍이 날리고 은행잎이 바닥에 카펫이 되어 금빛을 내죠. 꼭 클램트의 그림 같아요. 가을이 생소합니다. 색의 변화가 없다고 가을 같지가 않다는 단순한 생각들이 웃겨요.
출근을 하고 도서관에서 책을 빌리고 맛있는 한 끼를 직접 만들어 먹는 일상을 보냅니다. 뭘 해야 할 것 같은데라는 생각에 반강제로 나갔다 오면 늘 잘했다는 생각이 들어요. 핸드폰에 저장돼 있는 카페를 찾아갑니다.
겨울이 와 함께 갈 수 있는 곳, 전국에서 유일한 곳, 내 취향을 저격할 수 있는 곳들은 집에 가기 싫을 만큼 나를 붙잡는 힘이 그 안에 있습니다. 별 것 아닌 취미가 잠들 때까지 행복의 양을 만들어줍니다. 오늘도 행복을 안고 잠에 듭니다.
2022.10.10
6화 En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