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상록》,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_제5권 10.
그 중 하나는 보편적 자연에 부합하지 않는 일은 내게 절대로 일어나지 않으리라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신과 내 안에 있는 신성을 거스르는 일을 하지 않을 수 있는 능력이 내게 있다는 것이다. 나를 강요해서 신과 신성을 거스르게 할 수 있는 자는 아무도 없기 때문이다.
-《명상록》,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_제5권 10 중에서
밤 사이 호우특보가 발효되어 있었다.
창밖을 보니 비 온 흔적만 있고 오고 있지는 않았다.
늦은 아침을 먹고, 아이들 방학 숙제를 봐줬다.
독서록과 일기에서 틀린 글자를 일러주는데 글씨가 엉망이다.
쓰기 싫어서 대충 쓰고, 빨리 끝내고 싶어서 날려 쓰는 글을 못 본다.
지금 글씨체가 어른까지 갈까 봐 걱정된다.
글도 마음이고 태도고 얼굴이라 여기기에 바르게 쓰라고 한다.
아이들이 티비 보는 동안 나는 책상 앞에 앉았다.
앞이 뿌예질 정도로 비가 쏟아진다.
쏴아아 소리가 난다.
양동이로 들이붓는 것 같다가도 조금 오고, 그쳤다가 다시 내리기를 반복 중이다.
세 시가 넘으니 어린이집과 유치원에서 하원하는 엄마와 아이 모습이 보인다.
조금 전, 선우와 윤우를 혼냈다.
윤우가 가지고 놀던 장난감을 은서가 가져간 모양이다.
"아 씨!"라는 말이 크고 또렷하게 들렸다.
"정윤우! 이리 와!"
윤우가 인상을 잔뜩 찡그린 채 내 앞에 섰다.
오전에는 글씨 때문에, 오후에는 말 때문에 꾸중을 듣는다.
글이 내 마음이고 얼굴이듯 말도 똑같다고, 잘못된 행동인 걸 말해줘도 아직 세 살은 모를 때라고, 너도 그랬었다고, 모르니까 화내고 소리치지 말고 계속 알려줘야 한다고, 은서도 다 듣고 따라 한다고.
눈물을 뚝뚝 흘리며 듣던 윤우는 그 길로 제 방에 가서 잔다.
선우에게도 은서한테 소리치거나 화내지 말고 알려주라고 불러서 얘기했다.
아직 방학 중인 아들 둘과 24시간 함께 하는 딸.
거실은 광범위하게 어질러져 있다.
내 마음도 정리되지 않은 채 어지럽다.
아이를 혼낸 뒤엔 더 그렇다.
비가 내 마음대로 내렸다 그쳤다 할 수 없듯이 아이들도 마음대로 이래라저래라 할 수 없다.
동생에게 양보하기보단 이해를 해달라 한 건데 강요처럼 들렸을까.
아이를 키우며 자주 드는 생각이 있다.
나는 가르치는 데는 형편없구나.
어느새 막내도 잠들어 집이 조용해졌다.
선우가 듣는 CD 소리와 쌔애애 돌아가는 선풍기 소리, 투둑투둑 떨어지는 빗소리만 들려온다.
가만히 창밖을 본다.
내게 일어나는 모든 일에는 의미가 있을 거라고, 오늘 있었던 일들도 그럴 거라고 생각한다.
세 아이 엄마로, 글 쓰는 나로 살아가는 게 내 마음대로 되지만은 않는다.
하지만 하루라는 시간이 쌓여 나는 존재하고, 존재하는 시간 동안 조금씩 나아진 나로 존재할 거라 믿는다.
어떤 의미를 부여하며 살아가느냐가 나와 시간에 대한 가치를 만든다.
매일 《명상록》을 필사하고 떠오르는 생각을 함께 적고 있습니다.
제1권~ 제4권은 네이버 블로그에 올려져 있습니다.
https://m.blog.naver.com/ahjahj100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