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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anibooks Feb 24. 2018

[리틀 포레스트]

일본 만화 '리틀 포레스트'의 한국판 리메이크는 어떻게 다른가

리틀 포레스트

영화 리틀 포레스트는 동명의 일본 만화를 원작으로 한다. 일본에서 먼저 2편짜리 영화 시리즈로 만들어졌으며, 이번에 임순례 감독이 만든 한국판이 개봉한다. 나는 브런치 무비 패스를 통해 개봉일보다 조금 이르게 한국판을 감상했고, 그다음 일본 영화, 만화 원작을 찾아 비교해 보았다.



자연에서 산다는 것


한국에서 귀농, 귀촌이 유행이 된 지 한참 되었다. 대도시의 생활이 지겨운 사람들은 새로운 삶의 방식을 선택하고 싶어 했다. 이런 이들에게 농사짓는 방법을 알려주거나 주택을 무료로 임대해 주는 등의 지원사업도 꽤 보였다. 대도시의 삶을 완전히 정리하고 시골로 내려가는 선택이 두려운 사람들은, 근교에서 주말농장을 하거나 도심 속 텃밭을 꾸려가는 시도를 하는 경우도 있다.


어쨌든 도시의 사람들에게 자연이란, 어느 정도 조금은 그리운 것, 가까이하고 싶은 것임에 분명하다. 사람들이 자연으로부터 취하고 싶은 것이 빛깔이든 온도이든 냄새이든, 도시에서 보다 아름답고 긍정적인 점들을 발견하고 싶어 한다. 도시생활이 익숙한 사람들이 생각하는 자연은 힐링이고 휴식이다.


사실 생각보다 많은 사람들이 대도시 외의 지역 출신이다.

소위 '시골'이라 불리는 지역에 가면 그 지역에 오래전부터 지키고 있는 노인들과 귀농한 사람들이 보인다. 그 지역에 원래 살던 사람들과 귀농한 사람들의 삶은 언뜻 보기에도 꽤 달라 보인다.


리틀 포레스트는 본래 그곳에서 살던 사람이 제자리로 돌아오는 이야기이다.



세 가지 리틀 포레스트


일본판 영화 리틀 포레스트는 원작 만화의 내용을 훼손시키지 않으려 노력한 느낌이었다. 요리의 재료에 얽힌 이야기도 고스란히 담아 만화의 대사 하나하나를 충실하게 재현한 듯했다. 일본판 영화는 또한, 상당히 정적이고 절제되어 보였다. 감독이 배우에게 정제된 내면 연기를 요구한 것이 아닐까 싶은 정도였다. 풍경도 정교하게 다듬은 듯 완벽하게 아름다웠다.


위에서 리틀 포레스트는, 본래 그곳에 살던 사람의 이야기라는 언급을 했다. 일본판 영화에서는 그 점이 더욱 두드러진다. 일본판 주인공 이치코(하시모토 아이) 역시, 터전을 떠나 이전과는 전혀 다른 형태의 삶에 놓이지만, 농사를 짓고 밥을 해 먹던 습성을 쉽게 바꾸지 못한다. 도시락을 싸고 좁은 방에서 페트병에 순무를 키우기도 한다. 이미 자신을 키워온 자연 속에서 지내온 습관이 하나의 삶의 방식으로 자리 잡은 것이다.


한국판의 주인공 혜원(김태리)의 경우에는, 시골집에 왔을 때나 도시생활을 할 때 모두, 이전까지 자신이 살아온 삶에 근거하여 살아내지 못한다는 생각이 든다. N포세대가 되어버린 한국 청년들의 고단한 현실의 반영일까. 직접 집에서 기른 쌀과 작물을 먹던 사람이라 생각할 수 없는 삶, 자신을 키운 자연 속에서의 삶으로부터 완벽히 단절된 채, 혜원은 서울에서의 삶을 힘겹게 이어간다.  


가장 힘들 때 위로가 되는 것은 아마도 밥일 것이다. 편의점의 도시락이나 컵밥 같은 것이 먹을만한 것이 못되자, 다시 살던 곳으로 돌아간 혜원은, '배가 고파서 내려왔다'는 말을 남기고, 정말 게걸스럽고 맛깔스럽게 자신의 밥을 먹어치운다.



뿌리내려본 경험

한국판 리틀 포레스트를 보고 생각했다. 우리가 생각하는 농사짓는 사람에 대한 이미지는 몸빼바지와 이웃에 대한 과도한 참견 정도인 것일까. 어쩌면 우리에게 부족한 것은, 살아보지 않은 곳에 대한 막연한 상상이나 매체에서 보여지는 간접적인 이미지가 아니라, 그 공간에서 시간을 보낸 실제적 경험이다.


현세대에는 아주 적은 사람들만이 직접 수확한 작물을 먹는다. 김태리나 류준열, 그리고 그 또래나 더 나이 많은 세대의 관객들도 마찬가지다. 예전처럼, 또는 일본판 영화에서처럼 사는 동네는 드물다. 한국에서는 더 그렇다.


원작 만화를 그린 이가라시 다이스케 작가는 자신이 한 때 어느 농촌에서 자급자족하는 생활을 한 후 작품을 만들었다고 한다. 영화를 만들 때에도, 농사 지어 스스로를 먹여 살리는 삶에 대한 실제 경험과 이해가 없다면 작품 제작에 어려움이 있었을 것이다.

 

어딘가에 산다는 것은, 세 가지 리틀 포레스트에서 공통적으로 말하듯 그곳에 뿌리내리는 것이다.

계절과 시간에 인간의 노동을 맞추어 수확하고, 사회적으로 고립되거나 도태되지 않은 채 그 지역의 주민으로 살아가야 한다. 자연에 하나의 독립된 개체로서 뿌리내리고, 다른 존재들과 어우러져 살며 열매 맺는다는 것이 리틀 포레스트의 주인공들이 목표하는 삶이라고 느꼈다.



가장 한국적인 결말

일본판에서는 영화와 만화에서 모두, 주인공과 친구들이 가족을 이루고 다시 살던 곳으로 돌아오는 내용으로 끝이 난다. 작가는 엄마가 어린 자식을 낳고, 그 아이가 성장하고 자립하고 가족을 이루어 지역사회에 이바지하는 자연을 닮은 삶, 전통적인 삶에 대해 의미를 둔 듯 보인다.


아마도 그러한 원작의 주제를 한국의 현재와 실제 상황에 맞게 각색하느라, 어려움이 있었을 것이다. 일단 최저시급을 받을 법한 편의점 아르바이트를 하던 청년이 거의 맨몸으로 돌아와 온전히 땅을 일구어 작물을 지어 생활하는 것이 가능한가 라는 질문에서부터 막힐 것이다. 게다가 주인공이 결혼하고 살던 마을에 돌아와 주민으로 정착하기 위해 전통무용을 하는 등 지역사회에 기여하고 싶어 하는 원작 그대로의 결말이었다면, 정말 어색함만이 남았을 것이다.


한국판 리틀 포레스트에서는 조금 다른 결말을 보인다. 결혼이라던가 전통적 삶이라던가에 대한 고민은 드러나지 않는다. 현재 한국 청년들은 그것을 포기할 수밖에 없는 세대이고 영화는 그 사실을 반영한다.


그러나 주인공이 일상 속에서 자신을 대하는 태도와 같은 아주 작은 변화를 스스로 이끌어 냈다는 점에서 이 영화의 결말은 희망적이다. 살 곳과 삶의 방향을 결정하고, 과거와 마주하는 모습을 보여준다. 한국판 영화가 일본판 영화보다 모든 면에서 더 '좋다'라고 말할 수는 없겠지만, 현재 한국에서 나올 수 있는 영화 리틀 포레스트로서는 '최선'이라고 생각한다.


다만 싹이 나는 이미지의 CG처리 라던가 친구들 간의 대사 표현 등에서 조금 더 섬세하고 정제된 접근이 있었더라면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또한 주인공의 어머니에 대해서는 원작과 조금 달리 해석된 느낌이 있었으며, 강아지 오구의 등장은, 정말 삼시세끼 영화 버전 (게스트: 류준열)이라고 불리고 싶은 생각이었을까 싶어 조금 어리둥절 했다.


한국판 리틀 포레스트는, 힐링 영화가 아니라 현실의 반영이며, 어쩌면 자연 화보나 수묵화 같은 일본 영화의 한국 버전을 기대한다면, 그 기대는 살짝 접는 것이 나을 것 같다. 이것은 한국 청년의 치열한 고군분투를 보여준 성장영화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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