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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anibooks Jul 31. 2020

얀 슈반크마이에르 읽기, 서론

얀 슈반크마이에르가 자신의 영화 속에 차용해 온 문학 속 주인공들

감독 얀 슈반크마이에르의 서재에 수감된 세계 문학 속 주인공들과 함께하는 

얀 슈반크마이에르 읽기
Lekce Švankmajer

영화 [광기 šílení]를 중심으로


우리가 어떤 영화를 볼 때, 가끔 그 감독이 궁금해지는 경우가 있다. 사실 그렇게 자주 있는 일은 아니다. 때때로 지극히 어설픈 영화나 너무나 지루한 영화를 볼 때 그렇고 놀라울 정도로 아름다운 영화를 볼 때 그렇다. 자신의 영혼을 뒤흔드는 듯한 영화를 만났을 때, 그리고 특별한 세계의 언어를 구사하는 듯한 마법적인 영화를 맞닥뜨릴 때 또한, 우리는 그 영화 속 세계를 창조한 사람을 궁금해한다.

얀 슈반크마이에르의 영화를 볼 때, 우리는 그가 궁금하다. 그의 영화에는 어떤 알 수 없는 기운이 존재한다. 그것은 드러날 듯 드러나지 않는다. 명백해 보이는 듯싶다가도 숨어버린다. 언뜻 보면 부정적으로 보이는 이 낯선 감각은 우리를 조금은 두렵게 하기도 하고, 불쾌하거나 모호하다거나, 혹은 즐겁다거나 하는 다양한 기분에 사로잡히게 한다.

얀 슈반크마이에르의 초기부터 현재까지의 작품들이 난해한 수수께끼처럼 보이는 것은 사실이다. 그럼에도 그의 작품들을 보면서 거기에는 반복되어 이야기되는 단순한 패턴이 존재할 것이라는 생각이 들곤 했다. 얀 슈반크마이에르의 이러한 소재 반복은 그의 영화 [광기 šílení]에서도 역시 두드러진다.

또한 우리는 그가 자신의 영화 속에 자주 어떤 작가들의 소설을 차용해 오기도 했다는 것을 발견할 수 있다. 비록 그가 자신의 작품 속으로 불러들인 주인공들이 때로는 우리가 상상한 문학 작품 속 주인공들과는 전혀 다른 느낌일지라도 말이다. 나는 그 문학 작품들과 주인공들이 우리가 알고 싶은 감독 얀 슈반크마이에르에 대한 어떤 단서를 제공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책이 쓰인 시대나 작가의 성향, 문체, 주인공들의 성격이나 대사에서 파악되는 것들 이외에도, 책이라는 것은 그것을 고른 사람의 무의식적이거나 의식적인 취향을 포함해서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많은 것을 이야기해주기 때문이다.


그리하여, 얀 슈반크마이에르의 모호함을 이해하기 위한 새로운 잣대를, 나는 ‘얀 슈반크마이에르가 차용한 문학 작품들과 그 주인공들’로 잡았다. 이 막연하고 모호한 느낌들을 다시 소중하게 주워 들고 새로운 잣대를 통해 이해하려 한다면 우리는 그의 작품에 여태까지와는 조금 다른 시선으로 다가갈 수 있을 것이다. 그리하여 이 논문에서 우리는 영화 [광기 šílení]를 중심으로, 문학 작품으로부터 차용해온 그의 다른 영화들도 함께 분석하며, 다음과 같은 것들을 알아가게 될 것이다.


그는 자신의 영화 속으로 어떤 문학 작품들을 취해왔는가.

이 취해온 문학 작품들에 대하여 그는 어떤 시각을 가지고 있는가.

문학 작품에서의 차용은 그저 그의 취향인 것일까, 아니면 어떤 특별한 이유나 계기가 있었던 것일까.

등장인물들을 어떤 방식으로 자신의 영화 안에서 역할 지었는가.

또한 어떻게 그들의 성격이나 행태를 변형시키거나 유지시켰는가.

그리고 그 주인공들로 하여금 새로운 역할로서의 삶을 살게 하거나, 어떤 메시지를 전달하게 하였는가.



이런 질문들의 답을 찾는 과정 속에서 우리는 얀 슈반크마이에르라는 감독이 우리에게 과제처럼 던져준 모호한 수수께끼의 답을 찾을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답은 존재할까? 우리는 어쩌면 그의 영상언어를 파헤치고 분해해서 결과적으로 수학적인 답을 얻는다기 보다는, 그의 영상언어와 몸짓들을 그저 바라보고 그가 촬영에 이용한 오래된 사물들이 하는 이야기를 들어야 할 것이다. 또한 그가 자신의 영화 속에 새로운 삶을 부여한 주인공들에게 내어준 단서들을 따라가는 방식을 취해야 할지도 모른다. 그러나 어쩌면 이러한 모호한 과정 속에서 우리는 오히려 그의 알 수 없는 근원에 조금씩 근접할 수 있을 것이다. 그리하여 문학 작품의 주인공들의 도움으로 수행되는 슈반크마이에르 읽기_Lekce Švankmajer의 끝에서 꿈의 감촉을 느끼고 연금술의 언어를 구사하는 법을 조금씩 익혀가고 있는 자신을 발견하게 되기를 희망한다.


자, 우리는 이제 세계 문학으로부터 차용해온 얀 슈반크마이에르의 작품들을 그의 작품 [광기 šílení]를 중심점으로 삼아 알아본다. 이 영화를 그의 다른 작품들과 비교해보고, 이 영화 속의 등장인물들을 파악하고 그들 간의 관계를 조명하여 감독 얀 슈반크마이에르가 관객들에게 전달하려는 바가 무엇인지 조금 더 자세히 알아보도록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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