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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타카 | 그렇게 다 가져야 속이 시원하겠니?

[가타카와 머티리얼리스트의 접점] 존재하지 않는 유니콘을 둘러싼 모험

by 아닛짜

셀린 송 감독의 <머티리얼리스트>(2025)에는 '유니콘'이라는 용어가 등장한다.

신화 속에 등장하는 동물인 유니콘은 기업 가치가 10억 달러(1조 원) 이상인 비상장 스타트업을 일컫는 경제 용어로 쓰였다.

이 의미는 결혼 시장으로도 확장되어, 머리숱, 키, 경제력, 외모, 성격 등 모든 면에서 이상적인 조건을 갖춘 결혼 상대를 '유니콘'이라 부르게 되었다.

수치로 객관화되는 자본주의 경제 논리는 극히 주관적인 사랑에도 스며들어서 소위 '결혼 시장(marriage market)'이라는 말이 어색하게 느껴지지 않는다.

상품 시장에서 수요와 공급이 만나 가격이 결정되듯이, 결혼 시장에서도 상대의 가격을 탐색하여 사랑을 구매한다. 결혼은 그 구매를 최종 확정시키는 절차이다.


유니콘 기업을 보면 투자 욕구가 샘솟는 것처럼, 우리는 결혼 시장에서 유니콘을 만나면 눈에 콩깍지가 씌게 될까? <머티리얼리스트>는 결론은 다소 진부하지만, 그것에 도달하는 과정을 꽤 섬세하게 들여다본다.


결혼 정보회사의 커플매니저인 루시(다코다 존슨)는 자신이 매칭해 준 고객의 결혼식장에서 말 그대로 유니콘 그 자체인 해리를 만나게 된다. 해리는 루시에게 첫눈에 반하여 데이트를 신청하고, 루시는 그를 자신의 고객 리스트에 넣는 대신 직접 사귀어 보기로 한다.

루시는 갓벽한 해리에게도 말 못 할 비밀이 있음을 알게 된다. 해리는 자신의 유일한 약점을 없애고자 키를 키우는 수술(사지연장술)을 했던 것이다.


나는 이 대목에서 바로 <가타카>가 떠올랐다. 1998년 개봉 당시에는 잘 알려지지 않았던 사지연장술의 충격적 장면이 아직도 나의 뇌리에 남아있었나 보다.

그리고 우연히 며칠 후 메가박스에서 콜롬비아 픽처스의 명작들을 골라 상영하는 '토치 레이디 PICK' 덕분에 <가타카>를 한 번 더 볼 수 있었다.

빈센트는 제롬의 우월한 유전자를 사기로 한다. 그리고 자신을 제롬의 큰 키에 맞추기 위해 뼈를 자르는 고통스러운 수술까지 견뎌낸다.


SF인 <가타카>와 로맨틱 코미디인 <머티리얼리스트>는 완전히 다른 결의 영화지만, 나는 두 영화를 관통하는 하나의 주제에 관해 이야기해보려고 한다. 우리가 늘 혼동하는 '가치'와 '가격'의 애증 관계에 관하여.


이 글의 목차는 다음과 같다.

1. '결핍'은 '꿈'으로 쉽게 치환된다.
2. 다섯 가지로 구분된 색깔은 사람의 눈을 멀게 한다.
3. 지금 여기, 나의 고향에 도착하다.




1. '결핍'은 '꿈'으로 쉽게 치환된다.


앤드류 니콜 감독의 <가타카(Gattaca)>(1997)는 유전자 조작이 일상화되어 우성 인자로 서열이 정해지는 미래 사회를 배경으로 한다.

빈센트(에단 호크)는 부모의 사랑으로 잉태되었으나 그 결과는 축복이 아니라 열성 유전자의 저주였다. 자연 출생자인 빈센트는 시험관 수정을 통한 DNA 조작이 정상인 사회에서 마치 열등인처럼 여겨진다.

이 사회에서는 더 이상 재산이나 피부색, 국적도 중요하지 않다. 손가락의 피 한 방울이면 '적합(valid)''부적합(in-valid)'으로 사람의 등급이 즉각 정해지며, 이것은 평생 바꿀 수 없는 낙인이 된다.

빈센트는 우주 비행사를 꿈꿨지만 그가 우주에 가장 가깝게 갈 수 있는 길은 우주 항공 회사에서 청소부로 일하는 것뿐이다.

빈센트가 아무리 노력을 해도 그는 항공 우주회사에서 '부적합자'로 규정될 뿐이다.


빈센트가 태어나자 의사는 그의 뒤꿈치를 찔러서 나온 검사 데이터를 건조하게 말한다.

"신경계 질병 60% 가능, 우울증 42%, 집중력 장애 89%, 심장 질환 99%, 예상 수명 30.2년..."

앞으로 펼쳐질 빈센트의 삶이 정확한 수치로 예언된다.

낙심한 빈센트의 부모는 둘째 아이는 인공수정을 통해 갖기로 결정한다.

그리고 자연 임신을 천 번 한다 해도 나올 수 없는 좋은 점만 가진 아이가 태어난다. 동생은 아버지가 원래 빈센트에게 주려고 아껴두었던 '안톤'이라는 이름을 가지게 된다.

빈센트는 기둥에 그어놓은 키 표시선뿐만 아니라 모든 것에서 안톤을 넘어설 수 없었다.


우주 비행사의 꿈을 포기하지 못한 빈센트는 결국 '가타카'라는 우주 항공 회사에 청소부로 들어간다.

그러나 매일 우주선이 발사되는 장면을 몇 번이나 보면서 좌절감은 더욱 커진다. 갈증이 심한데 물을 앞에 두고도 먹지 못하는 자의 심정처럼.

빈센트는 극약처방을 하기로 결심한다. 그는 신분 세탁 브로커를 통해 우월한 유전자를 보유한 제롬 모로우(주드 로)로 신분 세탁을 감행한다. 제롬은 교통사고로 하반신 마비가 되기 전까지 올림픽에서 은메달을 딸 정도로 뛰어난 수영선수였다.


빈센트는 범법을 저지르면서까지 왜 우주여행을 그토록 갈망했을까?

지구는 위아래가 명확히 존재하는 우열의 공간이지만, 우주는 위아래 앞뒤가 없는 자유의 공간이다.

빈센트는 모든 것이 등급화되는 공간에서 모든 우열이 무화(無化)되는 공간으로 탈출하고 싶었던 것이 아닐까?


빈센트는 지구를 증오하는 대신 미지의 우주를 갈망했다. 갈망은 좌절을 불굴의 의지로 바꿔주었다.

그는 꿈이라고 생각했지만, 사실 우주여행의 꿈은 그가 태어날 때부터 시달린 결핍을 채우고자 하는 몸부림에 가깝다.

인간의 긍정성은 '결핍'을 '꿈'으로 쉽게 치환해 낸다.




2. 다섯 가지로 구분된 색깔은 사람의 눈을 멀게 한다.


결핍은 어디에서 기원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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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닛짜'는 빠알리어로 '무상(無常)'입니다. 요가를 가르치며, 직업은 '나 자신의 탐구자'입니다. 영화, 소설, 명상, 심리, 에니어그램을 통해 나를 탐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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