쇼생크 탈출 | 습(習)으로부터의 구원

[변화보다는 길들여진 현실을 택하는 중력에 관한 보고서]

by 아닛짜

<쇼생크 탈출(The Shawshank Redemption)>(1994)을 오래전에 처음 봤을 때, 나는 '앤디가 악당들을 응징하고 자유를 찾을 수 있을까, 그가 과연 진범인가, 아니면 누명을 벗을 수 있을까'와 같은 기대감 속에서 영화를 봤던 것 같다.

그러나 이번에 다시 보면서 악당의 존재감이나 권선징악의 문제보다는 습관의 중력이라는 관점에서 영화가 새롭게 다가왔다.

모든 글에는 자기 자신의 마음 상태가 어떻게든 투영되는가 보다.

나는 요즘 이 세상에서 가장 강력한 것은 외부의 악당이 아니라 '내부의 습(習)'이라는 것을 실감하고 있기 때문이다.

<쇼생크 탈출>은 말을 더 얹는 것이 무의미할 정도로 유명한 영화라서 그동안 리뷰를 쓸 엄두를 못 냈었는데, 이제 '습(習)'이라는 관점으로 재구성해서 리뷰를 써 보려고 한다.

<쇼생크 탈출>은 변화보다는 길들여진 현실을 택하는 중력에 관한 보고서다.


이 글의 순서는 다음과 같다.

1. "바쁘게 살든지, 바쁘게 죽든지"
2. 습관에서 루틴으로, 루틴에서 의식으로
2-1> 공자가 말하는 '학, 습'
2-2> 습관-루틴-의식의 사이
3. 습(習)으로부터의 구원


1. "바쁘게 살든지, 바쁘게 죽든지"


어두운 밤, 자동차 안에서 한 남자가 위스키를 마시며 권총을 만지작거리고 있다. 그의 아내가 살해되던 밤이다.

큰 은행의 부지점장이었던 앤디 듀프레인(팀 로빈스)은 아내와 그녀의 불륜 상대를 살해한 혐의로 미국 쇼생크 교도소에 수감된다.

그는 법정에서 계속 결백을 주장했지만 잔인하고 냉혈한 복수라고 간주되어 종신형을 선고받는다.


그의 교도소 생활은 첫날부터 험난했다.

그러나 앤디는 악명 높은 교도소장 노튼과 교도관들의 재산과 세금 관련 컨설팅을 해주면서 점차 교도소 생활을 개선해 나간다. 나아가 노튼 소장의 검은돈까지 세탁하는 비공식 회계사가 되었다.

교도소를 하나의 사회라고 본다면, 그의 교도소 정착은 나름 성공적이었다.


<쇼생크 탈출>에는 앤디와 심리적으로 연결된 두 인물이 나온다. 레드와 브룩스.


레드(모건 프리먼)는 교도소에서 '뭐든지 구할 수 있는 녀석'으로 통한다. 그는 죄수들이 요청하는 무엇이든 구해다 주는 뛰어난 밀수업자였다.

앤디는 교도소에서 레드를 만나서 곧 절친이 된다.

레드는 이 영화의 화자이기도 하다. 관객은 레드의 시선과 해설로 앤디를 보게 된다.


브룩스는 까막눈이 아니라는 이유로 교도소의 형편없는 도서관에서 사서로 일하고 있는 온순한 노인이다.

세 사람은 모두 종신형을 선고받았다는 공통점이 있다. 영화는 세 사람이 교도소에서 길들여지는 긴 과정을 보여준다.


앤디는 레드에게 말한다.

"선택은 하나밖에 없어요. 바쁘게 살든지, 바쁘게 죽든지(Get busy living, or get busy dying)."


앤디는 교도소에서 바쁘게 살아가면서 조금씩 죽어가고 있었다.

그는 교도소장의 회계사 노릇을 하며, 틈틈이 돌을 깎아 체스말을 만들고, 교도소 내 유명무실했던 도서관을 멋지게 바꿔놓았으며, 배움이 짧은 죄수들을 가르쳐 검정고시를 합격하게 만들기도 한다.

그중 신참내기 토미는 앤디가 특별히 신경 쓴 애제자였다.


이 모든 일들의 목적은 하나다. 더디게 흐르는 교도소의 시간을 처리하는 것.


바쁘게 사는 것은 인생의 끔찍한 악몽에서 우리를 구원해 주는 한 방법이다.

바쁘게 살며 시간을 죽이다 보면 어느새 죽을 수 있는 시간이 바쁘게 찾아온다.

바쁨은 양날의 검과 같아서, 우리가 인생의 습(習)이라는 굴레에 빠지도록 조장한다.


습은 중력이 점점 강해지는 행성에 머무는 것과 같다.

개미가 달콤한 꿀단지 속에 서서히 빠져드는 것처럼 습의 단지에 한번 들어가면 헤어 나오기 힘들어진다.

인과 관계의 가속도가 붙으며 처음에는 임의적이었던 작은 습이 움직일 수 없는 쇳덩이가 되어 돌아온다.

세 사람은 물리적으로는 교도소의 두꺼운 벽에 갇혀 있지만, 이들이 갇힌 더 강력한 벽은 무형의 습이다.


레드는 복역 20년 차부터 매년 가석방 심사를 받았다. 그는 자신이 사회에 복귀할 준비가 되었다는 것을 확신에 찬 어조로 어필해 보지만, 번번이 물먹는다.

레드는 겉으로는 낙심한 듯 보이지만, 그의 마음은 실망 100%는 아니었다. 그의 무의식은 가석방이 안되기를 바라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레드 : "난 사회에 나가면 쓸모가 없는 인간이야. 평생을 여기에서 살았거든. 나도 이제 길들여졌어. 브룩스처럼."


가석방이 되어 먼저 나간 브룩스의 편지는 레드에게 앞으로 펼쳐질 일을 예고한다.

브룩스는 50년간 지내던 교도소를 나와서 가석방자 수용소에서 지내며 마트 직원으로 일하지만, 사회에 적응하지 못하고 실수연발이다.


"친구들, 바깥세상은 너무 변했어. 어렸을 때 자동차를 딱 한번 봤는데 지금은 사방에 자동차 천지야. 온 세상이 전부 바빠진 것 같아.... 난 밤이면 잠을 설쳐. 절벽에서 떨어지는 악몽을 꾸지. 겁에 질려 잠에서 깨. 가끔 내가 어디 있는지 기억하는 데 시간이 걸려. 강도질이라도 하면 쇼생크에 돌아갈 수 있을까?"


그는 모텔 벽에 '브룩스 여기 있었다.(Brooks was here.)'라고 새겨놓고 목을 매단다.

브룩스는 평생을 감옥에서 살다가 백발 노인이 되어 나온다. 결국 모텔 벽에 '브룩스 여기 있었다.'라는 글귀를 새겨놓고 목을 맨다.


2. 습관에서 루틴으로, 루틴에서 의식으로


2-1> 공자가 말하는 '학, 습'


습(習)을 무엇보다 강조한 사람은 공자다. 얼마나 사랑했는지 <논어>의 첫머리에 '학(學)'과 '습(習)'이라는 글자가 나란히 나온다.


學而時習之 不亦說乎. (학이시습지 불역열호)
배우고 그것을 때때로 익히니 기쁘지 않겠는가.


'시(時)'는 대체로 '때때로', '때에 맞게'라고 해석하지만, 여기서 속뜻은 '습(習)을 매 순간 반복해서 내 몸에 체화되어 나의 인격이 될 때까지'이다. 그러니까 '늘, 24시간 동안(always)'이라고 할 수 있다.


'습(習)'은 새가 날갯짓을 반복하는 모습을 형상화한 글자다.

우리는 새가 나는 것은 본능이므로 새들은 쉽게 나는 법을 배울 것이라 생각한다.

그러나 아기새는 수많은 날갯짓을 반복하고 실수를 연발하며 나는 법을 익힌다.

'습(習)'이란 글자 속에 아기새의 악전고투가 보이지 않는가?


공자는 날갯짓하는 목표를 '학(學)', 즉 '배움'이라고 명명한다. 공자의 '학'은 학생들의 입시준비나 자격증, 승진 공부보다 더 넓은 의미이다.

새의 '학'은 유전자에 프로그램된 대로 나는 것이다. 그러면 인간은 어떤 것을 지향하여 날갯짓해야 하는가? 인간은 유전자에 프로그램된 것이 아닌, 스스로 선택한 배움을 위해 날갯짓해야 한다.


“군자는 먹는 것에 배부름을 구하지 않고, 거처하는 것에 편안함을 구하지 않으며, 일에는 민첩하고 말에는 신중하며, 도가 있는 이에게 찾아가서 자신을 바로잡는다면, 배움을 좋아한다고 이를 만하다.”
(君子食無求飽, 居無求安, 敏於事而慎於言, 就有道而正焉, 可謂好學也已.)

- 논어 학이편 14 -


공자에게 '배움'이란 먹고, 자고, 말하는 일상 속에서부터 시작되는 일이다.

도(道)는 저 멀리 있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일상을 바로잡는 것에서 출발한다.

조선시대 최고의 학자인 정약용이 숱한 시련을 겪고 유배 가서 지킨 일은 새벽에 마당을 쓸고 <소학>을 읽는 일이었다고 한다.

어린이들을 위한 유학인 <소학>에 인간이 배워야 할 학의 정수가 있다는 것을 알았기 때문일 것이다.


배움은 습으로 다져지는 것이다. 머리로 이해하는 것뿐만 아니라, 자신의 기질과 성향, 그리고 버릇과 몸의 운용방식까지 변화되어야 배움이 완성된다. 나의 전존재가 길들여지는 과정이다.



2-2> 습관-루틴-의식의 사이


요즘 자기 계발서에서 '습관(habit)'이나 '루틴(routine)'이라는 말이 화두로 떠오르고 있다.

습관과 루틴은 혼용해서 많이 쓰이는 개념이지만, 신경과학자 Anne-Laure Le Cunff는 습관과 루틴을 구분하여 정의한다.


둘 다 정기적이고 반복되는 행동이라는 공통점이 있지만, 차이는 얼마나 의도적으로 인지하고 있는가이다.

습관이 특정한 환경적 신호에 의해 촉발되는 자동화되고 무의식적으로 일어나는 욕구라면, 루틴은 더 높은 의도와 지속적인 노력이 필요하다.

습관은 회의 전에 커피 마시기, 출근할 때 무심코 편의점 들르기 등과 같이 자신이 하는지도 모르고 하는 무의식적인 행동이다.

반면 루틴은 아침에 침대 정리하기, 퇴근 후 홈트레이닝하기 등과 같이 더 의식적이고 조직적인 행동이다.

요즘 '루틴을 지킨다'는 말을 많이 하는데, 무너진 생활을 잡아주는 긍정적인 뜻으로 쓰인다.


Anne-Laure은 여기서 더 나아가 '의식(ritual)'을 말한다. 의식은 루틴보다 더 많은 에너지와 집중력을 요구한다.

의식은 ‘항상 시험 치기 전에 하는 의식’, ‘중요한 미팅 전에 하는 의식’ 등과 같이 특별한 상황 전후에 하는 것을 포함하여, ‘목적의식이 있는 더 의미 있는 행동’을 포괄한다.

단순히 행동을 완수하는 수준이 아니라 경험 자체에 몰입하는 것이다.


우리는 의식을 특정한 행동뿐 아니라 존재의 모든 경험으로 확대할 수 있다. 여기에는 다소 영적이거나 종교적인 뉘앙스까지 포함되는 것 같다.

공자가 말하는 '습(習)'은 넓은 의미에서는 세 가지를 모두 포함하지만, 배움의 완성 측면에서는 의식에 더 가깝다.


우리는 습관과 루틴, 의식 세 가지 모두에 의해 길들여질 수 있다.

습은 단지 '습관'에 머무는가, 혹은 '의식'의 단계까지 고양되는가에 따라 약이 되기도 하고 독이 되기도 한다. 감옥이 되기도 하고 자유가 되기도 한다.


앤디와 레드, 브룩스는 습관과 루틴 사이를 오가며 교도소에 차츰차츰 길들여진다.

앤디는 교도소에 본격적으로 적응하기로 결심했을 때 여러 가지 능동적인 루틴을 만들어낸다.


그러나 동시에 앤디는 틀에 박힌 교도소 생활에 익숙해지는 것을 무엇보다 두려워했다.

이 두려움은 영화사에 길이 남을 두 가지 명장면을 탄생시켰다.

앤디가 악질적인 교도관 하들리와 협상하여 동료들을 위해 맥주를 얻어냈을 때를 레드는 이렇게 회상한다.


"우린 마치 자유인처럼 앉아서 햇빛을 받으면서 맥주를 마셨다."
이 장면을 보며 맥주 마시고 싶다고 생각한 사람, 손!


두 번째 장면은 앤디가 위험을 무릅쓰고 축음기를 틀어서 교도소 전체에 <피가로의 결혼>의 아리아가 울려 퍼진 것이다.


(레드의 내레이션으로) "교도소 전체에 울려 퍼진 그 목소리는 이 회색 공간의 그 누구도 감히 꿈꾸지 못했던 하늘 위로 높이 솟아올랐다. 마치 아름다운 새 한 마리가 우리가 갇힌 새장에 날아들어와 그 벽을 무너뜨린 것 같았다. 그리고 아주 짧은 한 순간 쇼생크의 모두는 자유를 느꼈다."
낯선 이탈리아 노래의 제목도 내용도 몰랐지만, 죄수들은 목소리와 함께 철책 위로 날아올랐다.


맥주와 아리아, 이 두 가지는 자유의 상징이다. 앤디에게는 2주간의 독방 처분과 바꿔도 충분히 가치 있는 것이었다.

우리가 날갯짓하며 지향해야 할 배움은 오직 '자유'다. 두려움 없이 사는 것.




3. 습으로부터의 구원


앤디는 죄수로서는 상상하기 어려운 여러 가지 과업을 이루어내며 19년이라는 시간을 지어냈다.

그는 습관과 루틴 사이의 생활에서 자기도 모르는 새 안정감을 느끼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현실은 여전히 교도관들에게 '재정 자문을 해주는 죄수'일 뿐이다.


여러 정황을 봤을 때 앤디는 사실 한참 전에 탈옥을 위한 만반의 준비를 갖췄다.

그러나 그의 실행을 계속 주저하게 하는 것은 길들여진 익숙함이다.

앤디의 3대 과업. 직접 깍아 만든 체스말들, 최고의 도서관, 애제자 토미의 검정고시 합격.


똑똑똑!!

마침내 영혼의 문을 두드리는 소리가 들린다.

구원(redemption)이 이루어질 때는 항상 파괴와 충격 요법이 먼저 시작된다.


앤디는 우연히 자신의 애제자인 토미의 증언을 통해 자신이 누명 쓴 사건의 진범을 알게 된다.

그러나 교도소장 노튼은 자신의 모든 비밀을 아는 앤디를 놓아줄 마음이 전혀 없었다.

그는 토미를 간단히 제거하고, 앤디를 두 달이나 독방에 가둔다.

19년 만에 진범을 찾았지만 깜깜한 독방에서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앤디의 마음은 어땠을까?


앤디는 모든 희망을 잃고 절망에 빠진다. 그러나 인간은 어설픈 희망보다 완전한 절망 속에서 새롭게 각성된다.

밑바닥을 터치했을 때 비로소 떠오를 수 있는 반동의 에너지가 생기는 것이다.


앤디는 이제 '바쁘게 죽을 각오'로 진짜 탈출을 결심한다.

는 심리적인 습의 벽을 넘어서고 나서야 교도소의 물리적인 벽을 넘어설 수 있게 된다.

번개 치는 밤의 탈옥 장면은 언제 봐도 도파민이 팡팡 터진다.

그는 교도소의 레전드가 되었다.


레드도 앤디를 통해 자유를 꿈꿀 수 있는 희망을 갖게 된다.

영화에서 레드의 가석방 면접은 총 세 번 나오는데, 레드의 변화된 심리를 볼 수 있다.

첫 번째는 20년째 복역 중일 때이며, 이때 레드는 심사관들 앞에서 적극적으로 자신을 어필한다.

'잘못을 깨닫고 새 사람이 되었다. 사회에 더 이상 위험한 사람이 아니다.'라며 신께 맹세까지 한다. 그러나 '부적격(rejected)' 판정.

30년 차의 두 번째 면접도 첫 번째와 다르지 않았다.

그러나 레드는 40년 차인 세 번째 면접에서는 완전히 다른 모습을 보여준다.

그는 더 이상 심사원들을 설득하려 하지 않고, 담담하게 가석방에 대해 신경 쓰지 않는다고 말한다. 그리고 '적격(approved)' 판정을 받는다.


사람은 자신의 내부에 희망이 없을 때는 외부 조건에 집착한다.

그러나 내면의 희망이 생기면 외부의 상황이 상관없게 된다.

내면에 있는 나만의 빛은 아무도 건드리지 못하니까.


레드의 내면은 체념에서 희망으로 변화되어 있었다.

앤디가 레드에게 선물한 하모니카는 레드의 희망을 상징한다.




멕시코의 지후아타네호에서 자유인으로서 다시 만난 앤디와 레드는 고깃배를 몰고 하모니카를 불며 일상의 모든 순간을 '의식(ritual)'처럼 소중하게 만끽하며 '의식적으로(consciously)' 살겠지.

허락을 안 받으면 오줌이 한 방울도 안 나왔던 레드도 이제 맘껏 화장실을 다니겠지.


'바쁘게 살든지 바쁘게 죽든지'가 아니라 '의식적으로 살고 의식적으로 죽는 것'이 우리의 배움의 완성이다.


멕시코의 지후아테네호에서 자유인으로서 다시 만난 두 친구. (실제 촬영지는 미국 플로리다 주에 있는 해변가라고 한다. 쉿!)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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