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살아 있음을 느끼기 위해서는 강렬한 자극이 꼭 필요하지는 않구나
술, 담배, 섹스, 오랜 잠, 거친 힙합, 재밌는 밈, 커피, 튀김 이런 것들이 나를 살아있게 생각한다고 믿어왔다.
오히려 살아있는 것을 너무 생생히 느끼니까 놓아버리고 싶었다.
나의 감정이 곧 나라고 믿어왔다. 그러면서도 나는 나를 부정하고 있으니 이런 내 모습, 이런 내 생각은 옳지 않아, 이렇게 살면 안 된다는 것을 이걸 본능적으로 알고 있다. 그러다 힘이 빠지면 오랜 파도를 막아오던 낡은 방파제가 무너져버리듯 무기력에 빠져 우울의 바다에 가라앉았다. 그래서 살고 싶어 도망치듯 뇌를 도파민에 절여버렸다. 살고 싶어 몽롱하게 발버둥 칠수록 더 깊게 빠지게 된다.
방파제를 더 열심히 쌓아보려고 건설적으로 사는 척도 해봤다. 하기 싫었던 자격증 공부도 해보고, 일하던 시간을 억지로 늘려보기도 하고, 사람들 앞에서 괜찮은 사람인척 웃어보기도, 오랜만에 후배들에게 멋진 선배인 척 밥을 사주기도, 오랫동안 연락하지 않아 궁금하지 않은 친구에게 안부를 물어보기도 했다. 꾸준하지 않은 가식은 그렇게 오래가진 않더라.
오늘은 왠지 밖에서 걷고 싶었다. 비가 와서 날이 습하지만, 빗물에 옷이 젖었지만, 신발에 물이 차올라도 카페에서 조용하게 아무런 걱정 없이 평소 읽고 싶었던 책을 읽었다.
그렇게 눈을 살짝 떠보니까 눈을 감고 있어 바다라 생각했던 바닥이 생각보다 깊지 않을 수 있겠더라.
나의 감정은 나를 최악이라 정의하고 나의 생각은 나를 최고라고 정의해 왔다.
그 괴리감 사이에 고인 나의 감정이 나의 바다였다.
수면에 비친 내 얼굴을 너머 나의 바닥을 볼 때 물이 조금씩 흘러가고 빠지더라.
물이 빠진 자리엔 연꽃을 띄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