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 나의 Anima

Viator

by Anima

눈을 뜨고 네 번째 여행을 떠난 지 어느덧 5년이라는 시간이 지난 것을 체감하고 있는 요즘이다.


늘 지나가는 시간이 아까워 그 순간을 살아보려 하면서도 나의 눈은 항상 지나간 시간을 붙잡고 앞으로 다가올 시간만 생각하고 있었다.


지난 시간을 붙잡아 생각해 보면 딱 한 개면 충분한 달콤 쌉싸름한 초콜릿을 입에 넣고 녹이듯 "그래도 그때 나쁘지 않았지"라는 생각이 들면서도 다시 돌아가고 싶지 않았고,

앞으로 다가올 시간을 생각해 보면 밤바다를 걸으며 밀려오는 파도를 손으로 막아보려고 애쓰다 지쳐 그 손으로 눈을 가리며 그 끝에는 "이게 무슨 의미가 있지"라는 생각에 불안함은 허무함이 되었고 그러면서도 살고 싶은 마음은 공허함이라는 감정을 만들었다.


그러다가 내가 살고 있는 현실을 마주할 때면 앞으로 살아갈 날들 중 가장 젊은것 같으면서도, 태어난 날로부터 죽어감을 느끼기를 반복하고 있을 때 나는 다섯 번째 여행을 준비하고 있다.


첫 번째 여행은 우리 모두가 그렇듯 원했든 그렇지 않았든 선택권은 없었다. 그저 눈을 뜨고 숨을 쉰 후로부터 지금의 세상에 와 있었다. 나의 여행이 왜 시작되었는지 당시에는 몰랐지만 다섯 번째 여행을 준비하는 지금에 와서야 찾은 정답은 사랑이었다. 그 사랑의 형태가 어떠했든 생명을 전달받았고 그 생명은 단순히 숨을 쉬는 것 그 이상의 소중함을 가지고 있었다.


관심과 보살핌 가운데 깨닫게 된 기쁨과 동시에 좌절되었을 때의 불호에 의한 슬픔, 내가 숨 쉬고 있는 이곳의 문화에 대한 이해와 손으로 만지고, 맛보고, 듣고, 말하며 배운 경험, 나와 우리가 아닌 너라는 존재를 만나고 이 세상을 인지하기까지는 5년 정도 걸렸다. 그때는 모든 것이 크고 새롭다 보니 첫눈을 밟았을 때의 쾌감처럼 뽀드득거리는 그 소리가 즐거워 시간이 어떻게 지나갔는지, 앞으로 어떻게 흘러갈지 모른 체 그저 현실에 몸을 맡기고 자연스럽게 흘러갔던 것 같다.

첫 번째 여행에서의 기억은 거의 남아있지 않지만, 그 시간을 기억해 준 사진들을 보면 나는 그래도 제법 꽤 맑게 웃고 있었다.


두 번째 여행은 이 세상이 나와 우리가 아닌 너희들 가운데에도 녹아들 수 있게 손 내밀어 주면서 시작했다. 첫날의 떨림을 아직 기억하고 있고, 나는 어디에도 소속되어 있으며 동시에 어디에도 소속되어 있지 않은 듯한 이질감을 배웠다. 그 작은 사회 안에서도 무리는 곧 형성되었고 말 수가 적었던 난 늘 어디에도 속해있지 못한 사람이었다.

처음이었다.


내가 받은 생명이 당연했듯 사랑도 당연한 줄 알았는데 사랑은 생각보다 많은 노력이 필요했다. 같은 공간에 있던 너희들이 나를 짓궂게 괴롭혔냐 한다면 그렇지 않았고, 못 살게 굴었냐 한다면 오히려 나의 여행의 의미에 대해 생각하게 만들었다.


두 번째 여행 가운데서 내가 보았고, 들었던 것들 내 생명을 나누고 사랑에 참여할 수 있는 동료가 필요함을 느꼈지만 어색함과 불안함 그리고 두려움의 숲에 숨어버린 난 가면을 쓰는 방법에 대해 배우게 되었고, 마음을 나눌 수 있는 동료는 결국 만나지 못했다. 첫 번째 여행에서 만났던 나의 사랑은 이런 내 모습을 알았을까 많은 사람들을 만나고, 다양한 것들을 경험해 볼 수 있도록 이곳저곳에 많이 데려다주었지만 나는 그 이유를 찾지 못한 채 오래 걸어 다닌 날도 있었다.


이때부터 나도 알게 모르게 녹아들지 못하는 내 모습을 보며 여행 가운데 마음의 문은 닫은 채 홀로 서는 법을 배웠다. 그러면서도 누군가는 그 문을 두드려 주었으면 하는 소심한 바람과 누군가를 만난다면 그 사람은 나와 같이 홀로 떠나는 이들에게 생명을 나눌 수 있는 사람이었으면 한다는 바람을 가지게 되었다.


세 번째 여행은 두 번째 여행에서 멀지 않은 곳이었다. 주변이어서인지 두 번째 여행에서 만났던 너희들을 다시 한번 만나기도 했고 새롭게 만나게 된 사람들도 있었다. 난 이때쯤 나의 생명을 대변해 줄 수 있는 것을 발견했다. 기타였다. 두 번째 여행을 떠났던 시간만큼 기타는 나와 함께 했고 이후 많은 사람들을 만나는데 도움을 주었다. 그래서 나는 기타와 생명을 대변할 음악을 좋아한다 생각했는데 사실은 그 자체가 좋았기 보다도 그저 내가 살아있음을 증명받을 수 있다는 그 증명이 좋아서 집착했음을 깨달은 것은 네 번째 여행이 끝날 때쯤이었다.


세 번째 여행에서는 두 번째 여행보다 비교적 쉽게 누가 더 밝은 빛을 가지고 있는지 금방 알 수 있었다. 가이드가 과하게 친절한 패키지여행과 같아서 좋든 싫든 우리는 결국 같은 장소에 있어야 했으니까. 이때쯤의 나는 밝은 빛을 가진 사람을 볼 때면 선망하면서도 나는 왜 저런 빛이 없는 걸까 열등감을 느끼고, 동시에 원래 이렇게 태어난 것은 어쩔 수 없었다는 합리화와 그래도 가장 밝지 않은 것은 아니라며 느끼는 알량한 우월감을 느끼기를 반복하다 지쳐 이 여행이 내가 시작하고 싶어 시작한 것이 아닌데 왜 계속해야 하는 것이지 하는 억울하고도 허무한 고민을 많이 했지만 계약한 것이 있었기에 파기할 수는 없었다.


나는 내 생명을 전해주기 위해 생명을 받았던 것일까, 나와 같은 공간에 있는 너희들이 나를 이유 없이 좋아해 준다면, 나도 누군가를 나를 좋아한다는 이유 하나로 좋아하며 사랑한다면 그 빛을 찾을 수 있을까. 이상하게 나를 좋아해 준다는 그 이상한 설렘은 오히려 내가 집착하게 만들었고 그 끝에는 결국 좋아해 준 이마저 질리게 만들고 우리가 되지 못한 채 수치심만 남을 때도 많았다.


그러면서 두 번째와 세 번째 여행은 네 번째 여행을 위한 것임을 깨닫게 된 것은 세 번째 여행이 약 2년 정도 남아있음을 자각했을 때였다. 사실 두 번째 여행이 시작되고 1년이 지난 시점부터 알고 있었고, 들어왔던 이야기였으나 그래도 6년이나 남았는데 벌써 생각하고 싶지 않다는 생각으로 애써 무시해 왔다.

누군가는 첫 번째 여행이 끝나고 3년이 지난 시점부터 다른 선택을 하기도 했고, 누군가는 그때부터 준비해 왔던 모습을 보고 있었고 나도 해야 함을 모르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물어보기도 전에 먼저 이 여행을 앞서 갔던 이들의 이야기를 들을 때면 내가 걸어갈 길 또한 그럴까 맑은 물에 먹물이 떨어지듯 백도화지에 그림이 그려지면서 갑자기 나를 포함한 모든 여행자들이 하찮아 보이기도 했다. 네 번째 여행을 떠나기도 전에 다섯 번째, 여섯 번째 그리고 여행의 끝까지 이미 한 번 다녀온 기분이었다.


그럼에도 나는 이 여행의 계약금으로 받았던 것을 다시 돌려주지 않는 이상 끝낼 수 없음을 알고 있었고, 나에겐 그만한 빚을 질 용기가 있지는 않았기에 정답이 정해진 스케치를 따라 그리려는 노력을 하듯 나도 그 하찮은 빛을 내보려 나름의 노력을 했었다. 그때 내게 6년의 시간이 남았음을 안주하며 생각하지 않았던 시기와 같이 나에게 세 번째 여행의 남은 1년 하고도 반은 그러했다.


처음에는 끝이 3년 남았음을 직감하고 발버둥을 치며, 내 생명을 전하고 싶어, 나름의 다름을 추구했지만 모순적이게 그럴수록 더 같아지려 해 왔던 노력임을 깨달았고, 그마저도 형편없음을 느꼈다. 그러면서도 그 길을 선택한 나를 믿어주기를 바라는 어린 마음은 어른이 되고자 현실적이라는 말로 포장하며 그러면 조금 더 극적이고 진실될 것 같아서 네 번째 여행에서 다시 하면 된다는 말로 나는 잠시 눈을 감았고 그 결과 세 번째 여행의 마지막 해 겨울 나에게도 네 번째 여행을 준비할 수 있는 시간을 만들어주었다.


네 번째 여행은 지금까지 와의 여행들 중 가장 먼 곳으로 떠났다. 그만큼 너희와는 이제 볼 수 없었고 첫 해에는 그래도 의무감을 가지고 만나려고 노력했지만 이마저도 하찮은 빛을 내려고 바등바등 거리는 것임을 알고 나서는 더 이상 노력하지 않게 되었다.


세 번째 여행을 하면서 만났던 유일하게 나에게 질리지 않았던 사람이 네 번째 여행을 시작한 지 얼마 되지 않았을 때 연락을 주었다. 당시에는 네 번째 여행을 준비하며 여유가 없었지만 그래도 그건 사랑이었으리라 믿고 싶었다고 했었다. 나도 이 사람이 나에게 있어 처음이자 마지막이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기에 지금 붙잡지 않으면 지금까지 잊힌 사람들과 같이 될까 봐 처음으로 마지막 용기를 냈었다.


지금도 그때의 떨림을 기억하고 있다. 밤이었고 세 번째 여행 이후 3개월의 시간 동안 어떻게 지냈는지 어색하게 대화를 나누고 함께 돌아가던 길 노란빛과 주황빛이 섞여 아른거리는 가로등 아래 손을 붙잡고 눈을 마주치지 못한 채 덜덜 떠는 목소리로 너와 함께 빛을 찾으러 가고 싶다고, 내가 잘해주겠다고, 한 마디 한 마디 투박하고 또 깨끗하면서도 애절한 마음을 꺼내고 확인받으며 서로가 동반자가 되었음을 선포했던 그날을.


네 번째 여행의 2년은 동료 그 이상의 동반자와 함께 떠날 수 있던 시간이었다. 비로소 나는 빛을 만난 걸까 안심했지만 기름을 채운 램프가 옅어지듯 먹물로 물들었던 마음으로 시작했던 사랑은 빛을 잃어가고 있었다. 처음의 1년은 두 번째 여행에서 그러했듯 많은 시간들이 남아 있는 것 같은 착각에 세 번째 여행에서 현실이라는 말로 포장해 둔 것을 애써 다시 열어보지 않았다.


그러나 시간은 야속하게도 여유가 없이 빠르게 흘렀고 나는 어디론가 잠시 숨 돌릴 틈 없이 램프가 꺼져 길을 잃지 않으려면 이제는 그 포장을 열고 마주해야만 하는 순간이 왔다. 먼저 여행을 떠난 자들과 같은 길을 걸어가며 기름을 구할 것인지, 이제라도 다른 길을 찾아볼 것인지. 오랜 고민을 할 겨를 없이 나에게는 의도치 않게 2년의 시간이 주어졌고 잠시도 숨을 돌릴 수 없다는 생각은 나를 더 조급하고 불안하게 만들며 숨을 조여왔다.


살고 싶었지만 가진 것은 없었고, 괴로움에 몸부림치며 6개월간 병원 대신 찾아갔던 곳에서도 원하는 답을 찾지 못했을 때는 내가 유독 예민한 걸까, 나만 이상한 사람일까, 없는 것을 찾으려 하니 못 찾고 있던 걸까 고민하며 동반자에게 이야기를 꺼냈지만 위로를 건넬 뿐 마찬가지로 답은 주지 못했다. 한 동안은 동반자를 제외한 그 누구와도 만나지 않고 숙소에 머물러 있는 날들이 길어졌다.


그러던 중 우연히 한 통의 연락을 받고 만나 대화를 나눴던 그 사람은 내가 만났던 사람들 중 유일하게 본인의 여행의 이유를 명확하게 알고 있던 사람이었다. 나에게도 앞으로 어떤 길을 걸어가야 할지, 그 길을 찾는 방법을 알려줄 수 있다고, 반드시 네가 원하는 그 빛을 만나게 해 주겠다고 자신감과 확신에 차서 생명을 나누어 주었다. 나는 그 빛에 매료되었고, 그렇게 빛을 따라가다 보니 내가 원하는 길을 밝히고 답을 찾기 위해서는 진실의 산으로 가야 함을 깨닫게 되었다. 진실의 산에 대하여는 나는 아는 것이 없었지만 흉흉한 소문들은 가득했다. 그 산에 사는 사람들은 바보라고 하더라, 가진 모든 재물을 빼앗아 갈 것이고, 납치하고, 감금하고, 폭행할 것이다, 사람을 벗겨먹고 잡아먹는 예티가 살고 있다더라, 등등..


산에 오르기 위해서는 많은 준비가 필요했다. 오르려는 마음을 가지기 위해서는 빨간 약과 파란 약 사이 고민하며 내가 지금까지 알고 있던 상식을 벗어내야 했고, 산 초입을 통과하기 위해서는 인정하고 싶지 않은 나의 가장 더럽고 솔직하고 모습들을 마주 보고 닦아내고 태워야지만, 산을 끝까지 오르기 위해서는 내가 가장 버리고 싶지 않은 소중한 것들마저 내려놓을 수 있어야 했다. 빛을 따라가다 보니 나와 같이 온 사람들이 많이 있었다. 나만 이 빛을 찾고 있던 게 아니었구나 안심이 되면서도 지금까지의 여행이 그러했듯 이 사람들이 동료라고 생각이 들지는 않았다.


산에 초입에 다다르기까지 나는 마지막까지 동반자를 놓을 수 없었다. 그렇기에 산에 함께 가자 제안했을 때 운명의 시험인지 갑자기 큰 눈보라가 시작되었다. 재앙이었다. 우리는 잠시 숙소에서 있을 뿐 누구와도 만날 수 없었고, 예고하지 않았던 재앙은 우리를 당황스럽게 하고 너무나 가혹했기에 사람들은 진실의 산의 저주로 그 눈보라가 시작되었다고 믿었다. 비참하게도 나의 동반자도 그 저주를 믿었고 심지어는 같이 가자 제안한 나마저도 진실의 산의 사람이라고 의심했다.


그때 나는 오랜 고민 끝에 우리는 서로 사랑하지만 생명을 나눌 수 없고, 같은 빛을 바라보고 있던 것이 아님을 눈으로 확인하는 순간이었다. 눈보라보다 더 서럽게 눈물을 흩날리며 동반자와의 이별을 고한 채 나는 도망쳐 나와 마음에만 담아두었던 먹물들을 토해내듯 쏟아내고 태움으로 마침내 진실의 산에 들어가게 되었다.


진실의 산에 들어와서는 모든 것을 포기한 만큼 빠르게 올라가기 시작했고, 셰르파의 도움을 받아 비교적 꽤 빠르게 높은 곳까지 올라갈 수 있었다. 진실의 산에 올라가면 올라갈수록 나는 더 많이 먹물을 토해내기 시작했다. 맑아졌다 싶을 때쯤이면 다시 토했던 먹물을 밟고 발을 닦아가기를 반복하면서 이미 살가죽이 된 가면을 뜯어내는 과정은 고통스러웠다.


가면을 뜯어낸 자리에는 숲처럼 많은 얼굴들이 있었다. 꽤 오랫동안 울고 있던 얼굴을 발견하기도 했고, 어른인 척 노력하려고 겸손한 척 예의 있게 가식 떠는 모습, 잘하는 것만 보여주려고 하는 모습, 사실 게으른 사람인데 성실한 사람인 척하려는 모습, 사실 속으로는 욕하면서도 좋은 생각과 좋은 말만 하려는 모습, 그 숲을 지나 중심 가운데 있는 진짜 본심은 결국 그 모습마저도, 그렇지 않은 모습마저도, 아등바등 살아남고 싶었고, 사랑받고 싶었고, 내가 살아있음을 증명하고 싶었고. 그렇게 나의 생명을 전해주고 싶어 하는 나를 만났다. 내가 찾던 빛, 내가 찾던 생명, 그리고 그것이 영원할 거라 생각해 본 적도 없으면서 바라왔던 소원이 이루어지듯 잃어버린 길이 밝혀지고 흑백이었던 풍경에 색깔이 입혀지듯 황홀경을 겪었다.


진실의 산도 사람들이 사는 곳이었기에 여태 지나온 여행과 같이 다르지 않은 사람들도 많이 있었다. 그리고 산이라 살아남기 위해서는 서로가 서로를 보호할 필요가 있었기에, 군대 같은 분위기와 가족 같은 분위기가 공존하는 곳이었다. 그곳에 함께 했던 사람들은 크게 세 부류였는데 몇 년 전에는 누구보다 열심히 그리고 높이 올라갔다 지쳐 누워있는 사람들, 이제 막 입산한 사람들, 그리고 셰르파가 된 사람들이었다.


네 번째 여행을 시작한 지 어느덧 4년, 진실의 산에서의 2년 그 사이 나는 셰르파가 되었다. 책임감과 소속감보다도 나를 처음 도와주었던 셰르파가 멋있어 보이기도 했고, 내가 경험한 황홀경을 알려주고 싶다는 생각, 그리고 나도 이제는 길을 찾았으니 찾아가기만 하면 된다는 생각에 열정을 가지고 시작했던 것 같다.


하지만 셰르파가 되고 나서야 깨닫게 된 것은 진실의 산에 온 사람들 가운데 빛 하나만 보고 온 사람들은 생각보다 많이 없었음을 보기도 했다. 누군가는 호기심에, 누군가는 권유에 끌려오듯, 누군가는 빛보다는 진실이 맞으니까, 그 외로는 입에 담기도 어려운 목적을 가지고 온 사람도 적지 않았다. 같은 길을 걷고 있는데 가고자 하는 목적지가 다 다르니 안내하기 너무 어려웠고, 나의 생명을 나눠주면서 심지어는 빌어서라도 같이 가자 독려하다 크레바스에 빠져 부상을 입은 나는 결국 셰르파를 그만두겠다 말했다.


셰르파를 그만둔 이후 나는 한동안 누워있었다. 그 사이 어느 정도 회복을 했기에 완전한 복귀까지는 아니더라도 가끔 일을 도우며 재활을 하고 있었다. 다섯 번째 여행을 준비하며 나에게는 두 가지 선택지가 남었다. 셰르파로써 진실의 산 가운데서 갈 수 있는 높은 곳에는 거의 다 가 보았으나 '진짜'가 되지 않으면 가지 못하는 곳이 남아있었고, 동시에 그 길을 가고자 하는 동반자를 기다리며 지원해 줄 준비를 하는 것이었다.


한 때는 더 높이 올라가서 더 밝게 빛나고 싶다는 생각이 컸지만, 높은 곳일수록 떨어질 때 더 아프다는 것을 깨닫고 난 뒤로 나는 진실의 산에서 내려가지는 않더라도 더 올라가지는 못하지만 동반자를 다시 만나게 될 때 지원해 줄 수 있게 준비를 하기로 택했다.


처음에 이 선택을 하고 이야기하기까지 많은 수치심을 견뎌내야만 했다. 이곳에서는 높은 곳에서 빛나는 것이 옳게 된 것처럼 받아들이니까. 물론 모두가 같은 위치에 있을 수는 없기에 각자의 모양이 다양하다 위로하지만 그렇게 말함으로 자신의 위치를 더 공고히 하며 반면교사 삼는 모습들을 보면 역겨우면서도 그 시선이 두려웠다. 왜냐면 내가 그러했음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으니까. 그렇기에 셰르파의 자리까지 갈 수 있었다는 것을 너무나도 잘 알고 있었으니까.


가면을 뜯어냄으로 셰르파가 되었던 것인데 셰르파가 되면서 다시 가면을 집어 쓰는 모순과 사실은 마음 진짜 깊은 곳에서는 진실의 산에 있다가 다시 돌아간 사람들의 이야기가 마냥 무지성 소문만 있지만은 않다는 것, 하루빨리 영원하기를 바라며 지금 이뤄졌다는 말에는 미쳤다고 생각하는 나의 마음에는 다시 먹물이 차올랐다.

이제 마음은 굳어졌고 나는 떠나고자 한다. 정답은 정해져 있지 않았음을 발견했고, 이제는 내가 그려가고자 한다. 넘어지지 않는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닌 다시 일어나는 것이 중요하다면 넘어지더라도 평지에서 넘어지는 것이 낫지 않겠는가. 그리고 빛이 밝아야만 살아있는 것이 아님을 이제는 알았기에 나는 그 자체로 빛나는 법을 앞으로의 여행에서 찾고자 한다. 안녕, 나의 Anima.