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떻게 살 것인가』
몇 해 전, 일출을 보러 같이 가자는 친정 식구들을 따라 동해에 간 적이 있었다. 추운데 굳이 해가 뜨는 광경을 보아야 하나 툴툴 대면서 나선 참이었다. 새벽 찬바람이 매서워 절로 몸이 움츠러들었다. 얼마 기다리지 않아 태양의 붉은 기운은 바닷속에서부터 새어 나오기 시작했다. 해는 아주 천천히 올라왔다. 시간이 느리게 흘러갔다. 그 광경을 보고 있노라니 분명 어제와 같은 오늘이지만 새로운 시간을 맞이한다는 느낌에 가슴이 벅찼다. 평소에 새해가 되었다고 계획을 세우거나 다짐을 하는 편은 아니었다. 이루고 싶은 일이 있다면 날마다 꾸준히 하는 게 더 낫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작심삼일이라는 실망을 하고 싶지 않아서이기도 했다. 하지만 그 날은 떠오르는 태양을 보며 나도 모르게 새해 소망을 빌어보고, 이루고 싶은 일을 떠올려 보았다.
새해가 되면 자연스럽게 작년까지의 삶을 돌아보면 감사하고 고마움을 느끼게 된다. 극복하기 어려울 정도의 큰 불운과 시련을 겪지 않았고, 몸도 크게 아프지 않았으며, 가족들도 별일 없이 살아오고 있다. 한때는 겪고 있는 불행을 크게 확대해서 나만 왜 이런 일을 겪나라고 생각하기도 했다. 다른 사람들에게서 왜 이런 대접을 받으며 살아가고 있나 절망스러울 때도 있었다. 하지만 상황은 바뀌기도 하고 이를 받아들이는 마음도 변화하기도 한다. 그러면서 있는 그대로의 현실을 받아들이고, 필요 이상으로 의미를 부여하거나 상황을 나쁘게만 해석할 필요가 없음을 깨닫게 되었다. 김연수 작가는 『소설가의 일』에서 ‘흔한 인생을 살아가더라도 흔치 않은 사람이 되자’며, ‘미문을 쓰겠다면 먼저 미문의 인생을 살자’는 말을 건넨다. 자신의 평범한 일상에 늘 감사하는 사람이 되자는 말도 덧붙인다.
새해를 맞이하여 읽기 좋은 책은 어떤 게 있을까? 새로운 해가 밝았으니 앞으로 어떠한 삶을 살아가야할까 고민해보는 시간을 가져보는 것도 좋겠다. 유시민 작가의 『어떻게 살 것인가』를 추천해본다. 저자는 인생을 살아가는 가장 핵심적인 네 가지 요소를 ‘놀고 일하고 사랑하고 연대하라’로 정리했다. 개인적 욕망을 충족하면서 즐기며 사는 것이 최고라는 생각은 더 좋은 사회제도와 생활환경이 삶을 행복하게 만들 것이라는 믿음만큼이나 온전치 못한 것이라고 말한다. 일과 놀이와 사랑만으로는 인생을 다 채우지 못한다. 그것만으로는 삶의 의미를 온전하게 느끼지 못하며, 그것만으로는 누릴 가치가 있는 행복을 다 누릴 수 없다. 타인의 고통과 기쁨에 공명하면서 함께 사회적 선을 이루어나갈 때, 우리는 비로소 자연이 우리에게 준 모든 것을 남김없이 사용해 최고의 행복을 누릴 수 있다. 그런 인생이 가장 아름답고 품격 있는 인생이다.
올해에는 긍정적이고 밝은 에너지를 주는 사람들을 통해 행운을 충전하고 내 운도 다른 사람에게 나누어 주면 어떨까 싶다. 가진 것을 감사하고 본래의 나를 받아들이며 살아가는 한 해가 되었으면 한다. 세상에 대한 따뜻한 시선도 놓지 않으면서 말이다. 새로운 인생을 살게 되지는 않겠지만 조금씩 나아지는 사람이 되고 싶다.
◆책속의 한 구절
‘왜 자살하지 않는가?’ 카뮈의 질문에 나는 대답한다. 가슴이 설레어 잠을 이루지 못하는 밤이 있다. 이루어지기만 한다면 너무 좋아서 두 주먹을 불끈 쥐고 뛰어오를 것 같은 일이 있다. 누군가 못 견디게 그리워지는 시간이 있다. 더 많은 것을 주고 싶지만 그렇게 할 수가 없어 미안한 사람들이 있다. 설렘과 황홀, 그리움, 사랑의 느낌…. 이런 것들이 살아있음을 기쁘게 만든다. 나는 더 즐겁게 일하고 더 열심히 놀고 더 많이 더 깊게 사랑하고 싶다. 더 많은 사람들과 손잡고 더 아름다운 것을 더 많이 만들고 싶다. 미래의 어느 날이나 피안의 세상에서가 아니라, ‘지금’ 바로 ‘여기’에서 그렇게 살고 싶다. 떠나는 것이야 서두를 필요가 없다. 더 일할 수도 더 놀 수도 누군가를 더 사랑할 수도 타인과 손잡을 수도 없게 되었을 때, 그때 조금 아쉬움을 남긴 채 떠나면 된다. p.56
◆한줄평
놀고 일하고 사랑하고 연대하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