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몬드>와 <앵무새 죽이기>
인류가 지금까지 발전해올 수 있었던 이유 중 하나는 공감을 기반으로 이루어지는 상호 협력입니다. 공감이란 다른 사람의 경험, 즉 타인의 아픔과 고통에 반응하고 이해하는 감정을 뜻합니다. 그런데 인간의 뇌는 분석을 하는 능력과 공감을 하는 능력을 동시에 실행시킬 수 없습니다. ‘왜 그럴까?’라고 논리적으로 생각하는 순간 공감 능력이 떨어지기 때문입니다. 반면 사람의 감정을 공유할 때는 분석 능력이 떨어지게 됩니다. 두 가지의 뇌 패턴이 동시에 존재하지 못하는 것입니다.
어릴 적부터 공감 능력이 상당히 떨어지는 편이었던 저는 친구관계를 맺고 유지하는 게 쉽지 않았습니다. 슬픈 일을 겪거나 힘들어하는 친구들을 공감해주고 위로해주는 일도 서툴렀지요.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대안을 제시해주는 일은 수월했는데, 사람들은 이보다는 그냥 들어주기를 원한다는 사실을 잘 몰랐습니다. 반면에 현상에 대해 분석하고 왜 그러한지 이유를 궁금해 하고, 근거를 제시하며 결론에 이끌어가는 과정은 좋아했습니다. 공감 능력이 부족한 편인 제가 성장하면서 공감 능력을 쌓을 수 있었던 이유는 전적으로 어린 시절부터 문학을 읽어왔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손원평의 소설 『아몬드』의 주인공 윤재는 편도체가 보통사람들보다 작아 감정을 느끼지 못하는 소년입니다. 그래서 적절한 반응을 하기가 쉽지 않았죠. 엄마는 윤재에게 상황에 따른 매뉴얼을 적어주고 외우게 해서 행동하게 합니다. 윤재가 사람들의 감정을 이해하게 된 건 책을 통해서입니다. 윤재는 서점을 운영하시는 엄마로 인해 자연스럽게 독서의 세계로 빠져들게 되었고, 자신은 느끼지 못하는 감정들을 책을 통해 이해하게 됩니다. 윤재 정도까지는 아니지만 저도 어릴 적 소설을 읽으며 주인공의 상황을 상상해보고 인물이 느꼈을 감정을 상상해보곤 했습니다. 소설에서 인물이 처한 상황에 몰입하여 빠져들면서 그 사람의 감정을 더 깊게 느낄 수 있었습니다.
만약 어릴 때 소설을 많이 읽지 않았더라면 어땠을까요? 분석적인 성향이 더 발달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논리적으로 생각하는 순간 공감 능력이 떨어지고 감정을 공유하는 순간 분석 능력이 떨어진다면, 이 둘을 조화롭고 균형 있게 유지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논리적이며 공감 능력이 떨어지는 사람은 문학을 읽어서 공감 능력을 확장시켜 나가야 하고 반대로 분석 능력이 떨어지는 사람은 논리적인 글인 철학, 과학 분야의 책을 읽어서 분석 능력을 키워나가는 게 좋습니다. 이성적인 사람일수록 문학작품을 많이 읽는 게 필요합니다. 문학은 기본적으로 타인의 슬픔과 기쁨, 아픔과 고통을 이해하기 위해 다가가는 교본과도 같습니다. 문학을 읽는 일은 타인에 대한 공감능력을 키울 수 있는 가장 좋은 방법입니다. 등장인물과 동일화를 경험하게 되면 다양한 감정을 등장인물을 통해 마주할 수 있기 때문이지요.
타인의 입장에서 생각해보는 일은 생각보다 쉽지 않습니다. 누구나 자신의 입장을 먼저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누군가를 이해한다는 것은 그 사람의 입장이 되어보는 일입니다. 하퍼 리의 『앵무새 죽이기』에서는 아버지가 딸 스카웃에게 다른 사람을 이해하는 방법에 대해 이렇게 조언을 해줍니다. “무엇보다도 간단한 요령 한 가지만 배운다면 모든 사람들과 잘 지낼 수 있어.” “누군가를 정말로 이해하려고 한다면 그 사람의 입장에서 생각해야 하는 거야.” “네?” “말하자면 그 사람 살갗 안으로 들어가 그 사람이 되어서 걸어 다니는 거지.” 정말 멋진 말이라서 꼭 기억하고 싶었던 구절입니다. 이처럼 대상에 대한 이해가 공감의 첫 단계입니다. 문학은 우리를 그 길로 이끌어줍니다.
# <다시, 문학이 필요한 시간> 중 문학을 읽어야 하는 이유 부분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