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다시, 문학이 필요한 시간>
우리는 어릴 적부터 이야기를 좋아해왔습니다. 학자들은 호모 사피엔스가 허구적 이야기를 만들어내는 데 능숙한 재능을 가졌다고도 하고, 뒷담화를 통해 집단의 결속력을 강화시켜왔다고 주장하기도 합니다. 사람들은 이야기를 통해 경험해보지 못한 세계를 체험하며 가상의 여행을 떠나기도 하고, 이야기 속의 인물이 처한 상황을 마치 나에게 일어난 일인 양 몰입하기도 합니다.
사람들이 이야기를 좋아하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자신의 이야기를 다른 사람에게 들려주고 싶은 본능이 내재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흔히 인류의 문화가 발달할 수 있었던 이유 중 하나는 인간이 이야기를 만들어내는 능력을 계속 진화시켜왔기 때문이라고 주장하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자신이 어떤 사람인지 다른 사람에게 알려주고 싶은 욕망 때문에 인간의 이야기 능력은 계속 발달해왔습니다. SF 문학계에서 주목받고 있는 켄 리우는 소설집 『종이 동물원』의 서문에서 이렇게 설명합니다. “우리는 남에게 자기 이야기를 들려주려 애쓰며 평생을 보낸다. 그것은 기억의 본질이다. 그렇게 우리는 이 무감하고 우연적인 우주를 견디며 살아간다.” 이 말은 인간에게 이야기가 갖는 의미를 압축적으로 설명해주고 있습니다. 문학이란 인류의 이야기를 정제된 언어로 빚어놓은 예술작품입니다.
문학이 지금까지 생명력을 이어오게 된 데에는 여러 이유가 있을 것입니다. 책을 읽는 이유가 각자 다르듯이, 사람들이 문학을 읽는 이유도 동일하지 않습니다. 저 역시 문학을 읽는 이유는 계속 변화해왔습니다. 10대 때는 이야기의 상상력이 주는 재미가 컸고, 20대 때는 다양한 인간 군상의 모습을 엿보는 즐거움이 있었습니다.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아 기르면서부터는 타인에 대해 이해하고 공감하는 이야기가 좋아졌습니다. 최근에는 미래 사회에 관심이 많아지면서 SF소설을 즐겨 읽습니다. SF소설은 상상으로만 존재하는 미래 사회의 구체적 모습을 제시해주면서도 인간만이 가지고 있는 고유한 특성에 질문을 던져주어서 좋습니다.
독서의 매력은 내가 잘 모르는 세계로 나를 이끌어줄 때 발생합니다. 기존에 알고 있고 믿고 있는 세계 너머로 우리를 이끌어주면서 내면의 경계를 넓혀줍니다. 그 순간 우리는 그동안 닫혀 있던 세계에서 벗어나 계속해서 성장해 나갈 수 있습니다. 문학은 다양한 세계의 모습을 상상력을 통해 구현해내는 장르입니다. 문학의 보편적인 주제 중 하나는 인간에 대한 탐구이며 사람들은 소설을 읽으면서 나 자신에 대한 탐구뿐만 아니라 타인에 대해 이해할 수 있게 됩니다. 흔히 살면서 다른 사람들이 내 맘 같지 않다는 말을 하곤 합니다. 우리는 애초에 타인을 온전히 이해할 수 없습니다. 각자 자신의 내면 세계에 갇혀 있기 때문이지요. 저는 자신만의 세계 너머의 것들에 관심을 가지게 도와주는 사람이 바로 작가라고 생각합니다. 내가 전혀 상상할 수 없는 다른 사람들의 세계를 보여주며 그들을 이해하기 위한 다리를 놓아주는 역할을 합니다.
소설을 읽으며 구체적 상황 속에서 타인을 이해하게 되고, 그 이해는 공감의 영역으로 연결됩니다. 타인의 고통에 대해 감응할 수 있는 힘, 이는 문학이 우리에게 줄 수 있는 가장 값진 선물입니다. 김연수 작가는 『시절일기』에서 문학의 힘은 '역접의 힘으로 세상을 바라보는 일'이라고 말합니다. 타인에 대한 완전한 애도가 불가능함을 알기에 소설가는 소설을 쓰고, 우리는 문학을 읽는 것이겠지요. 내가 살아가고 있는 세상에 대해 눈 감아버리지 않게 만들어주는 힘을 문학은 가지고 있습니다.
이 글을 쓰게 된 계기는 두 가지였습니다. 8년 전부터 독서모임을 해오고 있는데 문학은 읽지 않는다는 분들을 종종 만나게 되었습니다. 독서에는 당연히 문학읽기가 포함되는 것이 아닌가 라고 생각했던 저는 몹시 의아했습니다. 그래서 왜 문학을 읽지 않는지 이유를 여쭤보았습니다. 각각 여러 이유를 들려주었는데 그 대답을 따라가 보면 ‘문학은 이해하기 어렵다’ 또는 '직접적으로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내용과 연결되어 있었습니다. 이런 대답을 들으며 저는 문학이라고 해서 다 어려운 건 아니며 좀 더 편하게 문학에 접근할 수 있는 길을 안내해보고 싶어졌습니다.
두 번째 이유는 어떤 문학책을 골라야 할지 선택이 힘들다는 분들에게 도움을 주고 싶었기 때문입니다. 어떤 분은 제게 이렇게 말을 하셨습니다. “비문학 도서들은 읽고 싶은 책을 고르는 게 어렵지 않은데 문학책은 제목만 봐서는 어떤 책을 골라야 할지 잘 모르겠어요. 내게 필요한 책이 무엇인지 알 수 없어서 답답할 때가 많습니다. 다양한 책을 읽어봐야겠다고 결심을 했는데 문학 작품을 고르는 일은 제겐 항상 어려운 일이에요. 어떤 책을 골라야 할지 잘 모르니 결국 가장 인기 있는 작품을 골라 읽은 적도 많아요. 베스트셀러라고 해서 읽었는데 내게는 잘 맞지 않는다는 느낌이 들더군요. 제게 맞는 문학을 읽어보고 싶은데 선택이 쉽지가 않습니다. 자신에게 필요한 문학작품을 선택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가이드북이 있었으면 좋겠어요.” 이 말을 들으며 ‘읽어볼 만한 좋은 문학들이 잘 소개된 가이드북이 있으면 좋겠구나’라는 생각을 해보게 되었습니다. 쉬지 않고 책이 쏟아져 나오다보니, 누군가의 해설이나 안내가 절실해진 시대가 온 것입니다.
저는 책을 읽고 감상을 적어 올리는 모임을 5년동안 해오고 있습니다. 제가 소개해놓은 글을 읽고 책을 읽어보았다는 분들의 글을 읽으면 어찌나 기쁘던지요. 얼마 전 도리스 레싱의 『다섯째 아이』를 읽고 소개 글을 올렸는데 그 글을 읽은 분이 그 책을 너무 읽어보고 싶어서 도서관에 가서 책을 빌려 읽고는 정말 좋았다는 글을 남겨주셨습니다. 만약 소개 글을 읽지 못했다면 이렇게 멋진 작품을 읽지 못했을 거라며 감사의 인사를 전해주셨습니다. 그때 깨닫게 되었지요. 문학이라는 진입장벽 앞에서 조금은 친절하게 길을 인도해줄 가이드북이 필요하다는 사실을요.
그런데 막상 문학 작품을 추천하는 글을 쓰려고 하니 어떤 기준으로 소개를 해야 할지 고민이 됩니다. 문학은 취향의 차이도 있어 호불호가 갈리는 작품들도 의외로 많습니다. 나는 어떤 작품을 읽고 정말 좋다고 느꼈는데, 다른 사람도 이 작품에 대해 모두 비슷한 느낌을 가질 수 있을까요? 애초부터 그런 건 불가능할지도 모르겠습니다. 최소한 누구나 괜찮다고 느낄 만하려면 어떤 기준을 가지고 있어야 하지 않을까요? 그래서 저는 ‘국내외 수상작 중에서 재미도 있고 문학성도 있는 작품을 소개하면 어떨까?’라는 생각을 해보았습니다. 물론 문학상을 받았다고 해서 다 좋은 작품이고, 읽어볼 만하다고 주장하는 건 아닙니다. 하지만 최소한의 기준은 되리라고 판단했습니다.
이처럼 ‘수상한 독서법’이란 이왕 읽는 책, 검증받은 문학 작품을 읽어보자는 취지의 문학 읽기 독서법입니다. 독자분들이 이 책을 읽으며 문학을 좀 더 친근하게 받아들이면서 높다고 여겨지는 문학이라는 벽을 넘어설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자, 그럼 이제 수상작의 세계로 들어가 볼까요?
# 수상작을 중심으로 읽어볼 만한 국내외 문학책을 추천하는 <다시, 문학이 읽는 시간>의 서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