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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떠돌이 Aug 26. 2020

지금 내 머릿속은 빙글빙글

제가 당했어요 남들만 당하는 줄 알았던 사기. 브런치도 했던 업체 넥펀

여유 넘치는 재택근무자의 삶을 누리면서 지난번에 썼던 홍콩 여행기를 쓰며 그래, 이제 일주일에 한 번은 글을 쓰자 다짐했다. 게으름은 그 가속도에 관성이 붙으므로 그 속도를 좀 줄이고자 했다. 그 다짐이 와장창 깨진 건 나의 정신상태가 최근 평소의 온전한 상태가 아니었기 때문.




올 초, 작년 발리에서 만난 야무진 동생 A를 통해 잠자는 돈을 어떻게 굴리면 좋을까 물어봤다. 그녀가 제안한 것이 P2P였고 여러 개를 하는 중 연체가 하나도 없는 곳이 있다고 했다. 나는 이전 직장의 퇴직금과 잠자고 있던 예금+월급을 탈탈 털어 열심히 부었다. 1년을 일하지 않고 먹고 놀아도 되는 돈이었고 저축을 하지 않고 과소비하지 않는다면 2년도 생활 가능한 금액이었다. 1월 말 투자를 시작한 그 업체는 7월 9일 갑자기 돌연 경찰 수사와 함께 폐업했다 제기랄.


처음엔 이게 뭔가? 싶고 어지러웠다. 흔히 말하는 붕- 뜬 느낌. 현실에 발을 디딘 것 같지 않아 실감이 나지 않는 느낌.

찾아보니 이미 피해자 카페가 만들어져 있었고 나처럼 폐업 소식을 며칠 늦게 접한 사람들이 계속 가입하고 있었다. A는 내 속을 모르는지 미안한 마음이 들어서인지 자꾸 확인되지 않은, 현실 불가한 이야기들을 했다.

언니 전자소송했어요? -개인이 거의 불가능할 정도로 어렵다 세시간 그냥 날림 오십견올뻔..

언니 가압류 신청했어요? - 이미 다 알아봤다

조금만 검색후 사실이나 가능여부를 확인이라도 해보고 알려주면 좋으련만 그녀의 말에 이것저것 찾아봤다가 결국 안된다는 걸 알고 나서는 야무진 그녀가 왜 핑프 짓을 해대는지 화가 났다. 미안함이겠지, 그녀가 여길 소개해 줬으니. 그러나 투자 결정을 한 것은 나고, 책임은 온전히 나에게 있다.


P2P 세계엔 여러 업체가 있었고 그러한 업체에 대한 정보들을 공유하는 피자모 카페가 있었다. 알고 보니 내가 투자한 업체는 불투명한 정보 공개로 이미 그 카페에서 퇴출된 상태였다. 몇 년 전 일이 있으니 이 카페를 보고도 나는 아마 연체율 0%만 믿고 투자했을 것이다. 아냐, 이 카페를 봤으면 좀 달라졌을까? 머릿속이 오락가락했다. 카페에선 말하고 있었다. 방귀가 잦으면 똥이 나오는 법이다. 말이 많은 업체는 피하라. 내가 사기를 당한 바로 그 업체는 이미 오너의 동생이 비슷한 사기 전과로 감옥살이를 한 전력이 있었고 여러 의혹이 제기되었으나 해명을 제대로 하지 못해 카페에서 활동을 정지당해 정보가 올라오지 않는 상태였다.


수많은 생각이 머릿속을 헤집었다. 잃은 돈으로 할 수 있었을 법한 많은 것들이 떠올랐다.

세계여행, 호캉스, 크루즈 여행, 다이빙이나 서핑 등을 마스터급으로 배울 수 있는 비용, 외제차 반 이상을 현금납부 후 나머지는 분할로 돌릴 수 있는 금액, 그냥 예금이나 넣어놓을 걸.. 혼자 필굿 맥주를 사서 돌아오는 길엔 더 비싼 맥주 몇백 번은 먹었을 수 있는 돈인데 싶은 생각과 아니지 아무 술이나 안 가리고 진탕 마시고도 남겠다 같은 생각들.. 하고 있는 행동의 고급 버전과 실행하지 못한 행위들의 등가 비용들이 자꾸만 머릿속에 떠올랐다. 며칠 동안 이런 생각에 시달렸고 속이 쓰렸다. 그 동안에도 변호사 사무실을 찾는 등 구제방법을 알아보느라 여기저기를 뛰어다녔고 (당연하지만 이렇게 오너가 대놓고 판을 벌인 경우엔 이미 늦은 경우가 대부분이며 압류 후 돌려받을 금액이 거의 한자리 퍼센트이다) 단체 민사소송에 나름 큰돈을 부었으나 파투가 났으며 또 다른 변호사가 모집하는 그룹에 합류했다. 그리고 그 후 약 1~2주 동안은 위축된 심리 때문인지 소비를 극단적으로 줄이게 되었다. 야채 가격의 몇백 원 차이에 집착했다. 그렇다고 달라지는 건 전혀 없는데 말이다. 그 돈을 어떻게든 다시 모아야 한다는 생각도 잠시 들었다. 그리고 그 이후엔 이렇게 살아서 뭐하나, 제기랄 그냥 쓰자 라는 생각이 들어 그냥 썼다. 아냐, 최소한의 안전장치로 돈 오백은 있어야지 싶어 오백만 모은 뒤에 쓰자는 다짐으로 현재는 적당히 쓰며살고 있다. 이까지가 7월 초 이후 지금까지의 심경 변화이다.


그리고 많은 주변인들도 생각났다.

내게 돈을 다급하게 빌리려다 은행이 문을 닫은 시간이 되어 나는 빌려주지 못했는데, 당시 자신의 여유자금과 지인들을 통해 급히 모은 모든 돈을 사기당했던 요가 강사는 그 사건을 그냥 인생공부라고 생각하려고요 라고 말했었다. 발리와 제주에서 만난 돈가스 아저씨는 열심히 여행을 다니셔서 은수저쯤으로 생각했는데 알고 보니 돈을 안 모은다고 하셨다. 잘못된 투자로 전재산 말아먹고 제주도 내려온 이후로 돈은 모으지 않고 그냥 쓴다고. 그들의 모든 심정이 참 마음 깊이 이해가 갔다.


내 상황을 최대한 알리지 않고 알릴곳도 없었으나 필연적으로 마주치는 사람들의 태도는 이러했다.

나의 가장 가까운 생활 메이트는 단체소송 비용을 대 주었다. 혼자 소송비용은 너무 비싸지만 단체소송은 내주겠다고 했고 기꺼이 그 돈을 바로 계좌이체해 주는 감사한 모습을 보여주었다.

우선 아는 동생 A는 그 이후로 연락이 없어, 돈 잃은 것도 짜증 나는데 사람 잃을 수 없다는 생각에 내가 먼저 연락을 했다. 그녀가 먼저 연락하긴 어려울 것 같았다. 내 심정이 당시 어떠했는지를 설명하며 우리 관계에 영향을 받고 싶지 않으니 편하게 연락하라고. 그 이후로 예전과 같은 사이가 됐지만 가끔 '어떻게 될지 모른다'는 불안감이 이상하게 생겼다.

영어 강사 지인 P 씨는 내 이야길 듣자마자 나 같으면 못 산다,라고 했다. 그럼 죽으란 이야긴가? 이 말이 상처가 되어 계속 마음을 찔렀다. 그리고 네일 아트를 받은 내 손을 보며 하는 말. "그거 할 돈은 있나 보네?" 아, 원래 정기권 끊어놓은 거 남은 거 쓴 거예요 라는 대답을 하며 평소 툭툭 말을 던지는 그녀의 성정을 알만 짜증이 났다. 선물 받은 틴트를 가지고 있던 무료급식카드를 받는 학생에게 틴트 살 돈은 있나 보네 라고 물었다던 한 선생의 이야기가 생각난 건 왜일까.

네일샵 사장 Y 씨는 그게 뭐라고요, 저는 20대 때 파산 신청한 거 아직도 갚고 있어요 라고 했다. 10년 후의 나이가 아닌 지금 젊을 때 그런 사기를 당한 것을 오히려 다행으로 생각하라고. 경험에서 나온 충고라 그런가, 듣기 좋은 소리라 그런가 가장 마음에 와 닿았다.


이후 내 안의 짠순이 세포가 비상경계 태세로 출현하여 여러 가지를 돈으로 치환해주는 생활력 덕분에 평소라면 그냥 넘겼을 일들에 대해 억지?! 감사함을 갖게 되었다.

1. 방송통신대학교가 코로나로 인해 출석수업을 하지 않는 바람에 모든 과목이 시험 대신 과제로 대체되었는데, 할 때는 괴로웠지만 점수가 잘 나와 등록금을 면제받았다. 약 37만 원을 번 셈이다.

2. 브런치를 통해 알게 된 노브라 펀딩을 기다리고 기다려 풀세트 구매했다. 편함을 떠나 옷 디자인이나 가격이 그다지 맘에 들지 않았는데.. 후기 당첨이 되어서 풀세트 중 가장 비싼 원피스를 한벌 무료로 받았다.

3. 남들은 다 되는 것 같은데 나는 안되는 것 같았던 어플 '화해'의 화해설, 꼼평단에 2번 당첨되어 무료로 제품을 써 볼 기회를 가지게 되었다.

4. 소송 비용을 내 준 유일한 가까운 사람인 생활 메이트가 밥을 많이 사줬다. 웬만한 건 자기 비용으로 처리하려고 하는데, 인생사 새옹지마인지 더럽게 안 풀리던 생활 메이트의 재정 상태가 시간 외 수당을 적법하게 받게 되어 넉넉해진 곳간으로 인해 인심까지 넉넉한 상태가 되었기 때문. 심지어 얼마 전엔 갤럭시 노트20 공기계를 받았다. 나도 한참 뭘 해줄 때야 감사히 받았겠지만 이젠 나도 개털이라 모든 관계 기브앤테잌이 필요한 걸 아는 나로서는 받고 나서도 포장을 뜯기까지 일주일이 걸렸다. 주말에 폰 실물 보고 싶다고 난리 친 그가 아니었다면 아마 아직도 안 뜯었을지도..

사실 나는 핸드폰 오래 쓰기 대회 나가면 1등은 아니어도 2~3등은 할 정도로 오래 쓰는데, 쓰고 있던 폰의 빛 감지 센서가 망가져 어둠 속에선 뭘 볼 때마다 형광등처럼 액정이 깜박거리는 상태였다. 그 상태에서도 존버 하는 나를 보고는 중고기계를 알아보던 중 1년 사용 폰의 중고가가 60만 원 정도인 걸 보고 사전예약이면 약 100만 원에 살 수 있는 최신 기계를 보내 준 것이다. 거기다 사은품을 중고로 팔면 약 80만 원 후반대의 실제 구입 비용이므로 그렇게 했다고 나를 설득하며, 어차피 이거 주면 오래 쓸 거잖아 라며 덧붙인 말은 반박할 수 없었다. 그래 고장 파손이 아니라면 최소 몇 년은 쓰겠지. 감사히 받았다.


이렇게 최근까지 나의 삶은 이러했고, 코로나로 삭감된 월급은 오르지 않아 사장과 싸웠고 이틀 밤을 억울함 분노 짜증 등등의 감정으로 잠도 못 자며 전전긍긍하다 결국엔 관계가 돈독해지는 계기가 되었으며 아~주 약간의 월급 보상도 해 주기로 했다. 별거 없는듯 했지만 또 생각해보니 잔잔한 파도가 이는 날들이었다.


자, 이제 일상으로 돌아갈 시간이다. 할 수 있는 것은 다 해놓았고 나는 이제 내 삶을 제대로 살면 된다. 내 맡은 역할을 충실히 수행하기만 하면 된다. 술독에 빠지지 않으면 된다. 열심히 일에 빠져 볼 시간과 기회가 주어졌다. 오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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