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지부조화러'의 '모두 내 탓이오'
내가 겪는 일이 평범하지 않다는 걸 다른 집단의 사람들을 만나고야 깨달았다.
그리고 안도감이 들었다. 내가 이상한 게 아니구나. 스트레스를 많이 받는 게 맞는 거구나. 그럼 나는 꽤 잘 견뎌 왔구나.라는 걸 타인들이 말해주니 객관적으로 맞는 말 같았다.
직장에 대해 쓴 브런치 작가의 글을 보면서 나는 늘 가지고 있는 내 생각을 재 확인할 수 있었다. 생존의 도구인 동시에 가장 많은 시간을 보내는 ‘직장’이라는 사회의 영향력이 개인의 생각을 얼마나 좌우하는가, 그건 실로 어마어마하다.
젊은 직장인으로 보이는 작가는, 금요일 퇴근 직전, 업무를 하달받았음에도 정시 퇴근하여 고향으로 간 사람을 최악의 동료로 꼽았는데, 선작업을 해 주어야 하는 그 동료가 정시 퇴근하는 바람에 일이 늦어졌다는 이유였다. 아마 그 사람은 급한일도 없었을 거라는 단정과 함께. (사람 사정은 아무도 모른다!) 게다가 그 동료가 일을 안 한 것도 아니었고 퇴근 후 작업을 하여 몇 시간 후 보내 주었다고 하는데 나는 이럴 때 의문이 든다. 글쓴이가 화가 난 이유는 뭘까? 정말 그 사람 때문에 일이 늦어져서? 아니면 내가 그가 퇴근하고서야 보내 준 작업 때문에 업무가 늦게 끝나, 그래서 나까지 늦게 퇴근해서?? 화는 아마 그래서 났을 것이다. 내 퇴근이 늦어져서.
결과적으로는 마감 시한 안에 업무를 완수했고, 회사엔 아무런 피해도 없었고 나와 주변 동료가 그 때문에 늦게 퇴근했다. 자, 잘 들여다보자. 모든 일은 퇴근 무렵과 후에 일어난 것이 팩트이다.
나는 이런 경우, 동료가 아니라 그 시간에 업무를 하달 한 시스템(회사)을 탓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쪽이다.
그 작가 역시 취준생일 때 정시 퇴근을 꿈꾸지 않았을까?
그 최악의 동료는, 결과적으로 퇴근을 하고서도 일을 했고 결과물도 냈으므로 '회사'의 입장에서 보더라도 결코 최악은 아니다. 물론 처리가 급박한 일은 처리해야겠으나, 굳이 '최악의 동료'로 꼽힐 이유는 없다는 것이 그저 나의 '개인적인 생각'이다. 글쓴이의 입장에서 그 동료의 잘못을 굳이 꼽자면 (잘못이 아니라 차이가 맞겠지), 나와 다른 업무 태도밖에 없다. 동료의 행동엔 아무런 위법성이 없으며 고의적인 피해를 준 것도 아니다. 나를 늦게 퇴근하게 만든 피해는 엄밀히 말하면 시스템이 준 것이다.
이럴 때마다 늘 생각한다. '상황을 있는 그대로 보기 위해 정신 똑바로 차려야 한다' 고. 회사는 거대한 집단이고 우리의 입에 밥을 떠 넣어 주는 존재이므로, 또 일을 시키기 위해서 이지만 업무를 가르쳐 주기까지 하는 좋은 곳이므로 ‘자발적 노예근성’ 이 발현되기 매우 적합한 장소이다. 좋은 것만 있는 회사 (혹은 집단)는 세상에 없으므로, 좋은 것뿐 아니라 나쁜 것도 내 생각으로 체화되고 고착되기 쉽다. 그러므로 소속된 집단 안에서, 개인은 끊임없이 질문하고 상기해야 한다. 내가 정시 퇴근을 보장받지 못하는 노예라면, 노예가 노예임을 알고 자각하고 있기만 해도 큰 소득이다. 적어도 지금이 노예의 삶이므로 다음은 더 나아지기 위한 방법을 모색할 수 있기 때문이고, 그래서 삶이 한 뼘 더 나아지면 그것만으로도 좋고!
적어도 근거 없는 ‘자발적 노예근성’으로 무장하여 자신을 갈아 넣으며 충성하는 것보다는 노예임을 시인하며 정신승리라도 하자는 것이다. ‘현실 직시’라는 어려운 작업을 통해 올바른 생각만 가지고 있어도 생각의 주인은 내가 된다.
위 화제와 조금은 다른 방향의 이야기이지만, 나 역시 내가 노예 인지도 모른 채 모든 것이 나의 의지라고 여기며 괴랄한 부당함을 견디던 시절이 있었다.
남직원의 구성 비율이 99%인 첫 직장 생활을 시작하며, 나는 견뎌야 하는 게 많았고 그 견딤을 직장생활을 배우는 과정이라고 혼자 착각했다. 나는 신입이 대게 그렇듯, 회사에 과하게 충성하는 직원이었다. 그 견딤은 과중한 업무부터 시작 해, 언어폭력, 성희롱, 남자 상사들이 술이 취할 때 보이는 행동이었다. 업무는 뭔가를 배운다는 것으로 위안 삼을 수 있었으나 언어폭력에는 속절없이 무너져 참다 참다 화장실에 가서 눈물을 쏟았고, 1차 2차 3차까지 이어지는 회식과 과음은 괴로웠으며 나이 든 직장 상사의 끝없는 노래 가락에 백댄서를 해야 하는 것은 시간이 지날수록 미칠 지경이었다. 게다가 술이 거해진 남자 직원들은 성희롱을 실수처럼 하곤 했다. 심지어 분명 '평소엔 그런 사람이 아닌' 사람 역시 술이 과하면 그런 '실수'를 하곤 했다. 더 환장할 노릇은 그러한 실수가 한두 번으로 그치면 정말 '실수'로 치부되므로 아무 일 없던 듯 넘어가게 되며 당연히 사과는 없다. 그런데 그러한 실수의 수혜자인 나에게는 그 흔적이 상처로 남아 불쑥불쑥 떠오른다. 잊고 싶으나 잊히지도 않는다. 화나 분노는 가끔 통제 불능일 정도로 바깥으로 튀어나오려고 하며 아무리 눌러보아도 시시때때로 나올 기회를 엿본다.
내 깊은 내면은 분명 ‘이건 아님’을 알고 있었을 것이다. 마음을 조금만 솔직하게 건져 내 보면 알 수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견뎌내야 하는 괴로움이 일상 공기처럼 만연한 곳에서 내 정신이 살아남기 위해 택한 방법은 ‘인지부조화’였다. (희롱과 폭력을 견디는 게 어떻게 직장 생활의 배움인가? 개인적인 인내는 키워줄지 모르겠다.) 내가 밥 사주는 예쁜 누나에 그려지는 윤진아의 직장생활, 특히 회식 장면을 편하게 볼 수 없는 이유다. 당시의 나는, 내가 여자로서 받는 불편함과 원치 않는 친절함 역시 당연한 것이 아님을 배워가는 중이었으므로 다른 여직원보다 조금 더 예민한 레이더를 가지고 있었기에 더욱 괴로웠고, 여직원들이 내뱉곤 하는 ‘그럴 수도 있지’라는 말을 들을 때면 좌절감에 피가 거꾸로 솟구치는 것 같았다. 어떻게 저렇게 자신이 받는 차별과 피해에 대해 아무런 인식도 없을까 하는 절망감도 들었다. 여직원 대부분이 사무보조, 경리였으므로 나와 일이 달랐고 술자리가 있는 회식 혹은 접대 자리도 많지 않았다. 상대적으로 성적인 희롱이나 추행에 노출될 확률이 낮았던 그들은, 언어적인 성희롱 정도야 공기처럼 잘 넘겼다. 그들의 무감각이 부러울 지경이었다.
이런 일은 직장 생활 전에도 어쩌면 내 곁에 무수히 존재하던 일이었다.
졸업 후 학교에서 지원하는 취업 스터디 그룹에 단톡 방이 있었는데, 각자 취업을 하고 살 길을 찾고, 시간이 흐른 후에도 서로 연락을 하며 모임을 가지곤 했다. 그런데 가장 어린 남자 후배 한 명이 ‘일반인 몰카’ 같은 야동을 몇 번이고 단톡 방에 올리곤 했다. 남자 선후배들이 아무 말하지 않았던 이유는 모르겠다. 그리고 여자 후배 2명도 아무런 말이 없었다. 나는 엄청난 수치심을 느끼는데 쟤들은 괜찮은 건가? 아니면 아무 생각이 없나?라는 생각만 들었고 한두 번을 넘기자 수치심과 더불어 화가 났던, 프로 불편러인 내가 나섰다.
‘J야, 여기가 동네 친구들 단톡 방도 아니고 왜 자꾸 이런 걸 올리는데?’
(어느 곳에도 그래선 안된다 유포 역시 무거운 범죄행위이다.)
라고 묻자 스터디 당시 팀의 조장을 맡았던 남자 선배 한 명이 말했다. ‘야! 넌 꼭 항상 분위기 깨더라’를 시작으로, 과거의 사건을 들추고 왜곡해가며 나를 신나게 인신공격 하기 시작했다. 그 유아적인 태도와 내용도 너무 어이가 없었지만, 그 선배는 겉보기엔 번듯한 직장인이었다. 선거철에는 모두 선거를 하자는 공익 캠페인 영상도 포스팅하는 어쩌면 진보적으로 보일지도 모르는 보통 사람. 그러나 몰카에는 관대한 보통사람. 그래서 일상에서 피해가기도 힘든 그런, 지극한 보통 사람.
이런 일들이 비일비재한 것이 너무나 싫었다. 나는 고소장을 쓰러 직접 경찰서에 갔고, 모아 온 캡처 화면을 준비하여 처음엔 사이버 수사팀으로 다음엔 여성계로 갔다가 그 이후 모든 수고와 함께 고소 절차를 포기했다. 내가 직접 당한 피해의 입증이 어렵고 몰카 당사자가 아니며, 왜 XX 시 대학의 일을 이 경찰서까지 와서 의뢰하냐는 경찰의 태도는 민망스럽고 불편했다. 물론 그 단톡 방은 나왔지만, 그때 경찰에 제출하기 위한 모든 카톡 캡처 화면은 가지고 있다 혹시나 해서.
달라진 건 없다. 그들은 여전히 나 없이 연락하며 잘 지내는 것 같다만, 자신이 가해자 인 줄도 모르며 변태적인 행동에 대한 인식이 전혀 없는 인간들과 우정을 이어 갈 마음은 전혀 없다. 그래서 더더욱 며칠 전 발표된 문재인 대통령의 ‘몰카와 데이트 폭력에 대한 처벌 수위 낮으며 인식의 전환이 필요하다’라는 발언이 반갑다. 앞으로 성범죄의 경중을 가리지 않기를 바라며, 그에 관련한 법률과 시스템이 제도적으로 어떻게 개선되는지 감시자의 마음으로 지켜볼 것이다. 부디 알맞은 전문가들의 프로세스를 거쳐 잘 다듬어진 결과가 제도적으로 탄생되길 바라본다.
Ps. 이후 이직한 직장에서는 티 나는 성희롱의 빈도가 낮긴 했다. 그러나 모 과장이 해대는 말들, 젠더 감수성 이라고는 모르는 발언은 나를 지속적으로 힘들게 했다. 내가 집을 구할 때 '우리 집으로 이사 와라'며 옆에 있던 업체과 사장이랑 시시덕 거리며 해대던 저질스런 농담 (인지 모르겠다) 까지 참고 참았다.
어느 날 회식에서 성희롱 주제가 나왔는데, 내가 장난스레 언질을 주었더니 그 과장이 갑자기 자리를 박차고 나갔고, 다음날 아침엔 바로 내 자리까지 친히 오셔서 사람들 앞에서 한 바탕 시원하게 퍼붓고난 뒤, 나에게 정확히 "씨발년" 이란 워딩을 던지고 갔다. "그러니까 사람들이 싫어하지"라는 말과 함께. 말리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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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발 좀,
세상이 굉장히 괜찮아지는 것 까진 언감생심 바라지는 않지만 "보편 상식적인" 세상이 되었으면 좋겠다고 오늘도 생각한다. (솔직한 마음으로 그 과장 회사 나갔으면 좋겠다. 아니다, 어디 가서 철저히 짓밟히면서 딱 나만큼의 수치심과 억울함을 된통 봤으면 하는 게 내 못된 진짜 속마음이다.)
나는 내 잘못이 아닌 일로 더 이상 어떠한 폭력도 당하고 싶지 않은 평범한 사람이며, 모든 이들이 그러할 것이라 믿는다. 오늘도 나는 나의 하루를 돌아보게 될 것이다. 아니 그래야만 한다. 혹여나 내가 누군가에게 일상의 악마가 되었을지 모를 일이며, 보편 상식적인 행동을 하지 않는 인간이었을지 모른다.
우리가 항상 자신을 되돌아보아야 하는 이유이다. 나의 일상이 타인에겐 일상적이지 않을 수 있음을 생각해야 하는 이유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