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부하고 학습하자 적어도 성찰하자
예전 직장에서 날 특이한 방법으로 예뻐해 주신 상사가 있었다. 자, 그를 '정'이라고 부르자.
환갑이 넘었으므로 우리 아빠보다 나이가 많았고 다음과 같은 특징을 가진 사람이었다.
1. 목소리가 엄청나게 크다. 머리도 크다. 옛날에 태어났으면 완전 장군감.
2. 열심히 일 한 자신의 젊은 날에 비추어 요즘 직원들이 똑같이 하지 않으면 견딜 수 없어함
4. 업무에 대한 지적은 늘 예리한 칼날처럼, 인신공격이나 패드립도 서비스로 함께
5. 아래 직원들의 임금 협상 기회를 개인적인 용무 지시의 기회로 삼음
6. 부하직원에게 푼돈을 자주 빌리고 갚지 않음
7. 나를 "예뻐" 해서 할아버지들 (임원들을 이렇게 불렀음) 끼리 식사할 때 고기 굽순이로 항상 나를 데려감
8. 나를 점점 더 예뻐하면서, 내가 국내나 해외로 출장을 가면 밤에 전화. 안 받으면 10통 이상, 받으면 술주정
9. 매일 업무가 끝나고 법카로 술 마시러 가자고 함, 안 가면 다음날 흠 잡혀 4번의 방법으로 혼나게 됨
10. 법카로 껌부터 신문까지 사서 관리부를 곤란하게 함
11. 둘이 술을 과하게 먹은 날, 늘 당했던 언어 성추행 이외 직접 신체적 성추행
12. 직원들의 이력서에 쓰인 개인사 (이혼, 조실부모)를 자세히 물은 후 회사에 대방출
13. 직책의 고하에 상관없이 떠넘기기, 미루기, 탓하기를 함, 공은 자신의 것으로 돌리는 특기가 있음
이 밖에도 여러 가지가 있는데, 나는 그 회사가 급성장하는 시기에 입사했으며 하필 또 급 쇠락하는 시기에 퇴사하게 됐다. 어찌 보면 고마운 점은 급성장하는 회사라 일을 온갖 업무를 배울 기회가 많았던 것과 (심지어 임원 급 일을 수행 하기도 함) 급 쇠락하는 시기에 나오면 왠지 배신자 같아 보일 수 있었던 상황에서, 정씨의 결정적 한방(이라 쓰고 여러 방)으로 미련 없이 회사를 나올 수 있었던 점이다.
당시 내 프로젝트가 매우 잘 되는 상황이라 대표이사는 내 사표에 절대 결재를 해주지 않았는데, 우선 갈 데까지 간 내 정신상태를 챙겨야 했기에 회사를 그만 둘 작정으로 대표이사를 밖에서 따로 만나 결판을 봤고, 그 이후 대표 직권으로 1주일 휴가 후 옆 공장으로 전보가 났다.
평화롭던 며칠이 지나고, 어느 날 출근 해 보니 정씨가 같은 사무실로 옮겨 와 있었다..ㅜㅜ 씨불.. 이때는 정씨도 뭔가 낌새를 채고 날 조심히 대했으므로 나 역시 눈에 띄지 않도록 숨죽이고 늘 숨듯이 투명인간처럼 회사를 다녔다.
인간은 늘 같은 실수를 반복한다고 했던가. 정씨가 어느 날 회사라는 공간임을 잠시 잊은 건지 아주 큰 목소리로, 그리고 전사적으로 모든 직원이 들으라는 듯 나에게 개소리를 해댔고 나는 그날 다시 사표를 썼다. 대표이사 결재는 어차피 못 받기에 그가 부재중인 틈을 타 관리부에 넘겨버렸다. 이까지는 이전 회사의 스토리로, 3년이 조금 넘은 이야기이다. 쓰다 보니 성질이 나는데, 덧붙여 말하자면 정씨는 아들이 63 빌딩 요식업계에 근무하는데, 아들의 퇴근시간인 10시 이전에 퇴근하는 것이 죄책감 든다며 회사에 일이 없어도 앉아있었다. (가족은 서울, 정씨는 회사를 따라 지방에 살고 있었음) 문제는, 아무 일 없는 직원들도 그 시간까지 잡혀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진짜 기가 막히고 코가 막힌다.
내가 이 글을 쓰는 이유는 이후 옮긴 회사에서 소름 끼치는 평행이론을 실감했기 때문인데, 여기 정씨랑 똑같은 행동을 하는 사람이 있다. 지금도 재직 중이므로 현재형으로 쓰겠다.
사람이 좋아도 다양한 모습과 이유로 좋고, 나빠도 다양하게 나쁜데 이건 뭐 짜기라도 한 듯 1번부터 13번까지 똑같은 사람이라 놀랄 노자다. 행동 양식이 정말로 비슷하다 못해 똑같은데, 직함은 과장이고 나이는 40대로 정 씨보다 한참 어리고, 고향도 다르며 해온 일도 다르다. 한 마디로 성격이나 행동을 비슷하게 할 만큼 영향을 줄 만한 문화적 접점이 전혀 없다는 것이다. 그런데 행동이 똑같다니. 럴수럴수 이럴 수가 (아재 표현 죄송) 암튼,
무엇이 저 둘을 저렇게 똑같은 꼰대로 만드는가? 머리가 띵했다.
그 과장을 '마' 씨라고 부르자. 마씨는 내 사수는 아니었기에 그저 그에게 당하는 직원들을 보며 불쌍하단 생각만 했었다. 그러나 휴머니스트가 아니라도, 박애 정신은 더더욱 없는 개인주의자라 하더라도 그런 꼴을 보는 것은 인간으로서 당연히 몹시 불편하다. 그런 인간에게는 참을 수 있을 때까지 참다가 기회가 될 때 좋게 이야기하는 편이다. 그 나름의 이유가 있을 수도 있고 무튼 섣부른 판단은 안 하는 것이 좋으니까. 이때 중요한 건 듣는 사람의 이해도 인데, 마씨는 그런 이야기를 이해할 수 있는 정도는 아닌 것으로 판단됐다. 한마디로 무식했다.
그랬던 그가 어느 날 급변한 회사 사정으로 인해 내 직속 사수로 오게 됐다. 내가 하는 업무를 한 번도 해보지 않은 마씨도 당황했겠지만 나도 속으로 아.. 하는 생각이 스쳐갔다. 더 많은 설명도 필요 없겠지만, 마씨는 그 이후로 처음엔 도와달라는 식의 태도를 견지하다가 이후 나를 정말 다양하게 괴롭혔는데, 예를 들어 영어 한마디 못하는 그가 내 담당 프로젝트인 외국인 손님들과 접대 자리에 팀장이라는 이유로 끌려 나오면 마씨는 마씨대로 괴로울 것이었다. 술의 힘을 빌어 바디랭귀지로 넘어가는 듯했지만 그것도 한계가 있는지라, 그 괴로움과 예민한 모든 감정적 배설을 나에게 했다. 그야말로 동네 북.. 나랑 같은 위치의 남자 동료는 마씨에게 형님 이란 호칭과 함께 가족으로 그 범위를 넓혀 친목을 다져가며 징그러울 정도로 충성을 다했다.(개새끼) 타깃은 자연스럽게 내가 되었고 가만히 있으면 호구된다고 결국엔 그의 감정 쓰레기통이 되면서, 정신질환이 육체에 까지 영향을 주게 되는 말 그대로 중증의 병이 생기는 바람에 병원에 다니며 적극적 치료를 받아야 했다. 정말이지 지면으로 말하기 어려울 정도의 고통을 체험한 나날이었다.
정씨, 마씨와 같이 아랫사람이나 약자를 골라 괴롭히며 함께하는 공간을 지옥으로 만들고, 그 사실을 본인들을 모르며, 그럼에도 조직생활을 어찌 저지 꾸준히 해 나가는 종류의 인간들을 보며 느낀 것이 있다. 그러니까 그런 부류의 공통점은, 아래와 같은 기질을 강하게 가진 부류였다.
1. 낮은 자존감 : 사실 사람은 콤플렉스에 평생을 휘둘려 산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데 둘 모두 자존감이 굉장히 낮았다. 정씨는 큰 목소리와 늘 호령하는 태도만 보면 자칫 자존감이 높은 사람으로 보일 수 있으나, 자신의 심리 문제가 반대로 표출된 경우이며 행동 양식은 전형적으로 자존감 없는 이들의 특징, '과하게 눈치 보는 스타일'이다. 마씨는 누군가 자기를 욕하는 것에 대해 병적으로 민감하다.
2. 낮은 학습량 : 여기서 말하는 것은 학력이 아니다. 사람이 당연히 가져야 할 기본적인 소양이 없다는 뜻이다. 예를 들어 일상에서 책을 읽거나 신문을 보고, 가십거리도 찾아 읽으며 가끔은 생각도 해 보는 것. 최소한 누군가 못 견디게 미우면 "나는 저 사람이 왜 이렇게 미울까?" 이유라도 생각해 보는 것. 나의 이런 성격적 결함은 왜 이런 것일까,라고 반문해 보는 것. 하다 못해 "나는 이런 못난 면이 있군"이라고 직면하는 행동들을 말하는 것인데 사실 직면 까지는 좀 고수 단계이나, 최소한 자신의 행동에 대한 성찰은 필요한 법이다.
3. 낮은 유연성, 공감능력 : 나이에 상관없이 뇌가 고정관념으로 굳은 사람들이 있다. 이들은 배움, 학습량과 상관없이 생각의 유연성 자체가 없고 자신의 생각이 곧 진리다. 예를 들어 정씨는 경제 신문을 매일 읽고 매일 출근하는 하는 말 그대로 '보통사람'이지만 선거철엔 눈감고 (옛날) 1번을 찍는 사람이었는데 전 대통령은 여자라는 이유로 선거를 안 했다며 자랑하는 사람이었다. 자신의 편견과 무지에 대해 인지조차 없다는 걸 잘 보여주는 일화이다. 사실 이건 내 추측일 뿐이나, 그는 먹고사는 것이 너무나 중요해 민주화 운동에 가담하지 못했던 젊은 시절의 부채 의식과, 1980 년대쯤엔 '사측'으로 노조 활동을 탄압했었을 자신에 대한 부끄러움으로, 그러한 불편한 감정들을 숨기기 위해 더욱더 보수적인 사람인척 하다 결국 진짜 보수적이 되고, 수구 보수 세력을 광적으로 편들며 자신의 부끄러움을 감추는 '인지부조화'를 방어기제로 살아가는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마씨의 경우, 지각하는 직원들에게 전체 메일을 돌리고 사내 규율을 몹시 강조함과 동시에 자신은 보통 일주일에 세네 번 정도 지각을 했다. 일반적으로 '나도' 저지르는 과오에 대해서는 타인의 잘못을 지적하기 껄끄러운 법인데, 그는 그걸 아무렇지 않게 참 잘했다. '내로 남불' 하면서도 인식이 전혀 없었고 자신의 편의를 위해서라면 퇴근하는 아랫사람을 괴롭히는 일도 마다하지 않는 '역지사지' 가 전혀 안 되는 사람이다.
이러한 공통점들은 바로 '생각 없이 사는 것'에서 나온다. 요즘 세대의 사람들, 그러니까 우리 세대는 너무나 '흘러가는 대로' 의지보다는 상황에 편승하여 하루하루를 살아낸다. 요즘 세상이 그렇게 사는 것이 편한 시스템으로 돌아가기 때문이다. 이는 곧 생각 없이, 성찰 없이 살아도 그럭저럭 살아지는 것에 익숙해지도록 만들고 인간의 몸은 게으름을 좋아한다는 것을 고려할 때, 진화의 측면에서 신체와 정신이 마다 할 이유가 없는 편리한 시스템이다.
그러나 그러한 사람들은 주변을 지옥을 만든다.
이들을 보며 궁금했던 것은 "인간은 어떻게 악인이 되는가"였다.
무릇 교육이나 배움은 선인을 만드는 것보다 악인이 되지 않는 것이 목표라는 생각이 점점 확고해진다. 혼자 사는 것이 아님을 기본적으로 인식하게 하며, 무엇이 옳고 그른지를 알게 함으로써 (훈민정음의 창제 이유에도 나오듯이 옳고 그름을 구분하지 못하면 어리석음으로 죄를 짓게 된다.) 악인이 되지 않게 하는 것이 교육의 가장 기초적인 목표인 것이다. 이 글을 읽는 여러 사람들은 아마 작던 크던 어떤 단체의 구성원일 것이며 또 대부분 '돈을 받고 일하는' 노동자 이거나 직장인 일 것이다. 사회는 변화고 구성원도 변하므로 우리는 늘 사회와 나의 관계에 대해 공부해야 한다. 어렵거나 거창 할 것은 없다. 세상을 이루는 모든 것이 배움이기 때문이다. 그저 내 행동 하나하나를 의식하고 깨어있게 하기 위해 노력하면 된다. 순간 실수를 하거나 죄를 짓더라도, 그게 나쁜 것임을 알면 된다. 그다음, 반복하지 않겠다고 생각하면 된다.
예를 들어, 내가 아래 직원에게 업무 지시를 엉망으로 한다면, 그 신입 직원은 보고 배운 것이 그뿐이라 그 방법을 습득할 확률이 매우 높다. 그리고 그 행동은 계속 되풀이된다. 내가 회사를 옮기거나 그 후임이 이직을 하더라도 '내'가 없는 나의 행동은 계속 남아 전파되고, 나쁠 경우 악화되어 뒤틀린다.
행동의 무서움이란 그런 것이다. 내 행동이 누구에게, 어떻게 어떤 방식으로 영향을 미칠지 짐작하기 어렵다. 성인군자는 못되어도 무엇이 옳고 그른 것인지 판단하기 위해 사유해야 한다. 좋은 것을 보았을 땐 본받기 위해 마음에 새기며, 나쁜 것은 반면교사로 삼음으로서 무의식적으로도 나오지 않도록 의식하는 것이다. 위의 예시 같은 경우, 후임이 성찰하는 사람이거나 적어도 옳고 그름을 판단한다면 그는 나의 올바르지 못한 업무 지시를 반면교사 삼을 것이다. 그렇지 않을 경우 자신의 다음 후임이 될 많은 사람들에게 지옥을 선물할 것이다.
많은 책을 보며 소양을 쌓는 것도 좋겠지만 말 그대로 삶 자체를 '인문학' 적으로 살면 된다. 배움의 정신으로 살자는 것이다. 나의 행동과 주변을 끊임없이 의식하며 판단의 힘을 기른다면 더할 나위 없겠지만, 자신의 내면에 대한 성찰과 주변에 대한 사유가 곧 가장 기본적인 배움인 것을 기억하고 실천하면 된다.
선인이 될 필요 없다.
그저 악인이 되지 않음으로 족하다.
그러나 그것은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 모른다.
어쩌면 나는 오늘 출근길에도 누군가를 불쾌하게 했을 수 있다. 업무 중에도 나의 부정적 감정이 전달되었을 것이다. 다만 악인이 되지 않기 위해 내면의 공부를, 나와 사회의 관계에 대한 공부를, 하다 못해 잠들기 전 나의 하루에 대한 성찰하는 습관을 들이는, 그 작은 끈이라도 놓지 말자.
내가 타인에게 피해를 받기 싫은 것처럼, 나 역시 타인에게 피해 주지 않기 위해서 이렇게 지난한 노력이 필요하며 괜찮은 사회의 구성원이 되기란 이토록 쉽지 않다.
Ps. 홍세화 작가님의 책을 좋아합니다. 아마 저의 생각은 물론 생각의 표현인 글 대부분이 많은 영향을 받았을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