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공을 향해 날려 '거침없이 하이킥'

'거침없이 하이킥'을 보고..

by 안자쿵야

이제는 새로운 시트콤을 찾아볼 수 없다는 건 정말 슬픈 일이다. <거침없이 하이킥>은 2006년~2007년에 방영되었던 드라마이기 때문에 지금의 시선으로는 논란의 여지가 있는 장면들이 꽤 등장한다. 이 드라마는 모든 장면이 좋다고 할 수 없지만 가족, 연인, 친구, 이웃 간의 사랑이 담겨 있는 나의 최애 드라마다.


"왜 선생님한테 저는 이렇게 힘이 없죠?"

나는 풍파고 1짱 이윤호가 힘을 못 쓰는 장면들이 참 좋다. 이윤호는 좋아하는 사람과 약자 앞에서만 힘이 없어지기 때문에..☆그런 의미에서 윤민의 거의 모든 에피소드가 인상 깊었다. 민정의 행복을 위해서라면 윤호는 자신이 가장 좋아하는 오토바이를 포기하고, 가장 싫어하는 공부를 선택할 수도 있다. 민용에게 "여자 울리지 말라"며 민정과의 사랑을 이어주던 윤호가, 결국 "삼촌이랑 결혼하지 마세요, 제발" 할 때, 어떻게 울지 않을 수 있겠는가. 하지만 어른들에게 윤호는 그냥 고등학생일 뿐이다. 내가 봐도 윤호는 정말 어리다. 같은 반 라이벌인 염승현이 민정에게 "윤호자식만 편애하잖아요"라고 하자, 맞아도 좋다며 헤헤 웃는 윤호의 모습이 그랬다. 관심받고 싶어서 다친 척하는 장면, 민정의 말 한마디 행동 하나에 기분이 롤러코스터 급으로 오르내리는 장면들도 마찬가지다. 특히 수학여행에서 민정이 쏜 물감 총에 맞아 상처받은 윤호의 얼굴은 잊을 수가 없다. 윤호가 준 생일선물을 보물 1호라고 말하는 서민정과 그 말에 설레하는 이윤호의 모습을 보면 윤민파가 될 수밖에 없다.


"네가 21살이라도 상관없고, 전교 꼴등이라도 상관없고, 네가 간첩이라도 상관없어"

많은 인물이 아픔을 겪고 성숙해졌지만, 민호의 성장통과 성장이 가장 크게 느껴졌다. 민호는 예쁜 유미를 보고 첫눈에 반했다. 그래서인지 민호는 유미의 깨는 모습을 볼 때마다 이별을 결심한다. 공부를 못 해서, 악기를 못 다뤄서, 방이 지저분해서, 안경 쓴 얼굴이 못나보여서 등 사소한 것에 크게 실망하고 좌절하는 모습이 여럿 등장한다. 게다가 겁 많은 것도 1등이라, 유미의 아버지가 살인자라는 소문이 돌자 누구보다 빠르게 유미를 피해 다니기도 한다. 그랬던 민호가 유미를 진심으로 사랑하게 돼서 "간첩이라도, 살인자라도 상관없어. 가지만 마"라고 말했을 때를 생각하면 지금도 눈물이 난다.


"나 너무 행복해. 너도 있고 범민이 도 있고"

볼 때마다 껴안고 있는 범민은 내가 사랑하는 또 하나의 커플이다. 범이는 민호를 진심으로 웃길 수만 있다면 자신의 체면 따위는 중요하지 않다. 사람 많은 수영장에서 수영복이 벗겨지는 퍼포먼스까지 연출할 수 있으며, 민호가 독사에게 물렸을 때에는 망설임 없이 독을 입으로 빨아내기도 했다. 그러니 범이가 민호의 단축번호 1번 자리를 유미에게 빼앗겨 서운해하는 것은 당연하다. 두 사람이 껴안는 것을 적극적으로 막으려는 유미의 입장도 이해한다. 그들은 이미 자식도 있다고! 아주 귀여운 강아지. 이름이 무려 '범민'이다. 두 남자를 부부라고 부르며 꼴 보기 싫어하는 윤호의 모습까지가 완벽한 웃음 포인트다. <거침없이 하이킥>의 모든 에피소드가 그렇다. 당사자는 누구보다 진심이지만, 제삼자가 보기에 "저것들 뭐하냐" 싶은 것.


"나도 내가 하고 싶은 일이 있고 내 인생이 있는데 왜 무시해, 왜!"

가장 아픈 손가락을 꼽으라면 당연히 신지다. 그녀의 과거 회상 장면을 보다 보면 민용을 때려주고 싶다는 생각이 든다. 민용에게 신지는 군대, 결혼, 아이에 밀려 늘 뒷전이었기 때문이다. 절규에 가까운 신지의 위 대사가 너무 안타까웠다. 두 사람이 이혼하면서 비난은 신지의 몫, 육아는 문희의 몫이 된다. 이러한 부분들이 불합리한 사회를 풍자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낡긴 했지만 관련 에피소드도 많다. 문희의 가사 파업 선언이 대표적이다. 나는 "준이를 잘 키우고 싶지만, 준이만 키우다 늙어 죽긴 싫다"는 신지의 꿈과 사랑을 응원한다. 민용의 서사도 가슴 찢어지는데.. 두 사람 모두 부디 제발 행복하길 바란다.


"우리는 각자 자기 몫의 고통을 안고 살죠"

학생과 청년 인물들이 사랑과 우정을 보여준다면, 중년과 노년 인물들은 인생을 보여준다. 특히 준하와 해미는 방영 당시에도 존재했고 지금도 여전히 존재하는 일자리 문제, 젠더 문제, 가족 문제 등을 다양한 형태로 보여주는 것 같아 더욱 공감됐다. 성공한 여성 해미와 실직한 가장 준하의 에피소드들은 대한민국에서 살아가는 사람이라면 한 번쯤 느껴볼 법한 감정들을 다채롭게 보여준다. 41회 실직의 아픔을 겪은 준하의 대사가 인상 깊어 적어두겠다. "여러분들은 각자 지금 어떤 고통을 안고 사시든 그 고통 모두가 너무 무겁지 않고 여러분들이 감당하실 수 있을 만큼이면 좋겠네요"


"그래. 실컷 구경하고 즐기시게나. 이 찬란한 봄날이 다 가기 전에"

봄바람 든 문희 에피소드도 좋아한다. 가사와 육아를 담당하는 문희가 집을 비우면 불편해지는 건 가족들이다. 불만이 쌓인 순재는 결국 소풍 나간 문희를 잡아오기 시작한다. 폭발한 순재가 "다 늙어서 무슨 주책이냐"며 소리치자, 문희는 "다 늙어서 그래!"라고 대답한다. 문희에게 봄은 매년 오는 것이 아니라, 이번이 마지막일지도 모르는 계절인 것이다. 그 말을 이해한 순재는 문희가 봄을 마음껏 즐기도록 지지해 주기로 한다. 회차의 마지막에서 문희가 신난 얼굴로 꽃놀이를 나가는데, 모자를 던져주는 해미와 뒤에서 지켜보는 순재의 모습 위로 내레이션이 들린다. "꽃이 아름다운 이유는 그 눈부심이 오래가지 못하기 때문이요. 그건 우리네 인생도 마찬가지라" 이 장면을 보면, 눈물을 흘리지 않을 수 없다.


하이킥 시리즈의 결말은 찝찝하기로 유명하다. <거침없이 하이킥> 역시 작품 내내 뭉쳐있던 사람들이 점점 흩어지다가 끝나버린다. 이러한 결말을 회자정리(會者定離)로 해석한 누군가의 말에 동의한다. 회자정리란? 만난 사람은 반드시 헤어지게 되어 있다는 뜻으로, 만남의 소중함과 이별의 수용, 재회의 희망 등의 의미를 담고 있다. 마지막으로 이 작품에서 가장 좋아하는 대사를 인용하며 마치겠다.




살다 보면 오랜 기다림 끝에 오는 기쁨이, 때론 치밀어 오르는 분노가,
쉽게 지워지지 않는 슬픔이나, 예고 없이 찾아오는 행운,
그리고 이유 없이 쓰라린 고통까지
다양한 모습이 우리 삶의 길목마다 기다리고 있습니다.
지금 힘들고 괴롭다고 너무 실망하지 마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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