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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라임오렌지 Jul 10. 2020

사주팔자

: 고해성사 필수

나는 가톨릭 신자다. 그런 내가 사주팔자를 보러 갔다. 그것도 2개월의 예약시간을 기다리며. 그만큼 막막하고 답을 찾고 싶었다. 기도의 긴 기다림이 아닌.

남편은 대기업 직장생활을 22년 하고 비전 있는 회사로 고민끝에 이직을 했다. 나는 남편에게 생활비를 받고 생활하는 전형적인 전업주부였다. 그동안 큰 걱정도, 아주 호사스러움도 아닌 적당히, 그래서 행복한 삶이었다.

그러다 세상의 모든 패러다임을 바꾸고 있는 코로나 바이러스가 등장한 것이다. 영화에서나 봐 왔던 강력한 바이러스의 세상. 많은 사람들이 그러하듯 남편도 하루아침에 회사를 나오게 된 것이다. 우리는 이전 회사를 관둘 때 서로 약속한 것이 있다. 나중에 어떤 결과가 오든 같이 결정한 일이니 서로 원망이나 후회하지 말자고.

그렇지만 남편의 실업은 마치 우리 가정의 실업이며 남편이 느끼는 절망은 전업주부인 나에게도 절망처럼 느껴지고 있는 터였다.


사주보는 곳에 도착하니 가슴이 뛰었다. 죄책감도 들고 나쁜 사주에 절망하게 될까봐 겁나기도 했다. 남편은 지금 옷을 갈아 입는 시기라고 조금만 기다리면 좋을 거라는 말에 나는 마음이 놓였다. 마치 내일이라도 좋은 소식이 올 것처럼. 반전은 나의 사주였다.

"........ 14살에 부모 파산수, 이산가족수가 있었네요. 맞죠?"

"...네, 14살에 아빠 사업이 부도가 났었어요. 그래서 잠시 부모님과 떨어져 살았어요."

무섭다. 정해져 있는 일이었다니. 사주를 풀어주는 분은 신 내림을 받고 신을 모시는 사람이 아닌 사주를 글로 풀어내는 곳이다. 이곳을 택한 건 나의 죄책감을 조금이라도 덜기 위해서이다. 중절모에다 팔찌까지 멋스럽게 한 그분은 갖가지 색연필로 나의 인생을 화려하게 칠 해 놓았다. 그러고는 갑자기 눈빛이 빛난다. 내가 어마어마한 사업가란다. 작게 시작해도 좋으니 나의 이름을 걸고 무언가를 시작하란다. 나에게는 사업 아이템은 정해져 있지 않고, 그냥 시작하면 다 대박이란다. 이 얼마나 대책 없는 말인가, 어쩌면 또 얼마나 희망찬 말인가.

대신 동업은 패가망신이고, 남의 밑에서 일하면 내 몸이 아프단다. 그러니 내 이름으로 꼭 시작하라고 당부한다.


갔다 와서는 친구에게 신이 나서 말했다. "내 옆에 꼭 붙어있어! 콩고물 많이 떨어질 거야!" 내 친구는 나의 이야기를 차근차근 듣더니 조용히 말한다." 낚였네." 친구의 풀이는 이러하다. 동업은 100에 99는 싸움 나서 망하고 남의 밑에서 일을 하든, 내 이름의 사업을 하든 우리 나이는 아플 나이란다. 내 이름의 사업이 성공하면 자기 말이 맞는 거고 실패하면 노력을 덜 했다고 할 거라는 거다. 말 그대로 코에 걸면 코걸이, 귀에 걸면 귀걸이.


그제야 나의 한심함에 들뜬 마음이 밑바닥까지 내려앉는다. 그렇지만 두 달간 너무 힘든 시기에 남편과 나의 사주 이야기는 잠깐이지만 큰 위로가 되었다. 적어도 " 뭐든 하자! 잘 된다잖아." 라는 생각이 들면서 힘을 내보기도 했다. 사주팔자란 사람이 태어난 연월일시를 바탕으로 네 개의 기둥을 말한다. 그분 말에 따르면 본인의 사주는 거의 정해져 있지만 그 만큼의 노력과 도전을 안 한다면 그 사주대로 살지 못한다고 한다. 그리고 요즘은  코로나 바이러스로 사주 네 기둥을 감염시켜 사주도 다 엉켜버린 느낌이다. 같은 날, 같은 시간대에 태어난 이들이 각기 다르게 살아가는 데는 이유가 있을 터이다. 


사주란 게 아예 없거나, 누구 말대로 노력을 안 했거나, 어떤 부모를 만나느냐에 따라 달라지거나, 많은 경우의 수로 인해 사주대로 살 수 없다면, 그냥 나를 믿고 사는 건 어떨까? 지금 힘들다면 그동안 행복하게 지내온 나도 있었을 텐데 그 행복이 다시금 올 거라 믿고 또 버텨보는 거다. 누구를 원망하지 않고 과거의 결정을 후회하지도 말고 하루하루 작은 결정에 충실하면서 지내보려 한다. 그분의 말대로라면 6년 후 나는 거의 재벌급 여사장 일 텐데 로또를 사서 당첨되는 상상을 하면서 기대하는 사람처럼 나도 무한믿음이 아닌 긍정적 상상으로 지내보기로 다짐했다. 3개월 전의 나는 오늘 힘들어하는 나를 예측 못했듯이 또 3개월 후의 행복한 나를 지금 예측 못하고 있을지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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