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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라임오렌지 Mar 24. 2022

이렇게 우리 가족입니다

"엄마, 우리 가족사진 찍으면 안 돼? 나 너무 찍고 싶어. 밤비도 다 같이..."

강아지 동반 가능 스튜디오가 많다며 고등학생인 딸이 마치 어린아이 조르듯 나를 보고 묻는다.

나는 가볍게 " 네가 알아보고 네가 예약해서 우리에게 알려줘."

매사에 느긋한 딸이 이 모든 걸 빨리 실행하리라고 생각 안 했기 때문에 다 미루어 버렸다.

한 10분 지났으려나?

가족 카톡방에 3개의 시간대가 올려져 있고 그중 하나를 고르라고 공지가 떴다.

날짜와 시간 예약은 순식간에 이루어졌다.

가격을 으니 큰 기대를 갖게 되지는 않았다. 셀프로 찍는 시스템인데다 강아지까지 있으니 얼마나 정신없을까...

그렇지만 혼자 열심히 알아보고 예약까지 마친 딸아이는 기대와 스스로의 대견함 가득한 얼굴로 그날의 의상을 고민하고 있었다.

며칠 후 우리 식구들은 흑백의 옷으로 맞춘 후 그 스튜디오를 찾아갔다.


작은 스튜오는 생각보다 아기자기하고 입구에 놓인 액자  사진들은 저마다 사연들이 가득해 보인다.

엄마 뱃속에 동생이 있는 걸 아는지 모르는지 해맑게 웃고 있는 어린 딸과 엄마 사진,

서로의 눈을 사랑스럽게 바라보는 행복한 연인 사진,

오랜 추억을 같이 해 온 듯한 여자 친구들 네 명도 너무나 활짝 웃고 있었다.

갑자기 여고 동창 친구 셋이 생각났다.

대학 졸업하고 사회 초년생이 된 친구 넷이 이런 스튜디오에서 한껏 멋을 내고 세상에서 제일 예쁜 표정을 어색하게 지으며 찍었던 그때가 생각나서 갑자기 설레기 시작했다.


방은 딱 하나였고 조심스레 들어가니 앞에 큰 DSMR 카메가라 놓여 있었다. 의자와 소품들은 마음대로 사용할 수 있고, 리모컨으로 찍으면 옆 노트북에 바로바로 사진이 보였다.

그 사진을 보다 보니 다수의 사진이 정면을 안 보고 옆을 보고 있는 실수 컷이 계속해서 나왔다.

처음부터 딸아이의 의도와 계획으로 이루어진 하루였기에 나는 딸에게 포즈나 소품등 모든 걸 맡겼다.

언제 우리 딸이 이렇게 자랐을까... 무탈하게 밝게 자라준 딸이 갑자기 감사하다.


처음에는 카메라 앞이라고 누가 보는 것도 아닌데 포즈나 표정은 어색하기만 했다. 

시간이 지나니 우리는 생각 없이 이야기하고 웃으면서 리모컨을 쉴 새 없이 누르고 있었다. 생각보다 밤비는 정면을 응시하기도 하고 가족의 얼굴을 보기도 하면서 나름의 가족 한자리를 차지했다.

남편 자기 얼굴이 크게 나온다고, 딸은 자기 눈이 붓게 나온다고 툴툴대면,

" 원래 그렇게 생겼는 걸? 너무 똑같은데? "

나의 그 말에 다들 깔깔 웃는다. 그 순간 찰칵!

앉는 배치도 달리해 보고 선영이와 밤비, 이렇게 딸 둘만 찍어 보기도 했다.

맏딸, 막내딸!


서로 이게 좋네, 나만 못 나왔네, 밤비가 눈 감았네 등등 이야기하며 20분 남짓 약속한 시간이 순식간에 흐른다.

사진을 다 찍고 나니 잘 나온 사진 5컷을 골라야 하는 고민의 시간이 왔다.

생각보다 너무나도 잘 나온 사진들 156컷을 보며 너무 많이 찍어 고르기 힘들어진 순간, 또 한 번 선영이에게 모든 걸 맡겼다. 믿는다는 말로 나의 귀찮음을 피했다.

사진을 고르고 있는 사이 밤비는 스튜디오 곳곳을 돌아다니며 냄새를 맡는다.

인화를 위한 다섯 장을 골랐지만  151장의 원본도 너무 소중했기에 다 받기로 했다.

신중하게 고른 다섯 장은 그 자리에서 바로 인화되어 검정 종이 액자에 끼워졌는데, 기대를 안 해서인지, 그 여정이 즐거워서였는지, 너무나도 멋졌다. 사진 속에 깔깔대는 웃음소리가 그대로 들리는 듯했다.

그날 저녁 스튜디오에서 전화가 왔다.

오늘 찍은 사진 중 한 장을 스튜디오에 전시하고 싶다는 말에 흔쾌히 허락했다.

여러 개의 추억 사진들 속에 우리 가족 사진도 한 켠에 있을 것이다. 우리는 그 스튜디오에 여름이 돼서 다시 한번 찍으러 가자고 약속했다.


밤비가 가족이 된 시간이 벌써 8개월 남짓이 되어간다.

세 식구였던 가족이 가족사진 속에서는 넷이 되어있다.

언니가 하루 종일 14시간을 학교에서 공부하다 오면 무릎 위로 뛰어올라 얼굴이며, 목이며, 손이며, 폭풍 뽀뽀를 해대는 밤비덕에 선영이는 힘든 고등학교 시간을 견디고 있는지 모르겠다.

" 세대 차량이 도착했습니다."라는 월패드에서 나오는 소리에 목을 빼고 현관만 바라보고 망부석이 되어있다 아빠가 들어오면 꼬리가 보이지도 않을 만큼 흔들어대며 껑충껑충 반기는 밤비덕에 남편은 하루의 힘듦을 잊게 되는지 모르겠다.

설거지를 하고 있을 때 내 발등에 얼굴을 궤고 낮잠을 자느라 내 발을 움직이지 못하지만, 집에 있는 시간이 늘어나는 요즘 나는 밤비가 자식이자 벗이 되어주어 그 지루함을 버티고 있는지 모르겠다.


" 이렇게 우리 가족입니다..."


밤비��(@bambee527) • Instagram 사진 및 동영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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