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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라임오렌지 Nov 27. 2021

막내딸이 생겼다

우리 세 식구는 각자 마음에 드는 이름을 하나씩 생각하고 있었다.

남편은 '엘리', 나는 '쪼리', 딸아이는 '밤비'

강아지를 보는 순간 찰떡인 이름이 있을 거라 믿었다.

예전의 '버디'처럼...


버디는 나 고등학교 때 우리 집에 왔다. 그리고는 19년을 함께 했다.

마지막 4년은 내가 결혼해서 같이 있지는 못했지만 선영이는 아직도 버디를 기억하고 있다.

버디의 마지막 날은 모든 게 쇠약해져서 오늘 당장 무지개 다리를 건너도 이상하지 않은 하루였다.

엄마는 계속 옆을 지키다 잠이 들었는데 새벽에 버디가 엄마를 깨우더란다.

계속 먹지도 못하고 힘이 하나도 없는 다리로 엄마를 깨워서 둘은 같이 서로를 바라보고

" 버디야, 이제 편히 가도 괜찮아.. 엄마는 마음의 준비가 됐어. 그러니 더 이상 아프지 말고 하늘나라 가서 맘껏 뛰어놀아.. 알겠지, 버디야?"


그러고 굳이 냄새도 안나고 할 필요도 없는 목욕을 시키고 싶으셨단다.

며칠을 못 먹고 아파하는 버디에게 진통제라도 아님 수액이라도 주고 싶어서 병원에 갔다.

의사 선생님은 수액을 맞히고 지켜볼 테니 내일 오라 당부하셨다.

병원에 두고 오는 내내 맘이 편치 않았지만 병원에서 조금은 기운을 차릴거라고 믿은 엄마는 다음날 아침 일찍 집에 울리는 전화벨 소리에 가슴이 철렁했단다.

엄마는 오열을 하셨고 시집와서 떨어져 사는 나는 전화기 너머로 그 큰 슬픔을 통보받았다.

엄마와 내가 지금까지 죄책감이 드는 건 아무도 없는 입원실이라는 명목의 작은 칸 박스에 혼자 마지막 길을 떠났을 버디가 너무 가여워서이다.

버디는 우리를 얼마나 기다렸을까? 

왜 안 오지 하며 얼마나 울었을까?

몇 달의 간병을 하고서도 마지막 하루를 놓치다니...억울하기까지 했다.

엄마의 후회는 무척이나 오래갔다.

그리고 우리 모녀는 다시는 강아지를 안 키우겠다고 다짐했다.


그런데 버디가 떠난 지 거의 15년쯤 되어가는 지금 강아지를 분양받기로 결정했다.

나 빼고 두 식구는 아주 오래전부터 원했지만 내가 무슨 신념처럼 절대 안 된다고, 자신 없다고, 그 큰 슬픔을 다시 견딜 수 없다고 고집했다.

그런데 강아지를 데리러 가고 있었다..


남편 손바닥 만한 크기에, 자기 좀 데려가라고 몸부림을 치듯 잠시도 가만히 있지 않는 강아지가 눈에 띄었다. 우리 식구라며 깡깡 짖는 거 같았다.

나는 발랄한 성격에 알아듣기 쉬운 된소리의 '쪼리'가 딱이라며,  남편은 크림색의 귀여움이 '엘리'가 딱이라며, 딸아이는 눈망울이 사슴 같다고 '밤비'가 딱이라며 서로 우기기 시작했다.


엘리의 우아한 느낌은 없어 탈락. 쪼리와 밤비의 결승.

선영인 이야기 했다.

강아지 이름에도 품격이 있다며 쪼리는 너무 가볍고 촐랑거리는 느낌이란다.

나는 밤비는 발음도 세지 않아 알아듣기 힘들고 사슴처럼 눈이 그리 크지 않다고 했다.

지금 생각해 보면 우리 밤비가 이 세상에서 제일 눈이 크고 예쁜데 그 당시에는 왜 이리 객관적이었을까.


밤비가 우리에게 들어왔다.


그렇게 식구가 되고 나 혼자 강아지 키워 본 경험이 있다며 남편과 딸아이에게 매일같이 당부를 한다.

" 밤비와 너무 많이 눈 마주치지 마. 자주 만지거나 뽀뽀도 삼가해 줘. 너무 안아주면 안 되고, 간식은 1년 동안은 없어. 나도 회사 나가는데 분리불안 생기면 어떡해. 우리가 거리를 두는 게 밤비에게도 독립심을 심어주고 편하게 살 수 있는 거야!!"


음.........지금 나는 밤비를 30분째 안고 있다.

오늘도 파프리카, 사과, 블루베리, 내가 직접 12시간 식품건조기로 만든 우유껌 등을 먹였다.

손으로 사료를 한알씩 두 알씩 주면 날름날름 받아먹는 밤비가 귀여워 미칠 것만 같다.

딸아이는 엄마가 밤비 버릇 다 버려 놓는다며 뭐라 하지만 나는 전혀 안 들린다.


이 예쁘고 작은 아이의 중성화 수술 날짜가 잡혔다.

고민도 많이 했고 결정을 번복하기도 했다.

수술이 다가오는 일주일 간은 가슴이 문득문득 먹먹했다.

누군가 이야기했다.

강아지에게는 주인이 신이라고.

그때는 너무 과장된 표현이라고 생각했는데, 그들의 번식과 억제도 내가, 생사의 결정도 보호자가 내리는 경우도 있지 않은가.. 우리가 보여주는 세상이 그들의 전부임을 생각할 때 무한한 책임감이 느껴진다.


수술 전날 물을 잔뜩 머금은 솜처럼 툭치면 눈물이 쏟아질 것만 같았다.

그래도 꾹꾹 참았는데 수술 과정과 설명을 듣는 그 순간 주책없이 눈물이 터져 버렸다.

밤비도 동네 동물 병원과 선생님을 너무나도 좋아하는데 그날은 왜 그런지 떨고 있었다.

눈물 때문에 정작 밤비가 수술실에 들어가는 모습을 보지 못했다.

씩씩하게 잘 받고 오라는 당부도 못했다.

엄마가 미안하다는 말도 못 했다.


그런 나를 보는 남편도 주차장에서는 눈물을 훔쳤다.

뭐가 대수냐고, 울 일이냐고 센 척하는 남편이 아니어서 너무 감사하다.

같이 울어 주는 사람이라 참 다행이다.


선생님은 " 걱정 마세요. 수술 끝나고 찾으러 오실 때 뛰어갈 수 있게 잘하겠습니다. "

그 말씀이 안심시키려 하는 말씀이라 생각했다.

병원에 다시 간 나는 수술이 잘 됐다는 말과 내 발 밑까지 꼬리를 흔들며 뛰어 오는 밤비를 보고 너무나 미안하고 반가워서 그 몇 시간의 걱정이 날아갔다.


아미인 나는 봐야 할 BTS영상이 밀려 있고, 딸아이의 교육 설명회 영상이 쌓여 있지만,

지금도 강아지 힐링 음악을 플레이하고 있다..


밤비야 미안해.

그리고 고마워.. 우리에게 와줘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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