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는 것에 대한 게으른 환상
오늘날 실질적으로 영화를 만드는 사람은 관객이다. 지금 영화 속에는 아무것도 없다. 예전에 키튼, 채플린 같은 스타들은 유명세를 누리면 누릴수록 아무것도 하지 않는다. 예를 들어 스티브 매퀸을 보자. 그가 숏에서 뭔가 생각하는듯한 표정을 짓는다고 하자. 그러나 사실 그가 '생각하고 있다'라고 믿는 것은 관객이다.
스티브 매퀸은 그 순간 아무것도 생각하고 있지 않다. 도대체 그가 뭔가를 생각할 수 있다고 기대하는 일이 가능하기 조차 하단 말인가. 그냥 관객이 '그가 생각하고 있어'라고 대신 생각해주고 있을 뿐이다. 바로 이렇게 관객이 앞 이미지와 뒤 이미지를 연결한다. (...) 관객은 표를 사고 돈을 지불했다. 그런데 오히려 관객이 스티브 매퀸을 대신해 노동을 하고 있는 판국인 것이다.
- 장 뤽 고다르
전공이 전공이다 보니 평소에 사람들이 잘 보지 않는 영화를 (상대적으로) 많이 보곤 한다. 그리고 남들이 잘 즐기지 않는 영화들을 즐기기도 한다. 소위 말하면 영화 제목을 검색했을 때 ~~ 해석 이 같이 검색되는 영화라고나 할까.
개중 최근에 많은 사람들이 알고 있을 법한 영화는 박찬욱 감독의 <헤어질 결심> 일 것이다. 영화를 처음 봤을 때는 사실 무언가를 찾기 어려웠다. 그저 '역시 박찬욱 감독님은 상업을 하셔도 컬트적이구나' 싶었다. 컬트는 영화에선 호불호가 극명히 갈리는 영화라고 생각하면 될 것 같다. 관객수를 보면 명성에 비해 무언가 이상하다는 것을 느낄 것이다. 미국에는 데이비드 린치 감독이 그 예다.
<헤어질 결심>을 제대로 음미하려면 보통 사람의 경우 2번 이상 감상하면서 대사, 인물의 감정 등을 돌아봐야 할 것이다. 개봉 직후 "마침내", "붕괴"의 의미 해석에 관한 글들이 올라왔던 것을 보면 단번에 알아차리기 힘든 요소들이었음에 틀림없다.
분명 <헤어질 결심>은 작품성이 매우 뛰어난 좋은 영화다. 외신에서도 이번 아카데미 시상식 후보 선정이 불발됐다는 게 범죄와도 같다는 기사를 냈다. 하지만 생각보다 인기가 없었다. 정해일과 탕웨이라는 엄청난 스타성에도 불구하고 관객수 200만을 넘기지 못했다. 왜냐하면 귀찮은 영화이기 때문이다.
대중문화는 기업체에 의해 운영되며, 그 규모는 천문학적이다. 알고리즘이라는 정보화된 시스템은 알게 모르게 대중의 입맛을 통제했고, 결국 일종의 편향까지 만들어냈다. 예술의 의미라 하면, 무릇 지속적인 사유와 체험을 통해 발견하는 것이다. 하지만 요즘의 대중문화는 사유의 요소를 배제하고 있다. 영화를 중점으로 얘기해 보자면 이야기는 단번에 이해할 수 있게 되어 단순히 의미를 찾게 된다. 관객으로 하여금 의미를 찾았다는 순간적인 쾌락을 얻을 수 있지만, 그 이상으로 넘어가지 않는다. 그렇게 관객은 그 행위를 반복하게 되고, 결국 더 깊은 사유를 중단하게 된다.
여기서 관객은 자신이 의미를 찾았고, 그것을 생각했다고 주장할 수 있다. 하지만 이는 사과를 보고 사과 그 자체라고 말하는 기표적 행위에 불과하다. 진정한 감상은 더 나아가 사과의 기의적 요소까지 사유해야 한다. 하지만 대중문화-예술은 그런 시간을 부여하지 않으며 더욱 빠른 소비를 요구할 뿐이다.
우리는 과연 스스로 생각하는가?
뉴진스의 하입보이가 유명해진 것이 과연 우리가 스스로 좋아해서 유명해진 것인가?
예술의 본질이 민중에서 대중으로 넘어가면서, 주관은 점점 사라지고 있는 것 같다. 즉, 나 자신의 무언가를 보고 생각하는 데 게을러진 것이다. 이제는 그저 보이는 것만 받아들일 게 아닐까.
현대에는 생각이 필요한 영화를 원하는 관객이 그리 많지 않다. 물론 이 글을 쓰는 나를 포함해서 수많은(?) 시네필이 존재하지만, 영화가 만들어질 수 있고, 그 산업을 유지하는 건 그 외 다수의 영향이 매우 크다. 따라서 영화는 자연스럽게 대중의 선택을 따라갈 수밖에 없어졌다. 영화의 러닝타임은 점점 짧아져 2시간도 길다는 여론이 나오고, 내용의 깊이 보다 스펙터클의 요소가 더더욱 강조되었다. 즉. 생각 없이 볼 수 있는 영화가 좋은 영화가 되었다.
그럼에도 귀찮은 영화를 좋아하는 나는 항상 사람들에게 귀찮은 영화의 깊이와 즐거움을 설파한다. 물론 성공률은 0에 수렴하지만... 부모님께 주기적으로 이야기를 꺼내면 항상 나오는 말은 "재미도 없는 거 피곤하게 봐야 해?"라는 대답 같은 질문이다. 나의 설파로 나는 거의 모두에게 등져버렸다. 엄청난 영화들이 주는 깨달음과 영화를 느끼는 감정을 알려주고 싶었을 뿐인데, 보고, 생각하는 새로운 감각을 전해주고 싶었을 뿐인데.
고독함이라는 게 이런 것일까. 외롭지 않은 외로움을 느끼며 귀찮은 영화와 대중의 영화에 대해 계속해서 생각해 보았고, 영화 <희생>의 대사 중 일부를 곱씹어보며 나름의 답을 낼 수 있었다.
결국에 서로에 대한 설득만이 화합의 길이라는 것이다. 대중문화를 비판하는 나이지만, 그 누구보다도 대중문화를 통해 -<아이언맨 1>이 나의 첫 영화다.- 영화학도의 길에 접어들었기에 대중문화가 가진 매력을 잘 알고 있다. 그렇지만, 위에서 말한 것처럼 -모든 사람에게 해당되는 건 아니지만- 요즘은 편향의 길로 들어서고 있는 것 같아 마음이 아프다.
좋은 예술작품은 힘을 갖는다. 예술은 철학과도 같아서 나름대로 세상의 기준을 세우기도 하고, 그것을 무너트리기도 한다. 사유한다는 것은, 하나를 볼 때 한 가지 관점으로 바라보는 것이 아닌 다방면으로 바라보는 것이다. 예술을 사유한다는 것은, 어떤 작품이든지 다양한 시선에서 바라봐야 한다는 걸 의미한다.
에리히 프롬은 상대방을 이해하는 것이 곧 사랑이라고 했다. 무작정 설파하기보다는, 하나씩, 하나씩 나에 대해, 즐길 수 있는 것들에 대해 글을 쓴다면 상대방도 나를 이해하고 알아봐 주지 않을까 생각한다. 그러기에 브런치에 왔고, 내 마음을 전해보려 한다. 영화로 증명하기 이전 글로써 사람들에게 영화, 예술을 보며 사유할 수 있도록 그 깊이를 알려주고 싶다.
"우리는 과연 스스로 생각하는가?" 에 대한 질문에 있어 당연하듯 "그렇다."고 말할 수 있으면 좋겠다.
영화를 공부하고 만들 사람으로서 생각하는 좋은 영화들에 대한 리뷰-분석과 내가 하고자 하는 방향성에 대한 고민을 이 매거진에 적어볼까 한다. 목표는 주기적으로 주 1회 이상 업로드를 하는 것이지만, 그 이상 혹은 이하가 될 수도 있다.
재미없을 수 있겠지만, 그래도 봐줬으면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