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하지 않은 항해

삶을 향하여

by 안진

생각하지 않았던 곳을 향해, 생각하지 않았던 시점에, 생각하지 않았던 방법으로 가는 경험은 썩 유쾌하지 않다. 눈을 떠보니 바다 위고 출발한 지 그리 오래되지 않은 배 위에서는 지나온 항구와 다가갈 섬이 아주 작게 보인다. 돌아갈 수도, 뛰어내릴 수도 없는 상황에서 지금, 이 순간 개인이 할 수 있는 일은 0에 수렴한다. 원래 있던 곳이 천국은 아니었어도 그럭저럭 살만한 곳이었다. 나름 적응해서 사는 중이었고 적당히 더러운 회색 같은 곳이었다. 그런데 저 멀리 점으로 보이는 섬은 천국인지 지옥인지 알 수 없다. 항해의 시작을 알 수 없으니 당연히 끝도 알 수 없다. 저곳은 대체 어떨까? 나는 지금 뭘 할 수 있나?

첫 문단에서 말한 원하지 않은 항해는 한 개인의 삶이라 할 수 있다. 요람에서 무덤까지 죽음이라는 것 하나가 정해진 채로 나아간다. 항해술은 기술과 문명의 발전과 함께 진보되어 지금은 바다를 가르고 잠수도 하고 사람들은 물 위에서 온갖 것을 행한다. 이는 자연의 영향을 덜 받는다는 말이다. 항해가 처음 시작될 때는 물살과 바람 등에 따라 배의 향방이 정해졌지만, 이제는 자연의 영향으로 배의 운명이 결정되지는 않는다는 말이다. 그렇다고 자연에 무관한 것은 아니다. 현재도 사람과 사람이 만든 쇳덩어리를 없앨만한 재해는 일어난다.

이 상황에서 개인의 무력은 당연하다. 문명이 시작되고 국가를 이루고 살아가면서 대다수 사람의 영향력이란 지극히 미미하여 없다고 해도 무방하다. 천문학을 떠올릴 때 지구의 존재가 별 의미 없는 작은 존재임을 생각하면 그 안의 인간이란 어떤 존재인지 가늠할 수도 없지만 육신을 가지고 태어난 이상 내 눈앞의 일들과 내 일상의 일들이 세상이 무너지고 나아가는 중차대한 일이다. 하여 삶은 가까이서 보면 비극이고 멀리서 보면 희극이다.

정신을 차리고 이 배를 둘러보니 나 혼자 있는 것이 아니다. 가족이라 불리는 사람, 친구라, 지인이라, 동료라 불리는 이들이 많다. 이 배에 있는 존재가 유일하지 않다는 것은 불편한 일상을 선사하기도 하지만 매우 다행인 일이다. 나와 같은 필멸자들이 다 어리둥절한 채로 한배에서 어딘가로 휩쓸려가고 있다. 이 배를 추동하는 것이 누군지는 모르지만 일단 우리는 아니다. 그래서 우리는 이 배의 방향을 바꿀 수도, 속도를 늦출 수도 없다. 그저 그렇게 떠밀려 가는 중이다.

그럼, 개인은 무얼 할 수 있나? 아니, 이제 우리는 무얼 해야 하나? 답할 수 없는 질문이지만 답할 수 없더라도 물어야 하는 것이 있다. 철학과 문학은 이런 질문을 해왔다. 질문자만 있고 응답자는 있을 수 없는 질문을 해왔고, 인류는 아직도 수백, 수천 년을 건너온 질문을 다른 방식으로 하고 있다. 이런 질문 앞에 당차게 답을 들고 나오는 자들도 있다. 그 이름을 종교, 관념 등이라 부른다. 그러나 그것들은 시간이 지나 무너지고 빛이 바랜 모습으로 땅에 떨어진다.

다시 똑같은 상황이다. 불가항력인 배 위에서 우리는 지지고 볶으며 살고 있고 답할 수 없는 질문이 나뒹구는 중에 혐오가 피어난다. 혐오란 쓸모없는 구분으로 생겨났다. 너와 나의 다름을 기반으로 서로를 말로, 신체적으로 해한다. 이 싸움에 패자는 있어도 승자는 없다. 결국 공멸의 길 외에는 답이 없다. 왜냐하면 배라는 공간은 유한하고 우리가 그 안에서 싸워봤자 배는 아무 상관도 안 하기 때문이다. 그저 그렇게 안쓰러운 영혼들만 사라질 뿐이다. 아, 원래 먼지 같은 존재니 사라짐을 추억하는 것도 그 사라진 영혼과 같은 영혼을 가진 존재들뿐이겠다.

이 부조리와 불합리를 어떻게 극복하면 좋을까? 마이크에 대고 이 배 위를 바꾸겠다고 소리칠까? 바다 위로 몸을 던질까? 어차피 없어질 거 맘에 안 드는 존재들을 다 해할까? 그 무엇도 답이 되지 못함은 우리 모두 안다. 할 수 있는 것은 단 한 가지밖에 없다. 배 위 사람끼리 잘 지내는 것이다. 유치원에서 배우듯 사이좋게 손잡고 어깨동무하고 사는 것이다. 이것이 해결하는 것은 없지만 문제는 발생시키지 않는다. 그리고 이렇게 살다가 어딘가 도착했을 때 그곳이 천국이면 더 행복할 것이고 지옥이면 덜 불행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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