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정의 신화를 넘어, 공평의 연대로

사회의 기울어진 운동장

by 안진

대한민국에서 ‘공정’이라는 화두는 매우 예민하고 중대한 문제다. 특히 청년층에게 공정이란 시대정신으로 자리 잡았다. 그러나 공정의 예민함이 발현되는 지점이 걱정될 때도 있다. 누군가의 탈락을 당연시하는 시험장이나 경쟁 구도 속에서만 공정이 호명되는 현상은 바람직하지 않다. 우리가 열광하는 공정은 출발선의 차이를 지워버린 시험 조건의 동일함 정도에 그친다. 이는 마이클 샌델이 지적한 능력주의의 폭정이 완화되기는커녕 더 가속화된다는 의미다. 결국 자신이 쥔 기득권과 운을 오로지 개인의 노력으로 치환하여 승자독식을 정당화하는 도구로 전락했음을 알 수 있다. 좁고 날카로운 절차적 공정에서 벗어나, 서로의 다름과 결핍을 채워주는, 넓고 따뜻한 실질적 공평으로 나아가는 것이 대한민국이 가야 할 방향이다.


먼저 공정과 공평을 정확히 구분해야 한다. 공정이란 규칙의 투명성과 기회의 형식적 균등을 의미한다. 이 단어는 경쟁하는 개인을 전제로 하며, 누가 더 규칙을 잘 지켰는가에 집중하는 기계적인 저울질이다. 반면 공평은 결과적 정의와 실질적 필요의 충족이다. 개인보다 함께 살아가는 공동체를 전제로 하며, 각자의 상황에 맞게 발판의 높이를 유동적으로 다르게 지급하는 분배의 지혜다. 정의의 핵심은 무한 경쟁이 아니라 최소 수혜자에게 최대의 이익이 돌아가게 하는 것이다. 타인을 수단이 아니라 목적으로 대하라는 칸트의 말을 생각할 때 공평이란 곧 인간 존엄을 지키는 철학적 실천이라 할 수 있다.


자연을 강자만이 살아남는 약육강식의 투기장으로 생각하는 것은 사회 진단론의 치명적 오류다. 하지만 현재에도 이 사상을 그대로 받아들이는 사람들이 있고, 이는 약자 배제를 정당화하려는 인간의 핑계일 뿐이다. 자연계의 위대한 생존 전략은 배척이 아닌 공생에 있다. 다양한 종이 서로의 부족함을 채우며 얽혀 있을 때 생태계는 가장 강력한 회복탄력성을 지닌다. 우리 사회가 약자와 소수자를 위해 자원을 나누고 공평을 추구하는 것은 단순 도덕적, 윤리적 차원이 아니다. 이는 종이 다양성을 확보하여 다가올 위기 앞에서 공동체 전체가 멸종하지 않기 위한 가장 합리적이고 과학적인 생존 전략이다.


한국 사회는 기울어진 운동장이다. 장애, 성별, 빈곤 등 다중적인 차별을 겪는 소수자의 현실은 그 상태가 되지 않고서야 이해할 수 없다. 이들에게 기껏해야 공정의 개념을 들이밀며 이만큼 해준다고 말하는 것은 또 다른 가해이자 폭력이다. 항상 공정과 공평을 논할 때 역차별 프레임이 있는 것이 사실이다. 소수자를 위한 적극적 우대 조치나 할당제는 누군가의 파이를 빼앗는 것이 아니라, 오랜 시간 기울어져 있던 저울의 영점을 맞추는 필수적인 보정 작업이다. 이를 역차별이라 폄훼하는 것은 지극히 기득권의 언어다. 이쯤 하면 되었다고 말할 수 있는 권리는 기득권이 아니라 소수자와 약자에게 있다. 우리는 이 담론으로 타인의 고통과 불리함을 나의 문제로 연결할 수 있는 연대의 감수성을 훈련해야 한다.


경쟁의 룰을 다듬는 공정도 필요하지만, 그것이 최종 목적지가 될 수는 없다. 우리가 닿아야 할 곳은 누군가를 밟고 올라서는 꼭대기가 아니라 모두가 각자의 몫을 누리며 함께 서 있는 넓은 평야여야 한다. 그리고 그곳에서 우리는 손잡고 나란히 걸을 수 있어야 한다. 약자의 속도에 보폭을 맞추는 일은 가장 느려 보이지만, 생태적으로 가장 안전하고 철학적으로 가장 우월한 길이다. 누구도 배제되지 않는 사회의 청사진은, 날 선 공정의 잣대가 아니라 서로의 다름을 품어내는 공평의 품 안에서 완성된다.


[덧붙이는 글: 용어의 쓰임에 대하여]

이 글에서 핵심적으로 다룬 '공정'과 '공평'은 학술적 번역이나 특정 철학자, 작가의 사용과 혼용될 여지가 있어, 본문에서의 쓰임을 명확히 하고자 합니다. 단어의 쓰임보다 필자의 함의를 더 중점적으로 보시길 바랍니다.

공정: 본문에서 '공정'은 규칙의 투명성과 기회의 형식적 균등을 뜻하는 좁은 의미로 사용되었습니다. 이는 경쟁하는 개인을 전제로 누가 더 규칙을 잘 지켰는지 기계적으로 저울질하는 것이며 , 출발선의 차이를 지워버린 시험 조건의 동일함에 그치는 현상을 지적하기 위해 쓰였습니다.

공평: 반면 '공평'은 결과적 정의와 실질적 필요의 충족을 뜻하는 넓고 따뜻한 개념으로 쓰였습니다. 공동체를 전제로 각자의 상황에 맞게 발판의 높이를 유동적으로 다르게 지급하는 분배의 지혜이며 , 다가올 위기 앞에서 공동체 전체가 멸종하지 않기 위한 가장 합리적이고 과학적인 생존 전략을 의미합니다.

따라서 이 글은 누군가의 탈락을 당연시하는 절차적 '공정'을 넘어 , 서로의 다름을 품어내고 인간 존엄을 지키는 '공평'의 연대로 나아가야 한다는 지향을 담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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