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을 단순하게 만드는 나만의 노력
무엇이든 대량으로 구입하던 습관을 버렸다. 얼마간 손이 안 닿은 물건들은 종량제 봉투에 넣어 버리거나 분리수거했다. 나 아닌 다른 사람에게 쓰임새가 있을 것 같은 물건은 가까운 사람에게 나누어 주거나 당근마켓 또는 지역 커뮤니티를 통해 드림했다. 돈 만 원이라도 받을 수 있을만한 것은 중고로 팔았다.
집안 여기저기 흩어져 있는 잡동사니, 주방 살림, 아이 장난감과 옷가지는 자주 정리하는 편이다. 너저분하게 흩어져 있는 게 보기 싫어서 물건의 수를 줄이려고 웬만한 건 눈에 띌 때마다 자리를 정해주고 치워둔다.
내가 주로 생활하는 공간은 거실, 주방, 서재이고 사실 옷방은 정말 하루 두 번-아침에 옷 갈아입을 때, 자기 전에 옷 갈아입을 때 잠시 들르는 게 전부다. 하지만 가장 정리할 게 많은 곳이 옷방인 걸 너무 잘 알고 있었다. 하지만 지난해부터 옷정리 해야 한다는 말만 입에 달고 살고 도무지 몸뚱이가 움직이질 않았다.
옷방이 정리되지 않은 채로 있는 건 마음이 불편할 뿐, 생활하는데 큰 불편함이 없다. 나는 재택근무를 하고 있어서 매일같이 출퇴근을 하는 사람보다는 옷을 잘 차려입을 필요가 없다. 또 그다지 패션에 관심이 있는 것도 아니라서 예쁜 옷을 입는 즐거움도 잘 모르는 사람이다. 계절마다 입는 옷이 서 너 벌 정도로 정해져 있어서 옷방이 정리되어 있지 않다고 해서 뭘 찾는데 시간이 걸린다거나 하는 일도 없다. 다만 집이 전체적으로 잘 정리되어 있고 불필요한 물건을 쌓아두지 않고 사는데, 옷방만이 열외라는 것이 마음 불편할 뿐이다.
나와 옷방을 공유하는 신랑은 하루에 서랍 하나씩, 오늘은 이 서랍, 내일은 이 서랍 이렇게 나누어 정리하곤 한다. 그래서 씻고 갈아입을 옷을 가지러 간 김에 잠깐 시간을 내어 옷정리를 하기도 한다. 하지만 난 그렇지가 않아서 옷방의 온갖 살림을 다 꺼내 놓고, 어떤 옷가지가 있는지 한눈에 살펴본 다음 계절별로 용도별로 나고, 이만큼의 옷을 어디에 어떻게 나누어 넣을지 생각해서 정리하고 싶다. 그래서 작정하고 시간을 내야 한다. 하지만 반나절쯤 시간이 난다고 해도 그렇게 염원하던 옷정리는 차일피일 미루게 되었다. 이유는 단순하다. 옷 먼지 뒤집어쓰면서 정리하기가 싫어서.
더 이상 미룰 수 없다, 이 집의 모든 것을 단순하게 정리해 버리겠다 마음먹고 올여름이 되기 전 옷방을 정리했다. 남겨진 옷이 반, 버려진 옷이 절반이다. 버려진 옷들은
1. 사연이 있는 옷: 이거 친구랑 같이 산 건데, 이거 입고 어디 여행 갔었는데 사진이 진짜 잘 나왔었지, 이거 진짜 비싼 건데 핫딜 할 때 어렵게 구한 거야. 지금은 안 입음
2. 격식 있는 자리에 입고 갈 옷: 결혼식 갈 때 (계절별로) 입을 원피스 한 벌 정도는 있어야지 생각했지만 이제 주변에 결혼할 사람도 없다. 비싸게 주고 산 예쁜 옷이지만 도무지 입을 일이 없어 부피만 차지한다.
3. 어쩌면 한 번 입을지도 모르겠다 싶은 옷: 멀쩡한데 그냥 손이 안 가는 옷. 몸무게는 그 옷 샀을 당시와 같은데 나이 들어 체형이 달라져 안 입게 되는 옷들이 있다. 최장 8년 동안 안 입은 옷도 나왔다.
전엔 옷정리를 하더라도 정말 낡아서 입을 수 없는 옷들만 버렸었는데, 이번에는 사연이고 뭐고 길게 여운을 남길 것 없이 모두 옷장에서 퇴출시켰다. 아주 속 시원하고 기분이 좋았다.
나는 면 티셔츠를 좋아한다. 아무런 그림도 글씨도 없는, 브랜드 로고도 없는 그냥 면 100% 티셔츠. 패션감각이 아주 별로라서 상의 하의 색깔 조합에도 영 재능이 없으므로 검은색 또는 흰색 티셔츠에 늘 손이 간다. 또 남들 말하는 예쁜 몸매도 아니기 때문에 몸의 실루엣이 드러날 필요가 없다. 편하게 입고 세탁기, 건조기에 던져 넣을 수 있는 옷이 좋다. 결국 이번 옷정리에서 살아남은 여름옷은 9900원에 세 장이 들어 있는, 3 pack 티셔츠다. 흰색 두 벌, 검은색 한 벌 들은 걸 사서 청바지에 면바지에, 반바지에 칠부바지에 아무렇게나 척척 꺼내 입는다. 정말 좋은 선택이다. 몇 년간 버릴까 말까 고민하다 의류수거함에 넣어버린 블라우스들을 떠올려도 조금도 아까운 마음이 들지 않는다. 부디 좋은 주인 만나서 쓰임새 있는 여생 살길.
지난해 산 3 pack 티셔츠는 질이 좋은지 세탁기와 건조기를 몇 번씩 거쳤는데도 여태 탄탄하고 눈에 띄는 변색도 없다. 얼마 전 긴긴 여름을 대비하고자 새로 한 팩을 더 사두었는데, 아직 뜯지 않을 채로 서랍에 들어있는 것을 보면 얼마나 든든한지 모른다. 마흔에 가까운 30대인데 한 장에 3300원짜리 티셔츠를 입는 게 참 궁상맞다 싶다가도 몸과 마음이 편안한 내 모습이 너무 좋다. 정말 좋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