규칙적인 생활을 위한 아주 자질구레한 습관
두 달 뒤면 재택근무를 한 지 꽉 채운 3년이 된다. 재택근무를 하는 것은 너무 좋다. 출퇴근에 필요한 시간과 에너지를 쓰지 않아도 된다. 계절별로 날씨에 맞는 적당한 외출복을 구비해 두고 찾아 입는다거나, 최소한의 화장을 한다거나, 길 위에서 시간을 보내는 일이 전혀 필요하지 않다. 또 우리 회사는 탄력근무제를 시행하고 있어서 오전 7시부터 9시 사이에 업무를 시작하고 오후 4시부터 6시 사이에 업무를 정리할 수 있는데, 이런 점을 활용하면 개인의 필요에 따라 시간을 효율적으로 쓸 수 있다.
재택근무를 하면서 알게 된 나의 나쁜 기질 중에 하나는 아무런 규칙이 없으면 한도 끝도 없이 늘어진다는 것이다. 하지만 회사에서는 내게 모든 것을 알아서 하라고 하기 때문에-가령 점심시간도 한 시간 이상 사용할 수 있다. 내게 주어진 과제만 제 때 해결할 수 있다면- 규칙도 내가 정해야 한다. 최근에 지키고 있는 규칙, 매일 같은 시간에 하는 작은 일들이 있다.
오전)
1 커피 한 잔 내려서 마시기: 도저히 커피를 마시지 않고서는 제정신이라고 할 수가 없다. 화학적인 효과보다는 플라시보 효과에 가까운 것 같다.
2. 이메일 확인
- 업무용 gmail: 아침에 열어보면 보통 20건이 와있는데, 정독하는 건 두 개 정도.
- 다음, 네이버 이메일: 주로 쇼핑 정보, 그러니까 광고 메일이다. 클릭해서 읽어보는 건 한 번 오는 카드값 이용 명세서, 보험료 정상납입 안내 메일 정도. 나머지는 다 삭제. 쇼핑몰에 가입할 때 마케팅 정보 수신 동의 해야 할인혜택을 준대서 받아보고 있는 것들이다.
점심시간)
3. 멀티비타민 한 알 먹기: 최근에 간헐적 단식을 하고 있는데, 낮 12시부터 저녁 8시까지가 먹는 시간이라서 영양제를 먹는 것으로 음식 먹기의 포문을 연다.
4. 설거지: 내가 점심 먹은 것, 아침에 식구들이 먹고 간 흔적을 한 번에 치운다. 이것도 꾸역꾸역 미뤄서 저녁에 하던 것을 최근에 초파리가 날려서 규칙처럼 하고 있다.
오후 5시 반)
5. 청소기 돌리기: 업무가 마무리될 때쯤, 아이 하원 전에 청소기를 한 번 돌려야 한다. 집에서 숨만 쉬고 앉아있는 것 같아도 바닥에 떨어진 머리카락이 왜 이리 많은지. 뭘 대단한 걸 해 먹지 않아도 부엌 바닥엔 왜 이리 음식 부스러기가 흩어져 있는지. 이것도 규칙이라 생각하지 않을 때는 매일 하지 않았다. 지저분해도 못 본 척하고 잘 참았다.
아주 사사로운 습관이지만 이 규칙을 매일 지키는 것만으로도 하루하루를 단단하게 보내는 느낌이다. 이 규칙을 모두 실천하는 데 걸리는 시간을 다 합쳐봐도 한 시간이 되지 않는데, 이것들이 요즘 나를 종일 움직이게 하는 축이다.
앞으로 늘려보고 싶은 규칙도 몇 가지 있는데, 의욕은 머릿속에서만 앞서고 몸뚱이가 실행을 안 하는 것이 문제다. 이렇게 문서로 적어두기까지 하니까, 적어도 다음 주부터는 이 중 하나를 실천해야겠다는 마음이 든다.
- 근력 운동: 지난해 여름부터 올해 초까지, 일주일에 두 번 새벽에 PT를 받고 혼자 하는 운동도 주 2회 이상 했다. 운동을 아주 안 한 지는 3개월 정도 되었는데, 운동을 안 하니까 체력이 떨어지고 체력이 떨어지니까 집중력이 흐려지는 아주 나쁜 연쇄작용이 일어나는 것을 실감한다. 집에서 스쿼트 60개 하기를 목표로 시작해 봐야겠다. 어릴 때 피아노 학원에서 연습한 만큼 동그라미를 색칠하는 것처럼 시트를 만들어야겠다고 생각한다. 나는 분명 시트를 먼저 만들어야 스쿼트 60개라도 할 것이다.
- 영어 공부: 영어를 생각하면 화부터 나는 전형적인 영어 포기자인데, 회사 업무 때문에 영어 스트레스가 이만저만이 아니다. 눈으로 읽기만 하는 영어인데도 왜 이리 속도가 더딘지. 하루 10분, 두 세 문장이라도 익히면 좋겠다는 것을 너무나 잘 알지만 일단 도저히... 시작이 안됨... 생각은 늘 하고 있다.
- 브런치 쓰기: 개인적인 글쓰기를 오랫동안 하지 않았는데, 생각을 정리하는 것만으로도 정신과 마음이 개운해지는 것을 느낀다. 전엔 근사한 말, 좋은 인사이트가 있는 글을 적어야 한다는 강박이 있었는데 나이 한두 살 먹는 사이에 그런 마음이 좀 느슨해졌다.
- 책 읽기: 업무 시간에는 내내 문자를 보고 있는데, 일과 관련된 내용이다 보니 늘 미간을 찌푸리고 어금니를 가볍게 문 채로 보게 된다. 재작년쯤 한참 수필 읽기에 즐거움을 느꼈는데, 개인적인 독서 하는 시간을 조금 가져볼까 한다. 얼마 전엔 생전 안 알아보던 전자책도 검색해 보았다. 영어공부보다는 이게 먼저 실행될 것 같다.
지금이 7월 말인데, 올 가을쯤에는 어떤 규칙을 만들어서 지키고 있을지 궁금하다. 지키는데 5분, 10분이 걸리는 자질구레한 일들이라도 여러 개를 모아 즐겁게 하루하루를 채우면 좋겠다는 생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