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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Anna Aug 10. 2024

파리의 밤이 저문다

2024 파리의 안나 D+4

벌써 금요일이라니. 오늘은 해가 덜 비춰서 아침에는 쌀쌀했다. 조식을 사러 숙소 2분 거리의 빵집에 갔는데 어제 간 곳보다 더 정겨운 느낌이 났다. 준영은 잠봉이 들어간 샌드위치를, 나는 닭고기가 들어간 파니니를 골랐다. 계산 전 Pain au Chocolat 두 개를 추가했는데 ”quinze“를 못 알아 들어서 지갑을 한참이나 뒤적거렸다. 15.몇 유로를 내고 집으로 돌아와 커피를 내려 함께 먹었다.

점심은 마레지구 근처에서 프랑스식을 먹기로 해서 미리 찾아 둔 식당으로 갔다. 한국인 평점이 좋은 Le Petit Marché였다. 오리스테이크가 유명했는데 우리는 네 명이었으므로 메뉴를 골고루 시켰다. 한국인이 얼마나 많이 왔으면 흑인 직원이 우리에게 웃으며 “오리고기??”라고 하더라. 난 꿋꿋하게 불어로 오리 하나, 양고기 하나, 스테이크 하나, 생선 하나를 시켰다. 레드와인을 곁들인 식사는 완벽했다. 아빠를 위해 푸아그라도 하나 시켰는데 낯선 맛이었지만 잘 먹더라. 우리 중에 식사를 가장 깔끔하게 하는 건 항상 영호였다.

식사 후 오후 투어를 위해 바스티유 광장으로 걸어갔다. 어제 못 먹은 젤라토를 먹기 위해 아모리노에 갔는데 키오스크가 있더라. 현금 결제도 키오스크로 주문을 하는 방식이었고, 영수증에 불릴 이름을 직접 쓰는 거라 신기했다.

두 시부터는 마레지구 투어가 시작되었다. 벌써 파리에서 네 번째 투어였는데, 그래서인지 가장 지친 날이었다. 보통 투어는 3시간에서 4시간 사이로 구성되어 있었고 설명을 들으며 걸어 다녀야 하기 때문에 체력관리가 필수였다. 금요일 오후의 마레에는 관광객보다 현지인이 더 많은 것 같았다. 한국 사람은 하나도 보지 못했으니 말이다.

예전에 파리에 살 때 나에게 마레지구는 빈티지 쇼핑을 하러 오는 곳이었다. 프리피스타나 킬로샵을 시간 날 때마다 와서 구경했었다. 정작 구매한 것은 없었지만 아이쇼핑 만으로도 즐거웠다. 오랜만에 마레에 오니 쇼핑 욕구가 솟았지만 옛 파리의 역사와 흔적을 찾는 투어에 집중해야 했다. 피곤해서 그런지 이번 투어는 가격대비 아쉽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도 마레지구가 파리의 시작점이었다는 것은 흥미로운 사실이었다.

나와 준영은 6시에 축구 경기를 보러 가야 해서 5시에 먼저 빠져나왔다. 허리와 다리가 아팠지만 올림픽 축구 결승 경기를 포기할 순 없었다. 지하철 역에 내려 Parc des Princes 경기장으로 향하는 길. 프랑스 대 스페인의 경기라 현지인 비율이 어마무시하게 높았다. 우리도 프랑스를 응원했지만, 결국 3:5로 지고 말았다. 응원력에 비해 경기력이 떨어지는 모습을 직관하다니. 인생 참 재밌다.

경기장 근처에서 간식거리 장을 보고 지하철을 타려는데 다 막혀있었다. 숙소까지 걸어서 30~35분 정도길래 무거운 몸을 이끌고 걸어가기로 했다. 아홉 시가 넘은 시간이었지만 여전히 밝았다. 아무래도 일주일 여행은 너무 짧고 피곤하다. 그렇다고 해서 더 있고 싶다는 생각은 들지 않는다. 건조함에 눈과 온몸이 가렵고, 물맛도 이상하고(삼다수 먹고 싶다), 숙소에서조차 옆집 윗집 신경 쓰느라 아침저녁으로 조심해야 하는 삶이... 별로이기 때문이다. 너무 많이 걸어서인지 발바닥이 아팠다. 염증이 재발하지 않길 바라면서, 파리의 밤이 저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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