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설보다 외롭지 않아.
비가 오기 전의 하늘은
비밀을 오래 간직한 이의 눈빛과 닮아 있다
서귀포 칠십리 끝
그 눈빛을 닮은 바위, 외돌개를 마주한다
바다 가운데 혼자 서있는 돌기둥
세상의 모든 고요를 몸에 휘감고
천천히 침묵을 완성해 가는 중이다
소나무 몇 그루가
거센 바람을 감수하며 그의 어깨에 걸쳐 있다
그의 발목은 검은 용암으로 굳어
파도의 맥박에도 흔들리지 않는다
나와 외돌개 사이에는
작은 오솔길 하나쯤은 들어설 법한 거리,
그러나 그 사이에 늘어선 것은
지나온 나날,
잊힌 이름들,
붙잡고도 놓쳐야 했던 말들
그 모든 것이 풍경이 되어
해풍에 흩날리고 있을 뿐
비라도 내렸으면 좋겠다
바닷바람을 맞으며
외돌개! 하고 불러본다
외로움이란
멀리 떨어져 있어도
또렷이 보이는 것
그 어떤 전설보다 슬프지 않게
오늘 그 사이의 거리만큼
마음의 파동을 느껴본다
# 작가노트
재 작년 여름 로리와 함께 제주도에서 한 달 살기를 했었다. 주로 도서관이나 미술관 위주로 다녔다.
제주도는 매년 한 번 이상은 다녀온 곳이기 때문에 관광지는 갈 필요가 없었다. 그냥 제주라는 특이한 자연 속에서 살아보고 싶었을 뿐이다. 화산이 폭발하며 바다에 떨어진 돌이 유난히 많은 곳이 제주도다. 전설보다 더 고요한 외로움이 깃든 곳, 지나다가 들른 외돌개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