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형식

21세기 대한민국의 사농공상

by 안나

사(士) 자들의 우월의식

몰랐다. 오늘 상사의 마지막날인지.

겉으로는 민주적인 척, 평등한 척하더니, 그 미천한 속을 다 드러낸 그 자의 모습에 질릴 대로 질린지라 가든가 말든가 관심 따위 없었다.


정확히 오후 4시에 내 사무실로 와서 손을 내밀며, 다분히 형식적인 말로 '그동안 고마웠다.'라고 하며, 손을 내밀었다. 정말 나에게 고마워한 게 있는 건지, 그렇다면 뭘 어떻게 고마워했는지 궁금하다.

내가 일하는 곳이 철저하게 '서울대 특정학과'가 성골이라는 신라시대 육두품에 따라 움직이는 곳이라는 점은 귀에 딱지가 생길 정도로 들어서 알고 있었다. 하지만, 이제는 前상사가 되어버린 '그'가 오기 전까지 이렇게 티가 나도록 구분선을 지어서 차별할 것이라고는 상상조차 하지 못했다.


'그'를 신랄하게 비판하기 전에 우선 내 직업에 대해 일부 노출을 해야 할 것 같다. 그래야만 나중에 이어질 말들에 대해 논리전개하기가 수월하니 말이다. 뭉뚱그려 내 직업을 단 두 단어로 축약하자면, '외교 연구'이다. 외교관도 아니고, 연구원도 아닌, 연구원이라는 그럴싸한 직함으로 포장했으나, 실상은 그냥 온갖 귀찮은 일을 도맡아 하는 깍두기 같은 직업.


그래도, 단순히 수입원이라고 생각하기보다 그래도 내가 태어난 한국이란 '팀'에 일정 부분 세상의 온갖 이야기와 정세적으로 유행인 것들을 적시에 정확하게 파악해서 글로 알려주는 일을 하는 사람이란 정체성 하나로 버텼다. 순전히 자의로 청소년 때부터 해외생활을 하기 시작했기 때문에, 세상의 다양성과 그 다양성 속에 우리나라, '대한민국' 그리고 오뚝이 같은 대한국민들이 존재하는 아름다운 나라도 널디 널은 지구상에 떳떳하게 존재한다는 것을 일부 알릴 수 있는 업무를 하는 사람이라는 점에 나름 자부심을 느끼곤 했다.


이 세상 사람들이 얼마나 다양한 생각을 하는지, 내가 굳건히 믿었던 신념들은 때로는 지킬 수 없는 세상도 있고, 다양한 인종, 문화, 종교가 한 데 어우러져 세상에 태어날 때부터 눈으로 '다양성'을 체험하기에 '다양한 것이 당연한 사회'에서 지내는 사람들의 유연성을 경험했기 때문에, 다양한 사고가 얼마나 나 자신을 속박하는 것들로부터 해방감을 느끼게 하는지 그 짜릿함을 알고 있었다. 그 짜릿함을 바탕으로 우리나라가 다른 나라와 교류, 협상, 대화, 협력할 때 어떻게 유연함을 발휘할 수 있는지 그런 면모도 나의 글과 사고, 생각으로 한 없이 표현하여 그들에게 미약하게나마 도움이 되고 싶었다.


하지만,

2023년 8월, '그'가 오면서 내가 나름 지켜 온 정체성과 자부심이 아주 교묘한 차별에 의해 서서히 무너지고 말았다.


나를 '외부인'으로 낙인 한 그는 우선 내가 취할 수 있는 정보를 죄다 차단하기 시작했고, 내가 그동안 축적해 온 지식을 '그'가 필요로 할 때 마치 위키피디아처럼 읊조리는 정도의 단편적 지식 전달 기능만 하기 시작했다. 예를 들면, '이 협의체가 만들어진 연도랑 첫 의장국이 어디였지?'따위와 같은, 검색창에 몇 단어만 두들기면 되는 아주 단순한 업무를 '지식을 축적하고 있는 사람'이라고 비행기 태우며 시키기 시작했다.


하지만, 내가 나름대로 쌓아온 데이터들은 점차 구식이 되어갔고, 내가 정보 동냥을 하지 않으면 업데이트할 수 없을 지경에 이르렀다. 그러자 나를 점차 조직에서 '외부인'이라고 보면서 선을 긋고 방치하기 시작했다. 그럴 때마다 '그래. 어차피 내가 여기서 뭘 하겠어.'라고 낙담하며, 정말 해서는 안되지만, 회사에서 독서하기 시작했다. 독서라도 해야 머리가 기뻐할 것 같아서다. 이것 역시 강박이겠지만, 독서라도 안 하면 못 살 거 같았다. 그에게 여러 번 불만을 제기하고, 심지어 '회사 다니기 싫다.'라고 까지 이야기하며 각을 세웠지만, 그럴 때마다 그는 나의 자존감을 잘근잘근 밟았고, 그의 후배들도 나를 무시하기 시작했다. 결국 내가 한 때 아름답다고 여긴 대한민국에 대한 애국심은 비아냥으로 전락했고, 21세기 대한민국을 아직도 선민사상으로 바라보는 시대착오적인 인간들이 가득한 이 조직에서 '한국의 미래는 암울하다.' 란 생각을 하게 되니, 당연히 업무에 대한 보람 따위 물거품처럼 사라진 지 오래되었다.


그러자 '불안장애'가 재발했다. 병적으로 몰두하기 시작하면 식음을 전폐하고 화장실도 참으면서 엉덩이를 책상의자에 붙이는 성미인데, 이 과잉행동의 빈도수가 점차 늘었고, 머리 안은 마치 쓰고 남은 성냥개비들을 여기저기서 모아 마지막으로 불을 지피는 무리를 범하다, 결국 잿더미가 된 것처럼 쾌쾌했다. 머릿속이 뿌옇다 못해 이제는 잿더미처럼 변해 폐해가 되어버린 상태란, 그야말로 죽는 것은 무서워서 못하니깐 살아간다는 말이 무엇인지 알았다. 집 밖을 나와 '회사'라는 새장으로 가는 그 이동 시간 동안 어떻게 하면 회사를 안 가볼 핑계를 대볼까. 같은 생각을 하며, 눈물이 핑 돌았고, 그때마다 가족들이 눈앞에 아른거려서 힘들었다.


결국 심리상담과 정신과 치료를 병행하며, 다시 한번 직업이 아닌 내가 스스로 정한 목표를 향해 몰두할 수 있는 일을 찾자는 결론을 내렸다. 그리고, '직업은 결코 나를 정의하지 않는다'라는 신념을 다시 한번 상기하면서 우선 새로운 곳을 찾을 때까지 존버하자고 그렇게 다독이며 지금껏 지내고 있다.


그리고, 오늘 그가 떠난다며 예고 없이 내 방에 온 것이다.

형식적인 말, 형식적인 표정. 그의 이 모든 가식적인 형식적인 행동양식 이면에는 '대한민국 최고의 엘리트'라는 기본 태도가 깔려있고, 우월한 내가 도덕적 의식 또한 우월하니 미천한 당신에게 와서 '위로'와 '용기'를 북돋아준다. 이렇게 밖에 보이지 않는다.


그의 가식적인 행동 퍼레이드 그 마지막 말에 "당신의 가장 큰 장점이 뭔지 알아? 강강약약이라는 점이야. 세상엔 그런 사람이 많이 없어." 정말 이 말에 기가 막혀서 말이 안 나왔다. 이 세상엔 평등의식이 기저에 깔린 사람도 많고, 당신처럼 학력과 직함 때면 그냥 동네 아저씨인 사람이 '칭찬'이라고 저렇게 말하는 게 참 기분이 더러웠다.


물리적으로 한국 사회를 떠난 지 20년이 넘었다. 유럽땅에서 오랫동안 공부하고, 그리고 돈을 벌기 위해 인도네시아 자카르타를 선택해 이곳에서 12년째 지내고 있다. 이 시간 동안 '나의 생각이 다를 수도 때로는 틀릴 수도 있다'라는 것을 배웠고, 그렇기에 나에게 확신은 독약과도 같은 그런 개념이다. 영화 '콘클라베(Concalve)'에서도 새로운 교황을 선출하기 위해 내적갈등을 겪으며 상황을 조율하는 주인공 로렌스 추기경이 이렇게 말한다.

"확신이야말로 통합의 가장 큰 적입니다. 확신은 관용에 있어 가장 잔혹한 적이니까요 (Certainty is the great enemy of unity. Certainty is the deadly enemy of tolerance.)"


나는 내 생각이 틀릴 수도 있고, 바뀔 수도 있다는 생각이 곧 신념이기 때문에 눈에 보이는 허울뿐인 계급장으로 사람의 가치와 능력 그리고 잠재력을 함부로 판단하는 '그'가 그리고 이런 행동이 아무렇지도 않게 당연한 이 조직이 이제는 질려버렸다.

더 이상 형식도 거추장스럽고, 어떻게 하면 이곳을 떠날까. 그 생각만 할 뿐이다.


부디, 새로운 곳에 가서 더 이상 정신적 핍박과 방치라는 고문을 타인에게 선사하지 않길. 이런 바람조차 부질없을 테지만, 그의 존재가 더 이상의 deadly enemy of tolerance가 되지 않긴 간절히 바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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