억지로 다니기 싫은 회사에 '출석'하여 낙담하는 여자
핸드폰 그리고 손목에 찬 스마트워치가 정확히 5시 55분 되면 울린다. 한 번에 일어나는 것은 이미 예전에 포기했기 때문에, 10분 간격으로 3번 정도 울려야 자카르타 매연처럼 뿌연 머릿속이 그나마 좀 깨끗해진다. 머릿속은 이미 매연으로 뿌옇고, 꾸닝안(Kuningan) 시내 밖을 바라보아도 내 머릿속 마냥 뿌옇다.
아무리 비타민을 대량으로 복용해도, 그 좋다는 레몬수를 잔뜩 마셔도, 내 몸과 머리가 만약 스펀지라면 '피곤함'이라는 짜디짠 바닷물에 흠뻑 젖어있는 듯한 느낌이다. 이 느낌은 도무지 좀처럼 사라지지 않는다.
'정말 회사를 탈출하고 싶다.'이 말을 마치 아침기도문처럼 되뇌며 사회와 한 계약에 마지못해 침대에서 발을 뻗어 에어컨 바람으로 차가워진 대리석 바닥에 맨발을 디딘다.
아침마다 반복되는 루틴.
커피콩 20g을 분쇄기에 갈아, 물 300g을 섭씨 82.5도로 데워 하리오 V60로 커피를 내린다. 유일하게 내가 피곤하다고 느끼지 않는 몇 안되는 행위 중 하나다.
이렇게 따뜻한 커피를 내가 가장 좋아하는 팬지꽃 모양이 프린트된 컵에 담아 양손으로 컵을 움켜쥐고 뉴스를 모니터링한다.
세상에선 참 많은 일이 일어나는구나. 노벨평화상을 마치 전리품으로 받고 싶어 하는 트럼프의 욕망이 여실하게 드러난 알래스카회담에서의 별 볼 일 없는 결과에 대해 세계 유수의 언론들은 저마다 마치 큰일이 일어날 것 마냥 호들갑을 떨어댄다. 이스라엘에서 가자지구의 공습에 반대하는 시위가 일어났고, 가자지구에서 정말 많은 아동들이 영양실조로 죽어가고 있다는 소식이 동공을 붙잡는다. 관자놀이가 아플 때쯤 광복절 기념사에 대한 전문가의 평가, 그리고 아직도 진행 중인 전 대통령 부부의 수사 소식까지 꾸역꾸역 머릿속에 넣어 정리하면 블루버드 택시를 타고 회사를 갈 시각이 된다.
파란색 그리고 노란색 비닐봉지 재질로 만든 우비를 입고 오토바이에 몸을 실은 채 각자의 '돈 버는 장소'로 향하는 도로의 수많은 사람들. 나는 그들보다 더 안락하게 출퇴근하지만, 그것도 '막힌다'며 툴툴대며, 택시 앞을 가로막는 오토바이 운전자들에게 온갖 저주를 퍼붓는다. 이 것이야 말로 세상 비겁한 일이라는 것을 알면서도, 직장을 가기 싫은 마음을 괜히 그 가는 길을 방해 하는 사람의 탓으로 돌리는 것이 얼마나 한심한지. 택시 창문에 비친 일그러진 그리고 넋이 나간 표정을 보며, 무채색의 자신이 얼마나 비루한지 또다시 쓴웃음을 짓게 한다.
그리고 도착한 사무실.
23층. 창문도 열리지 않아 이산화탄소로 꽉 찬 이 공간에 들어오면 먼저 숨먼저 턱턱 막힌다. 그리고, 언제나처럼 내 얼굴을 그 어떤 표정이라곤 없다. 안면 근육은 마비되어 움직임 자체가 없는 세상에서 가장 무뚝뚝한 얼굴로 최소 8시간, 길게는 10시간을 사무실이라는 공간에서 지낸다.
매주 한 번은 마치 아침조회 같은 전체주의 체제에서나 있을법한 민주사회를 빙자한 상사에게 칭찬받기 위한 '회의'라는 것을 하는데, 이 회의라는 것을 왜 가야 하는지 모른 체 '계급'을 나눈 회의 장소에 앉아 저마다의 '자랑질'을 듣는다. 이 자랑질을 듣는 게 처음에는 이렇게 힘든 일인지 몰랐는데, 매번 60분이 넘어가니 온몸이 거부하며, 관자놀이의 아우성으로 어떨 땐 그 꼴값 떠는 가식적인 회의장을 박차고 나오고 싶다는 생각의 빈도가 점차 높아지고 있다.
'정말 큰 일'이라고 그렇게 나 스스로에게 '좀 가만히 있을 수는 없겠니?'라고 하며, 다그치지만, 정적으로 진심을 다해 몸무리 치는 나의 자아는 미친 듯 괴성을 지르며 이곳을 제발 좀 벗어나라고 요구한다.
모든 것들이 힘들다. 보이게 인간취급하지 않는 이 돈 버는 장소에서 관리자로 스스로를 일컫는 자들의 가식적이고 비인간적인 행태. 그 행태가 12년째 축적이 되어서 무뎌질 줄 알았건만, 더 힘들기만 하다. 남들은 내성이 생겼다는 데, 나는 한번 깊게 파인 상처가 덧나더니, 결국 계속 아물지 않고 찢어져 더 깊게 더 세포조직을 망가뜨리고, 거의 정신적 패혈증 수준에 온 것만 같다.
무시당하지 말자고. 애써 다짐한 것이 겉모습만큼이라도 '아무렇지 않게' 보여주는 것인데, 정말 막대한 에너지가 필요하다. 아무렇지 않은 게 아니라서 그렇다. 스스로 인정욕구 없는 인간이라고 다독이며, 내가 세상에서 가장 싫어하는 '그냥' 하자란 억지로 이렇게 질질 끌며 지냈건만, 더 이상 '그냥'이란 말이 당위로 지속된다면 까미유 끌로델급 정신분열증으로 병을 키울 것 같단 두려움이 엄습한다.
낙담한 채, 앞으로 6시간 넘게 이곳에 있을 생각을 하니 서글프다. 매연으로 가린 자카르타 시내는 도무지 나아질 기미가 보이지 않고, 이 회사를 다니기 싫다는 생각만 켭켭이 더 쌓여 '싫다'가 '증오'로 악화되고 있다는 사실에 두렵기도 하다. 처음에는 그랬다. '그들도 사람인데, 그리고 다 배운 사람들인데 설마.' 정말 고리타분한 이야기지만 '설마가 사람 잡는다'라고 이렇게 '그들만의 세상'이라는 높은 성역에 갇혀 '그들의 양반놀음'을 아무런 목표 없이 뒤치다꺼리하는 게 힘들다. 혼자 외친다. 나도 일하러 왔다고. 나도 일하고 싶다고. 하지만, 그들은 非조직원이라는 이유로 그들이 차마 다 끝내지 못한 일들 또는 귀찮은 일을 깍두기로 해주는 존재로 생각할 뿐이다. 그렇다면 방법은 내가 나가는 수밖에 없는데, 아직 그만둘 용기가 없다는 나 자신이 한심할 뿐이다.
이런 게 정말 사회생활인 것인가. 또 낙담하며 하루를 지내는 수밖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