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시해도 상관없으니.
나는 인정 또는 주목을 받으려 애쓰지 않는다. 침엽수 가득한 숲 속을 본다고 했을 때, 조금 상처가 나 있어도 상관없으니, 수많은 나무들 중 하나, 아니 시들어 떨어진 나뭇가지여도 상관없다. 그리고, 그 나뭇가지가 짓밟혀 부스러기가 되어도 좋다. 태생적인 성정이 그런 것 같기도 하면서 결국 나를 둘러싼 환경이 그렇게 나를 만든 것 같다.
초등학생 시절부터 내내 선생님한테 미운털 박힌 아이였다. 이유는 잘 모르겠는데, 이상하게도 선생님들은 내가 거슬렸나 보다. 뚱한 표정과 덥수룩한 머리칼로 이마를 뒤덮은 채 웃기는커녕 매일같이 남과 어울리지 못한 채 어색하게 덩치만 큰 여학생. 엄마는 학교 상담을 거의 피하는 자유방임주의자였다. 그리고 현실적으로도 엄마는 오랫동안 학업을 진행해 온 아빠 때문에 내가 중학생이 될 때까지 경제활동을 이어갔다. 옷가게. 쌀가게. 요리학원 출강 등 정말 닥치는 대로 일을 했다. 선생님이 심심하면 혼내는 아이여서 그랬는지, 당연히 아이들도 나를 우습게 보았고, 그때부터는 그냥 자발적인 아웃사이더로 지냈다. 결국 혼자 지내는 것이 익숙해졌고, 초등학교 저학년 때까지는 참 신체적 괴롭힘에 울부짖으며 저항했지만, 어느 순간부터 이 모든 것에 대해 대응도 점차 줄어드니 모든 부정적 접촉에서 자유로운 그런 몸이 되었다. 그때부터 나는 혼자 있어서 외롭지 않고, 관계에 집착하지 않는 그런 아동으로 지내는 것이 익숙해졌다.
그러한 해가 거듭되고, 영화 시나리오 작가의 꿈을 꾼 채 - 그때는 내가 정말 대단한 영화를 만들 거라는 망상적 환상에 사로잡혔다. 지금 생각하면 참 낯 뜨겁지만.., - 고등학교도 채 마치지 못한 채 오랜 기간 아빠를 설득시켜 영국으로 학업장소를 바꾸었다. 그리고, 다시 고등학교를 다니며 입시 준비를 했는데, 나름 목표의식이 뚜렷했기에 '사교'에 관심이 없었고, 빨리 대학에 들어가자는 그 마음뿐이었다. 이미 단련된 '혼자 있음'이 전혀 외롭지 않았기에, 어떤 무리에 들어가는 것을 거부했고, 그래서 나름 학업은 순조롭게 잘 마친 것 같다. 그때, 책더미에 파묻힌 그런 생활을 하루 이틀 글피 이어가며, 이게 습관이 되다 보니 잘 모르는 단어와 문장구조를 여러 번 읽고 해석하느라 누군가를 만나면서 논다는 것이 참 사치스러운 행위라고 생각했다. 그때는 애를 많이 쓴 것 같다. 이 모든 것들을 나름 혼자서 해결하고, 학교에서 제시하는 수준에서 뒤떨어지지 않기 위해서 말이다.
그리고, 대학을 들어갔다. 영국 동부 꼬리 모양에 있는 노리치(Norwich). 이곳은 잉글랜드에서 일조량이 가장 많은 곳으로 사람들은 과거 노르만족의 영향을 받아 프랑스어처럼 H 발음은 묵음이고, T 발음도 거의 하지 않아, 하우스는 아우스, 워터는 오우어처럼 하는 농업기반의 작은 소도시이다. 과거 잉글랜드의 수도이기도 했던 곳이다. 나는 기숙사 생활 그리고 자취생활을 하면서 노리치 동네를 혼자 돌아다니며, 그때는 유행했던 팝업 지도를 워터스톤즈(책방 체인)에서 구입해서 모든 곳을 형광펜으로 색칠해 가며 구석구석을 돌아다녔다. 내가 가장 좋아한 길은 Elm Hill 그리고 St Benedicts와 학교로 걸어가는 Bluebell Road라는 곳이다. 이곳을 매일같이 2시간 넘게 등하교하며 수없이 많은 노래, 공상, 그리고 하루를 반추하며 보냈다. 이 시간들로 나는 아마 '이향인'이라고 할 수 있는 그런 성품을 갖게 된 것 같다. 막상 사교적인 곳에 가면 그렇게 어색하거나 싫진 않지만, 기본적으로 눈에 띄기보다 조용히 파묻히고, 결국에는 혼자 있는 것을 좋아하는 그런 성격. 오롯이 혼자 있을 때 가장 나다움을 발휘할 수 있고, 누군가와 시간을 보낼 때도 나 자신을 그 시간과 상대방에 투영해 보는 그런 성격.
나는 '규정'하는 것을 그다지 좋아하지 않는다. 물론 학문의 세계에서는 규정을 통해 문제를 제기하고, 그 문제제기를 통해 나만의 이론과 주장을 하기 위해서, 어떤 특정 이론에 상황을 대입하는 행위를 한다. 다만, 나는 이 모든 행위가 '굳이' 꼭 모든 현상을 문제가 있다고 봐야 하는 것인가. 어떤 행위들은 그다지 분석이 필요하지 않은 그냥 자연스럽게 형성된 일이기도 할 텐데라며, 분석을 쓸데없는 객기로 보기도 한다.
그래서, 타인의 관계와 그들의 시선에 대해 별로 관심이 없고, 그들의 주목을 받으려고 전혀 애쓰지 않는다. 세상에서 스스로를 생각하는 것과 남이 볼 때의 그 사람이 불균형일 때가 상당히 많은데, 나 역시 남과 보는 나와 내가 스스로는 보는 내가 다를 수 있지만, 최대한 그들의 평가에 대해 무게중심을 두지 않는다. 독단적인 사람이 되지 않으려고 귀 기울이긴 하지만, 그 말이 내가 생각하는 것과 다르면, 내 마음속 한편에 재활용할 수 있는 곳으로 보내버린다는 소리다. 타인의 평가가 그렇게 거슬리진 않는다 소리다. 설사 그것이 부정적이라고 할지라도.
어차피 인생은 혼자 사는 것이다. 그래서 남이 봤을 때는 시시해 보일지라도 스스로를 돌아보고, 그리고 직시했을 때 시시하지 않으면 되는 것이다.
나는 이 '시시하다.'라는 말에 별로 거부반응이 없다. 내가 남에게 아쉬운 소리 없지 독립적으로 피해 주지 않고 살아간다면 멋져 보이는 - 이 말 역시, 주관적이기에 - 삶을 살지 않아도 내 신간이 편하면 그만이다. 모든 것에 집착하지 말자는 그 마음이 주관이 되는 순간, 수사적인 모든 것에 대해 나 스스로 '시시하다'라고 생각하게 되니, 겉모습 그리고 그래 보이는 것들이 거슬리지도 그렇다고 내가 동경하거나 집착하는 대상이 되지도 안 않았다.
이 세상에는 나와 생각, 주관, 가치, 철학이 다른 사람이 존재하다. 그리고 다수일 것이다. 그들을 바꾸고 싶지 않다. 완전한 선은 없어도 악은 있다고 생각하는 편인데, 어떤 한 무리와 인간을 내 기준으로 판단하여 헤치고 살인을 하지 않는 선에서 다양한 생각은 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그것에 대해 거슬리지 않게 넘어가며 나 스스로의 주관을 만드는 자양분으로 쓸 뿐 그것을 억지로 바꾸려고 하지 않는다는 소리다.
예를 들어, 내가 보았을 때 엄마와 아빠가 휴대폰 기능을 쓰는 것이 답답해 보일 때가 있는데, 나는 그들의 방식과 습관을 애써 바꾸려 하지 않는다. 물론, 내가 하는 것을 관찰하고, 내 방식이 편리해 보일 때, '그거 어떻게 하는 거야?'라고 하면, 기꺼이 즐거운 마음으로 알려드린다. 하지만, 굳이 그들의 방식이 '답답'하다고 규정하며, 내 방식이 좋아 보이니 바꾸려고 하지 않는다는 소리다.
모든 것이 그렇다. 정답이 더 이상 세상을 지배하지 않는 이러한 시류에서 내가 생각하는 것이 완전한 답이 될 수 없다. 그리고 내 기준으로 타문화와 타인을 마음대로 판단하고 평가하는 것이 오만이자 편협한 사고로 가는 그런 지름길이다.
내 마음과 사고를 완전히 해방하기 위해서는 애쓰지 않는 그런 삶이 나에게는 가장 어울리는 방식인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