좀처럼 나아지지 않는 기분
다시 '일상'으로 규정된 삶을 반복한다. 어제, 오늘, 그리고 내일도.
입에 풀칠하고 그 누구에게도 경제적으로 아쉬운 소리 하지 않으려면 닥치고 일해야 한다. 생각을 해서는 안된다. 생각은 사치, 그리고 매우 위험한 행위니 말이다.
정말 도무지 나아지지 않는 이 기분. 이렇게 울적한 마음이 몇 달 동안 지속되면서 하고 싶은 것이 아무것도 없다니. '여행'이라는 사치를 하면서도 걷는 것 이외에 경험하고 싶은 것이 아무것도 없다. 음식, 날씨, 우울한 사람들의 표정, 스산한 분위기 등이 그냥 한꺼번에 덩어리로 합쳐져서 사정없이 나를 홀대한다.
주야장천 무조건적으로 잘 보여야 한다는 강박 속에 온전히 내가 될 수 없고, 사랑은 못 받을지언정 그냥 눈 밖에 벗어나지만 말자는 그 집착으로 정말 하기 싫은 사회생활을 하고 있는 중이다.
나에게 피붙이는 엄마, 아빠, 동생 이렇게 3명 그리고 피를 나눈 형제는 아니지만 내가 선택한 가족, 남편. 그나마 이 4명이 나에게 살아야만 한다는 동기부여가 되고 있다. 이 이상의 관계형성엔 도무지 자신이 없다. 그들을 이외에 누군가를 사랑할 에너지는 연소되어 잿더미로도 남아있지 않다. 에너지의 잔여물도 애꿎은 강풍바람에 날려가 버린 듯 모든 것이 완전히 연소된 채 허공을 떠돌다 존재의 기운을 감춘다.
로맨스에 집착하던 어린 시절, 조금 위험한 일탈을 한 적이 있다. 여자친구의 존재를 알면서도 그가 풍기는 울적한 분위기에 휩쓸려 헤어 나오지 못한 적이 있다. 결국 내가 밀어내고 일방적으로 관계를 정리했지만, 그 여운은 거의 3년이 간 것 같다. 이미 타인과 관계를 오랜 기간 맺고 있던 사람에게 끌렸던 나 자신이 참 더러웠다. 그러나, 몇 년 후 내가 든 생각은 그에게 끌렸던 것이 아니라 내 소용돌이 같은 마음에서 헤어 나오지 못했던 거구나. 란 깨달음과 함께 나 따위 누군가를 그렇게 사랑할 역량이 한없이 부족한 인간이라는 결론으로 절단기처럼 그에 대한 마음을 끊었다. 모두 나의 헛헛한 마음과 내재된 불안 때문이다. '그'라는 존재를 탓할 것도 아니다.
그러고 나서 몇 년을 사랑의 개념을 완전히 무시하면서 온전히 쾌락을 우선시하는 그런 삶을 살았다. 마치 편의점과 자판기에서 모든 끼니를 영혼 없이 소비하는 그런 사람처럼 그렇게 거짓 '사랑'을 놀이처럼 하며 지냈다. 모든 관계의 시작과 끝은 다 '내 마음대로'가 기준이었다.
그러다가 대학원 졸업 후 몇 년 만에 다시 만난 지금의 남편을 이렇게 소중한 존재로 맞이할 줄이야. 은하계가 보이는 그의 큰 눈망울을 보고 있으면 나 자신이 정말 한 없이 더러워 보였다. 그와의 관계 시작 이후 참회의 마음으로 하루하루를 살다가 결혼이라는 사회의 계약을 맺기로 마음먹었을 때 또 도망치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았다. 그렇지만 이 마음을 이겨내고 표면적으로나마 내가 선택한 나의 가족이 단 1분도 상처받지 않길 바라며 그가 원한다면 무엇이든 해주고 그 어떤 힘듦도 이겨내야 한다는 굳셈이 나의 삶을 지탱한다.
그렇지만, 혼자 있는 시간을 확보할 때마다 어두운 공상 속에 나 스스로를 가둔다. 마치 예수의 가시관처럼 내 온몸을 그런 가시관으로 감싸면서 어둠 속에 냉소적인 부분과 부정적인 마음을 떨치지 못한 채 지낸다.
그러다가 오늘은 이찬혁의 2025년 에로스 앨범에 수록된 Out of My Mind라는 노래는 10번 넘게 반복 재생 중이다.
"눈이 빙글빙글 돌아서 그냥 돌아버렸어."
"줄이 다 썩어서 손을 놓아버렸어."
정말로 돌아버리기 일보직전에 나는 줄을 일부러 썩히면서 스스로 감정의 파멸 속으로 몰아넣는 버릇을 고치지 못한 채, 아니 이 걸 왜 고쳐야 하는지 반문하며 또 그렇게 울적함 속에 가둔다.
행복이라는 말은 위선적이다. 누구나 행복할 권리. 이런 말은 도대체 누가 만든 것인가. 다들 대접받기 위해 그리고 대접받으려고 일종의 사회 계약을 위반하지 않으며 자기 구실을 한다.
내가 만약 아무런 구실을 하지 못한 채 그냥 집에만 누워있다면, 그 누가, 제아무리 가족이라 해도 사랑할 수 있겠는가.
그런 것은 존재하지 않는다.
다만, 이 구실을 하는 게 조금 지치고 피곤하다. 그리고 정말 극복하기 어려운 감정은 바로 이 모든 것이 지겹다는 점이다.
완전히 돌아버리지 않기 위해서 그러지 말자고 다짐하며, 다시 한번 가족사진을 들여다본다. 내가 돌지 않아야 우리 가족들 눈에서 눈물을 뽑지 않을 테니. 내 이 소용돌이 같은 감정을 조금 더 부여잡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