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3. 여기까지가 끝인가 보오.

포기해야 하는 것인가.

by 안나

거의 1년 넘도록 '이직' 생각뿐이다. 그렇다고 해서, 딱히 새로운 직장에 가고 싶은 마음도 없다. 오히려 '하. 또 새로운 조직에 들어가서 적응하는 것도 스트레스네.' 라며, 낙담하기 일쑤다.


박사논문 막바지에 접어들었는데, 이게 거의 마라톤의 결승점인 줄 알았더니만, 시작일 줄 누가 알았겠는가. 2025년 9월에 제출했던 저널은 결국 6개월이 지난 2026년 3월 말, 우리 저널의 성격과 맞지 않고, 연구의 목적을 알 수 없다는 냉담한 반응 속에 결국 '출판 거절' 결과를 받았다. '한 번에 되는 것이 아무것도 없구나.'라며, 또 한 번 풀이 죽은 채, 고개를 떨군다.


13년째, 매일같이 똑같은 직장에 출근한다.

아침마다 블루버드 택시를 타고, 자카르타 교통체증과 함께 하루를 시작한다.

자카르타의 매연은 갈수록 심해져서 뿌연 하늘을 보는 것이 이제는 슬프지도 않다.

원래 하늘의 색깔은 뿌옇다고 생각하며, 대기오염을 당연하게 받아들이는 생활도 위험하리만큼 익숙하다. 아마도 내 폐는 담배연기처럼 허옇게 물들어서 헐어있을 것이다. 2015년 난생처음 폐렴을 앓았으니, 오장육부가 튼튼할 리 만무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루에 30분은 취업사이트를 들락날락거리면서, 뭐라도 하나 지원할만한 기회가 있으면 시도는 해본다. 하지만, 갈수록 취업시장의 폭과 영역대는 좁아지고, 나 같은 인문사회인이 철학이 궁핍한 이 세상에서 설 공간도 좁아지고 있다는 것을 느낀다. 그냥 지금 이상하리만큼 안정적인 이 울타리가 싫다. 울타리에서 벗어나고 싶은 마음이 너무 큰데, 또 겁은 많아서 그렇게 하지도 못한다. 결국은 비겁한 겁쟁이인 것이다.


지난 1년 동안 구직시도만 100번을 넘게 한 것 같다. 작년 12월 고대했던 직업에서 결국 낙방하고, 한동안 우울했지만, 오히려 잘된 거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렸을 때는 장래희망도 많고, 내가 하고 싶은 일을 확고하게 정해서 밀고 나가는 추진력하나만큼은 참 대단했는데, 이제는 하고 싶은 일이 아무것도 없다. 스스로 생을 마감할 결단력 조차 없으니, 이제 남은 인생을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막막하기보다 귀찮다는 생각이 앞선다.


열심히 하고 싶은 마음도 없고, 그렇다고 잘하는 것이 무슨 소용이겠는가 싶다가도, 이런 냉소적인 생각 속에 하루를 어푸어푸 헤엄치다 보면 결국 해가 저문다. 잠도 잘 오지 않아서, 밤늦게까지 뒤척이며 어떻게 잘 수 있을까 고민하다가 새벽녘에 잠이 들지만, 적도의 아침 햇살은 빨리 일어나서 노동을 하라며 부추긴다.


이렇게 사는 것이 과연 '산다'라고 할 수 있는가?


내가 대학을 다닐 때까지만 하더라도 일명 '9-6' 직장생활을 할 것이라고는 생각도 못했다. 조직생활이 버겁고, 누구랑 같이 있는 것 자체가 고통스러운 내가 과연 딱딱한 조직문화 그리고 상하관계에 잘 순응할 수 있을까? 순응까지는 아니지만, 역시나 인간은 생존의 동물이라 그런지, 최고는 아니더라도 나름대로 입에 풀칠은 하면서 살 수 있는 정도의 능력은 있는 것 같다.


이렇게 이직시도를 하고, 무엇인가 새로운 환경 그리고 도전을 시도해도 아무런 변화가 없는 상태에서, 나아진다고 생각하기보다는 '여기가 끝인가'라는 생각이 앞서서 씁쓸하고 스스로가 참 부족하단 생각이 든다. 인간은 저마다의 속성과 특성을 갖고 있다는 생각이 강해서 그런지, 나라는 어떤 개체를 사회가 정해놓은 틀에 맞추어 소득과 직업으로 나를 규정하고 싶은 마음은 티끌만큼도 없다. 단지, 자아를 실현하고자 하는 그 가득한 욕망 속에 내가 스스로 만족할만한 성취도를 과연 달성했는가. 나한테 부끄러움 없고, 과연 나다움이 무엇인지 알 수 있는 그런 일을 하면서 살고 있는가. 이 두 가지 물음을 하다 보면, 잘 모르겠다.라는 결론에 도달한다.


애초부터 직장에서 자아를 실현하긴 글러먹었다. 직장이란 사회계약론에 따라 일정 부분의 울타리를 제공하는 어떤 틀에 불과하며, 나는 그 속에서 남에게 피해 주지 않고, 직장에서 요구하는 바를 이행하는 개체라는 점에 대해서는 뚜렷한 주관을 가지고 있다. 남에게 잘 보이고 싶지도 않고, 남의 눈에 띄고 싶지도 않다. 다만, 나의 철학이 어떤 것인가. 과연 끝이 보이지 않는 이 개인적 철학을 끝까지 모색하고 탐험해야 할 가치가 있긴 한 것인가. 라는 의문이 좀처럼 사라지지 않는다. 처음에는 들떠서 세상의 끝을 보겠다고 까불며 항해했지만, 망망대해 속에서 지구가 둥글기 때문에, 끝은 보이지 않고, 그 '끝'의 개념과 정의는 결국 내가 '포기할 때' 만들어지는 것이 아닌가 하는 그 낙담 속에 물거품처럼 사라져 버리지 않을까.


이 모든 것이 아마도 내재된 불안함 속에서 비롯된 것이 아닌가 싶다.

동경하는 대상이 없다.

무엇을 딱히 이룬 것도 없지만, 그렇다고 해서 특별히 이루고 싶은 것도 이제는 없다.

나는 내가 어느 정도 창의적인 것에 재능이 있다고 생각했지만, 이것도 잘 안된다.

모든 것이 버거울 뿐이다.


우울감이 디폴트인 이 세상에서 나 역시 우울감이라는 암묵적인 사회분위기에 휩쓸려, 아주 최소한의 의무만 하다가 삶의 의미를 찾지 못한 째 그렇게 어영부영 살다가 생을 마감하게 되지 않을까. 그것이 단지 조금 두려울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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