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2. 원래도 없었을 낭만

유럽의 낭만은 다 옛날옛적 이야기

by 안나

2월 28일 미국과 이스라엘의 공습으로 이란 그리고 UAE가 매일같이 미사일과 드론 공격으로 여행 기피 지역이 되었다. 나는 1월 말 이미 에티하드 항공으로 브뤼셀행 비행 편을 예매해서, 가든가 아니면 말든가 이 둘 중 선택지 중 결단을 내려야만 했다. 게다가 아부다비-브뤼셀 항공편 EY57편은 거의 매일 취소였고, 아무래도 유럽을 가려면 주요 공항으로 가는 수 밖에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상황은 좀처럼 나아질 기미가 보이지도 않았다. 이미 80대 고령인 시부모님을 이때 안 보면 언제 보나 하는 생각에, '그래. 파리로 항로를 바꾸어 가자.'라고 마음을 먹고 그때부터 에티하드 항공사 고객 서비스 센터 라이브챗(Live Chat)과의 씨름을 시작했다. 3일에 걸쳐 하루에 짧으면 2시간 길면 3시간 기다림 끝에 고객센터 서비스 직원과 이야기를 나누었고, 자카르타-파리 출도착으로 비행 편을 변경했다.


3월 20일 금요일 자카르타 수카르노-하타 공항을 떠나 21일 새벽 2시 아부다비 공항에 도착했다. 도착하자마자 미사일 공격으로 공항 전체가 바삐 움직였고, 부자연스럽게 한산하고 어이없게 사치스러운 그 하얀 공항에서 나는 졸린 눈과 녹초가 되어버린 몸을 이끌고 대피소로 향했다. 그렇게 나름의 고생 끝에 파리 샤를 드 드골 공항(CDG) 입성. 2005년 1월, 이곳을 지나 런던으로 간 적이 있는데, 다시는 CDG를 거치지 말자고 다짐했다. 정말 대환장의 공항이고, 이곳에 있는 것만으로도 안전하다고 느낄 수 없기 때문이었다.


조직적인 모습이라고는 절대 찾아볼 수 없는 어지러운 공항. 정말 복장 터지게 하는 공항 직원들의 느릿느릿한 몸짓과 행동. 아무리 3시간 전에 공항에 가도 승객이 빨리빨리 행동하지 않으면 비행기를 놓칠 수도 있다는 불안감을 떨칠 수 없는 공포의 공항이다.


어찌 되었든 그렇게 꾸역꾸역 파리에 도착했다. 사람들은 파리가 낭만의 도시라고 하는데, 마치 이찬혁의 '멸종위기의 사랑'의 한 구절인 '한 사람당 하나의 사랑이 있었대'처럼 과거 사랑이 전부였고 한 사람 이상의 여러 사람을 사랑할 수밖에 없었던 그런 도시였을지 모르겠으나, 나에게는 그냥 지저분하고 불쾌한 도시에 불과하다. 파리를 수도 없이 (자의라기 보단 타의로) 여러 번 갔지만, 절대 나와는 친해질 수 없는 그런 종류의 분위기가 풍기는 곳. 미국의 상업주의를 경멸한다고 해놓고서는 관광지의 카페와 레스토랑에서는 죄다 '알아서' 팁을 계산해서 손님들에게 요구하는 그 행태에 안 그래도 꼴 보기 싫었는데, 더 싫어졌다.


날씨는 을씨년스럽고, 바람은 왜 이렇게 세차게 부는 것인지. 센 강의 흙탕물 그리고 기하급수적으로 올라버린 물가 등이 나를 더 힘들게 했다. 남편은 어린아이처럼 신나서 아마 50번도 더 가본 파리에 모든 관광지를 돌아다니면서 사진을 찍고 맛있는 음식을 먹고 돌아다니자고 했다. 정말 피곤했지만, 새벽 3시부터 마누라를 픽업하겠다고 차를 몰고 나온 그 정성에 거절하지 못했다. 결국 마레지구를 돌아다니고 밤에는 유람선을 탔지만, 우리 둘은 유람선에서 노곤노곤 잠이 들어 저녁의 에펠탑은 구경도 못한 채 숙소로 들어왔다.


벨기에도 마찬가지였다. 물론 4일 내내 시댁식구들과 지냈지만, 사람들은 모두 피곤해 보였고, 뭐랄까 원래도 까칠했던 사람들이 피곤 그리고 허무주의까지 더해졌다고 해야 하나. 사람들과 부대끼는 것이 당연한 자카르타 그리고 서울에서의 광경과는 달리 벨기에에서는 풍경화같이 아름다운 녹지 그리고 그림 같은 나무와 양 떼를 보며 사람들은 단독으로 사이클을 한다. 모든 것이 작고, 다 자기 반경 속에서 안락함을 추구하는 사람들이 모인 곳. 벨기에에서 공부했을 때도 이런 소박함이 좋긴 했지만, 몇 달 지나고 나서는 너무 답답해서 빨리 한국으로 돌아갈 생각만 했다. 그때가 생각났다. 동네에서 그리 많지 않은 아시아계 가족 무리들이 뭔가 어색한 배경 속에 억지로 끼워 맞춘듯한 느낌이었다. 고령의 시부모님들은 원래 자기 고향인 인도네시아가 정말 그리운 모양인지, 무엇이든 인도네시아에서 가지온 선물이면 그것 먼저 애처로운 눈으로 바라보며 고마워하셨다.


유럽에 대한 한국인들의 낭만은 상수인 듯하다. 변하지 않는 그러한 값. 그리고 고풍적인 건물 그리고 부스럭 거리는 종이가방에 아침부터 줄 서서 바게트 빵을 사며 하루를 시작하는 그런 삶이 목가적이고 평화롭다고 그리고 낭만이라고 보는 시선들이 있다. 그럴 수 있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이 모든 것들을 영위하기 위해서는 지구 다른 편에서 뼈 빠지게 고생하는 인류가 존재하고, 모든 것에 가격이 없는 공동체 사회도 존재한다. 유럽인들의 현재 기본적인 생활을 영위하게 했던 그 모든 것들의 이면에는 피와 고통의 역사가 있다는 점을 절대 잊어서는 안 된다. 그리고, 그들의 음식 문화를 폄훼하는 것은 아니지만, 더 이상 나의 오장육부가 그들의 음식을 받아들이지 않는다. 유제품과 밀가루를 멀리한 시간이 오래되어서 그런지, 페이스트리, 빵, 온갖 디저트류를 좋아하긴 하지만, 그 기쁨은 혓바닥에서만 맴돌 뿐, 그 음식들이 위장과 소장을 거치면서 온몸에 염증반응을 일으킨다. 결국 오랫동안 관리했던 아토피가 다시 발생했고, 못난이 얼굴로 그렇게 자카르타에 귀국했다.


그리고, 사람들은 유럽사람들이 돈과 사치에 관심이 없다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는데, 모든 사회가 그렇듯 돈에 환장하는 사람이 있기 마련이다. 내 오랜 벗이 말하기를 '우리 부모님은 언니의 성공, 특히 그녀가 이룬 부의 축적을 동경하는 것 같아. 그게 참 보기가 싫어. 언니는 한 달에 한 번씩 자기 아이들 봐주려고 오는 엄마를 부려먹으면서 엄마가 지내는 손님방은 글쎄 지하실에 만든 거 있지.' 라며, 베를린에서 살고 있는 언니에 대해 씁쓸하게 표현했다. 유럽사람들이 전반적으로 돈에 대해서 '플렉스'하는 경향이 있는 것은 아니지만, 돈을 좋아하는 부류 그리고 그것을 뽐내는 부류들은 분명히 존재한다. 유럽이 낭만 그리고 철학만으로 이루어지는 사회는 결코 아니라는 점을 인지해야 한다.


내가 유럽을 보는 시각은 분명 그곳에 살고 있는 교민, 또는 부푼 꿈을 안고 다녀온 관광객들과는 사뭇 다를 수 있다. 아니 분명 다를 것이다. 다만, 유럽의 낭만 또한 일종의 고정관념이라는 점을 알아야 하고, 이 세상에는 각자의 방식으로 낭만과 멋이 존재한다는 점을 말하고 싶었다.


동남아, 동북아, 아프리카 그리고 북미만의 낭만과 감성이 존재하고, 우리는 그 여러 가지 낭만과 감성을 자기의 방식으로 혼합하여 색깔을 만들어 가는 그 과정 속에 있는 것이다. 문화에서 우열은 없다. 그리고, 우리의 서양화된 삶의 양식에서 단지 유럽이 발상지가 되는 그러한 것들이 많을 뿐이다.


유럽의 낭만, 나에게는 정말 옛날옛적 이야기, 아니, 원래도 허상에 불과했던 것인지도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