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평등은 결코 넘길 수 없는 그런 문제
2025년 8월 28일 저녁, 인도네시아 자카르타에서 시위를 벌이던 21세 청년 아판 꾸르니아완(Affan Kurniawan)이 무기를 싣고 돌진하는 경찰차에 치여, 그리고 눌려 사망하고 말았다. 그리고, 오늘, 8월 29일 오후 그가 몸담아 일했던 공유 오토바이 라이딩 회사, GoJek동료들이 그의 마지막 길을 배웅했다. 저마다의 방식으로 핍박과 불평등의 문제를 외치며, '지금보다 덜 피곤하게 살고 싶어요. '라는 그들의 외침이 가톳 수브로토(Gatot Subroto) 도로를 메웠다.
도대체 왜 이런 시위가 일어났으며, 과격 시위와 폭력적인 진압으로 무고한 21세의 청년이 사망하고 말았을까?
먼저, 시위의 원인을 생각하기 전에 인도네시아의 역사적인 한 면을 살펴볼 필요가 있다.
인도네시아는 올해 독립 80주년을 맞이했다. 사람들은 인도네시아가 네덜란드의 식민지라고 알고 있지만, 정말 정확한 팩폭은 Dutch East Indies 회사의 자산 정도였다. 인도네시아라는 '국가명'은 '공화국'의 길을 걷기로 결심하면서 생긴 새로운 이름이고, 그전에는 다양한 부족과 왕족들이 이 나라를 거느리고 있었다. 문제는 식민지 지배기간이 300년 이상 지속되다 보니 지배층과 피지배층 구조가 깊이 뿌리내렸고, 21세기 인도네시아에는 여전히 아주 작은 단위인 각 가정에서부터 이 구조가 사회전체를 지배한다.
인도네시아에는 흔히 말해 쁨반뚜(Pembantu)라는 가정부들과 소삐르(Sophir)라는 개인운전기사들이 있는데, 그중 가정부를 일컫는 bantu의 의미는 도와준다는 동사이고, 이 앞에 붙는 어미인 Pem은 쁘름뿌안(Perempuan)이라는 여성을 일컫는 말로, '도와주는 여자'라는 뜻이다. 즉 집안에서 허드렛일을 하는 여자들을 거느렸던 Dutch East Indies 시대의 생활이 지금까지 다양한 형태로 이어지고 있다.
간혹 여기서 지냈던 동료들이 귀국할 때 '인도네시아가 정말 편했다. 집안일 따로 안 해도 되고.'라고 하는 사람들이 있는데, 나는 이상하게 이 말이 고깝게 들렸다. 소위 '인건비'가 저렴해서 아주 적은 돈으로 귀찮은 일을 다 떠넘길 수 있어서 좋았다는 소리로 밖에 들리지 않았다. 물론, 인도네시아 전역에 나라 통계에 포함되지 않는 비정규적 노동자들(informal labours)이 상당히 많고, 그들의 일자리를 외국인들을 포함한 각 개인 가정에서 제공한다는 긍정적인 측면도 존재한다. 그러나, 나는 기본적으로 이 도와주는 사람들을 대하는 고용주들의 인식, '너'와 '나'는 다르다는 것을 매 순간 여과없이 드러난다는 현실을 외면할 수 없다. 나는 이곳에 10년 넘게 살고 있지만, 쁨반투는 없다.
이 문제들이 이번 시위의 기폭제가 되고 만 것이다.
한국에서는 동남아라는 지역을 한 덩어리로 뭉쳐서 휴양지, 따뜻한 곳, 한국보다 조금 더 경제 발전이 더디고, 부패가 심한 곳 이런 식으로 생각하는데, 이곳은 사실 문화적, 인종적, 언어적으로 매우 다양하고, 역사도 우리와 매우 달리 여러 종교와 문화에 개방적인 지역이다. 그리고 개별국의 특징과 역사가 상당히 다르기 때문에, 편리하게 '한 덩어리'로 생각하는 게 적절치는 않다.
이번 시위는 우리의 편견이지만, 실제 어느 정도 맞다고 할 수 있는 기득권층의 탐욕과 부패 때문이다. 자카르타 최저임금이 한국 돈으로 월 50만 원이 채 되지 않는데, 인도네시아 국회원들의 월급과 기타 수당을 모두 합치면 월 500백만 원 이상이라는 언론보도 이후, 그야말로 일반 노동자들의 분노가 감당할 수 없을 정도로 커졌다. 표면적으로 '불평등'을 겪고 있다는 것은 그들도 알고 있었지만, 이 정도로 격차가 심하고, 도대체 국회의원들은 저렇게 많은 월급을 받는데, 우리의 삶은 왜 여전히 고단하고 힘든 건지 의문에서 뿜어져 나온 분노로, 성난 시민들은 거리로, 그리고 경찰을 습격하며, 그들의 가치를 제대로 평가해 달라고 존엄성과 그에 맞는 대우를 요구하고 나선 것이다.
씁쓸한 현실은 21세 GoJek청년의 안타까움 사망도, 거리에 나온 수많은 시민들의 외침도, 그리고 이 모든 일을 감당해야 하는 정치인들과 경찰들도 결국 아무것도 해결하지 못한 채 원래의 일상으로 돌아갈 수밖에 없다는 굴레를 인정해야 한다는 점이다. 기득권들의 인식개선과 정말 나라를 발전시키겠다는 일념 없이 그리고 일반 시민들의 노력 없이, 지금 폭력사태로 얼룩진 이 모든 일들은 인도네시아가 가진 고질적인 '불평등'의 폐해에 대한 분노로 그칠 뿐, 이것을 어떻게 해결할지에 대해서는 아무도 그 방향을 제시하고 용기 내어 목소리를 낼만한 리더가 없다.
하지만, 이번 시위로 내가 하나 느낀 것은 더 이상 국민들이 '불평등'에 눈감고 넘어가진 않겠구나. 이 점이다. 불평등이 계속되면 사람들은 변화시킬 수 없는 현실에 낙담하며 받아들이면서도, 불평등의 정도가 심해지면 그때부터는 이판사판으로 기득권에 문제를 제기한다. 기득권은 그것을 기존 질서에 대한 도전이라고 생각할 것이고, 피지배층들은 정의구현이라고 생각할 것이다.
지금 인도네시아는 불평등의 몸살에서 크나큰 열병을 앓고 있다. 이 사회가 진정 특유의 낙천적인 방식으로 이 난관을 극복하기 위해서는 대화를 해야 하며, 특히 기득권들의 인식개선과 변화를 맞이할 준비가 되어있어야 한다.
우리나라도 마찬가지다. 이미 고착하된 구조에서 자꾸 밀리고 밟히기만 하면, 사람은 낙오하다가도 결국 버럭 하게 되어있다. 지렁이도 밟으면 꿈틀 한다는 속담이 괜히 나온 말이 아니다.
내가 말하는 평등은 부의 분배나 권한에 대한 동등함이 아니다. 인간 대 인간으로 '존중'하는 그 마음가짐. 함부로 사람을 평가하지 않는 그 자세. 이러한 인식개선을 토대로 삼아햐만, 불평등은 아니더라도 불만은 해소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인도네시아의 상황이 나아지길 바란다. 더 이상 공권력의 폭력적인 진압으로 무고한 희생이 발생되지 않길 바란다. 이번 일을 계기로, 이 사회가 조금 더 불만이 없는 그런 사회로 나아가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