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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나조 Feb 23. 2023

낭만에 대하여

그저 파스텔톤이고 싶다

2023년, 올해가 들어서면서부터 유독 귓가에 맴도는 노래가 있다. 그래서일까. 요즘은 이 노래를 거의 매일 듣고 있다.


밤늦은 항구에서 그야말로 연락선 선창가에서
돌아올 사람은 없을지라도 슬픈 뱃고동 소릴 들어보렴

첫사랑 그 소녀는 어디에서 나처럼 늙어갈까
가버린 세월이 서글퍼지는 슬픈 뱃고동 소릴 들어보렴

이제 와 새삼 이 나이에 청춘의 미련이야 있겠냐만은
왠지 한 곳이 비어있는 내 가슴에 다시 못 올 것에 대하여

낭만에 대하여


어느덧 마흔을 맞이한 1984년생인 나는 어릴 적 나의 윗세대를 동경했다. 정확히는 그들의 문화와 분위기가 부러웠다. 물론 좋은 것만 있진 않았겠지만 겪어본 적 없어 무엇이라 형언할 수 없는 그들의 청춘, 음악, 사랑, 열정, 패기가 부러웠다. 가져보지 못하고 겪지 못했기에 더 그랬을지도 모를 일이다.


그럼에도 한번 생각해 보면 '아날로그와 디지털'에서 힌트를 찾을 수 있겠다. 내가 동경하는 80~90년대를 흔히 '아날로그 시대'라고 부르기도 하니 말이다. 당시에도 기술과 기계는 있었다. 스마트폰 대신 편지가 있었고, 스마트폰 대신 전화기가 있었고, 스마트폰 대신 삐삐가 있었다. 다만 차이가 있다면 느리고 느렸다. 


언제 도착할지 모르는 그의 소식을 기다리며 긴 밤을 지새우기도 하고, 그를 만나기로 한 날 무슨 옷을 입고 나올지 어떤 모습일지 만나기 전까진 알 길 없어 설레고, 그의 목소리를 듣기 위해 공중전화를 찾아 헤매는 노력에 애틋함이 더해졌을 뿐이다.


그렇게 사랑하고 결혼했을 아버지와 지난 어느 날엔가 '결혼'에 대해 이야기를 나눌 때였다. 아버지는 요즘 청년들의 상황과 본인의 그때를 회상하며 이렇게 말씀하셨다. "내 또래의 남들이 어떻게 사는지 모르니 우리(아내와 나)대로 시작할 수 있었던 거 같다." 몰랐기에 용감했고, 예측할 수 없어 열정적일 수 있지 않았을까 생각했다.


기술은 발전했다. 삐삐는 사라졌고, 전화기는 인테리어가 되었다. 디지털로의 변화는 돌이킬 수도 멈출 수도 없다고 당연히 생각한다. 덕분에 생활은 한층 편리해졌고 정보는 손쉽고 빠르게 얻을 수 있게 되었다. 그런데 빨라도 너무 빠르다.


기술의 속도만 빨라지는 게 아니라 우리들도 덩달아 조급해지는 것 같다. 빨리 성공해야 하고, 빨리 부자가 되어야 하고, 빨리 은퇴해야 한다 말하면서 말이다. (그러다 빨리 가는 건 아닌가 싶은 건 나만 그런가) 나의 속도는 그와 다르고 혹은 아직은 그 속도가 버거워 쓰러질지 모르는데도 무작정 따른다.


그러는 사이 감성은 사라지고 그 자리엔 갬성이 똬리를 틀었다. 화려한 겉모습에 매료되어 그의 내면이 어떤지 내가 무얼 하는지도 모른 채 그저 따라간다. 남들이 벌기 전에 내가 빨리 벌어야 하고 남들보다 빨리 성공하라는 공포 마케팅에 도덕성은 결여된 채 무분별한 복제가 난무하고 창작의 인내는 매몰된다.


'갬성'으로 대표되는 그 SNS를 비롯해 요즘 가장 많이 들리는 노래의 가수는 단연코 뉴진스다. 데뷔한 지 1년도 채 안 된 이 그룹이 인기 있는 이유는 뭘까. 나도 짐작은 하고 있지만 찾아보니 트렌드를 뒤집고 90년대의 향수를 자극하는 편안한 음악이라는 평론가들의 말을 들을 수 있었다. 어느 세대에게는 반가움이고, 어느 세대에게는 신선함이다.


아이러니하다.

음악을 비롯해 문화와 기술은 흐른 세월만큼의 데이터가 쌓일수록 옛것을 익히고 그것을 미루어 새로운 것을 만들어내는데, 그것들을 만들고 향유하는 인간은 왜 성숙해지지 못하는 걸까.


그 어느 때보다 '나다움'이라는 개성이 대두된 사회가 되었지만, '갬성'과 '파이어'란 이름 아래 '나' 다울 수 있는 여유와 시간을 허락하지 않은 채 몰개성 해졌으니 말이다. 여유가 없으니 이해도 없고 원색적이다. 다른 게 아니라 틀렸고 잘못되었다 말한다. 그래서 나는 더욱더 파스텔톤이고 싶다. 원색으로 물들이려 해도 그저 파스텔톤 낭만이고 싶다.


이제 와 새삼 80~90년대에 미련이야 있겠냐만은 왠지 한 곳이 비어있는 내 가슴에 낭만에 대하여 생각해 보았다.


낭만[명] : 1. 현실에 매이지 않고 감상적이고 이상적으로 사물을 대하는 태도나 심리. 또는 그런 분위기
              2. 감미롭고 감상적인 분위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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