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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안나킴 Jan 25. 2022

2010년 뉴욕, 2012년 LA, 2020s 시카고

안나킴의 미국 도시 삼부작 프로젝트


뉴욕과 LA의 도시건축 역사여행책을 쓸 저 2008~2012년, 나는 시카고까지의 미국 3부작까지 써내겠다는 계획을 했었다.  

LA를 쓰면서 힘이 많이 달렸다. 은회색의 미국 할머니들 사이에 끼어 로컬 투어를 전전하다 집에 와 혼자 책 읽고 글 쓰고 벽 보고 사는 삶.

당시 내가 글 쓰며 살던 곳은 LA 다운타운 한복판의 거대한 로우 인컴 하우징이었다. 컴컴하고 좁은 로비에 소방차와 경찰차가 시끄럽게 오고 독거노인이 죽어 나가는 걸 세 번이나 봤다. 벽만 보며 살다가 나도 저렇게   것 같았다.


부동산 개발 석사라는 세속적 전공 탓인가, 난 인세로 빌딩 세울 거예요라고 첨엔 호연지기를 부렸다. 책 두권 내고 난 현실은 영 아니었다. 친구들이 나 뭐 먹고사나 냉장고 안을 매우 걱정해 주는 현실.

전업 작가로 살기엔 내 글 그릇이 찰방찰방 너무 얕기도 했다. 전에 내가 전에 썼던 문장을 계속 반복하고 있음에 어느 순간 소스라쳐, 더 이상 나아갈 수가 없었다.


한국으로 돌아와 결혼을 했고, 서울과 지방을 ktx로 오가며 직장과 육아생활을 했다. 젖먹이며 보던 TV 밑 책장의 시카고 관련 서적들엔 먼지가 수북이 쌓였고, 뿌옇게 많이 잊었다.

그러다 2019년 말, 대학교에 있는 남편에게 일 년의 시간이 생겼다. 남편은 한국에서 안정적으로 안식년 일 년을 있겠다고 말했다. 바라보는 나는 숨이 탁 막혔다. 지금도 주말이면 꼼짝 않고 티브이 앞에 모로 누운 곰 화석이 되는데, 1년을 저렇게 있는다고 생각하니 어휴 이건 안되지 라는. 마음에 급한 벼락이 쳤다.


소파에 누워 있던 곰 화석씨에게 이야기했다. 

여보 우리 가족 일 년 동안 시카고에서 살아야겠어. 당신은 건축을 가르치니 건축의 도시 시카고 만한 데가 없고, 유치원 다니는 우리 애가 미국서 학교 일 년 다니면 초등학교 때 영어학원 안 다녀도 되잖아.

내 회사일은 이제 나 없이도 굴러갈 수 있는 안정적인 궤도에 들었으니, 일 년 정도 온라인으로 일할 수 있을 거야라고. 그리고 나는 지금껏 미루어 뒀던 시카고 책을 쓰겠어라고.

남편은 얼떨떨한 표정으로 말했다. 지금이 12월인데? 난 어떻게 하는지 아무것도 몰라.

턱관절에 힘을 주고 차분히 난 대답했다. 내가 다 준비할 테니 당신은 몸만 따라와라고.


흠. 당장 시카고에 가야겠는데, 시카고에 아는 사람 하나 없고, 남편도 마찬가지였다.

보통의 안식년인 사람들은 이미 출국하고 있는 12월, 나는 강남역의 유학원 간판이 가득한 한 빌딩을 찾아갔다.  

대학에서 주는 안식년에 주로 가는 해외 방문연구원은 보통 해외 대학에 있는 지인들을 통해서 반년에서 일 년 전에 각종 허가와 서류작업이 끝나야 한다. 그런 밑 작업이 전혀 없던 12월 그 시점에서 두세 달 안에 출국하기는 상담 결과 두 가지 길이 있더라.


하나, 방문연구원 비자 사기. 전문직이나 연구직에 십 년 이상 있었던 사람은 미국의 일부 대학에 이삼천 만원의 기부금을 내고 일이년짜리 방문연구원증을 사는 방법이 있었다. 한국인들이 선호하는 뉴욕과 LA 지역에는 이 구조가 이미 잘 세팅이 되어 있더라.( 궁금하면 네이버에 미국 유학 방문연구원 검색해봐라. 난 이 관련 질문 안 받는다.) 근데 내가 필요한 시카고 지역이 없었다.

다른 방법은 시카고에 있는 어학원에 풀타임 학생으로 등록해 다니는 것. 이쪽이 전자보다 비용이 천만원 정도 저렴하기도 했다. 남편에게 그간 십 년도 넘게 학생을 가르치는 신분이었으니, 역지사지의 마음으로 학생이 되어 리프레쉬 해봐 라고 말했다.


남편은 동공이 커져 이야기 했다. 내가 아는 사람들은 외국에 교환교수로 나가는데 나는 이 나이에 어학연수를 하라고? 말은 우물쭈물 그렇게 했지만, 결국 하라는 대로 충실히 잘 따라와 줬다. 

우리는 사실 신혼여행도 시카고로 다녀온 아이러브 시카고족이었으니, 다른 대안은 없었다. 

송곳 찍기식 스피드 진행이었다. 


남편을 시카고의 어학원에 등록시키고, 한국의 미 대사관에 F1 비자 면접을 갔다. 학교에서 학생을 가르치는데 외국인 학생들이(... 사실은 다 중국인) 너무 많아져서 (만국 공통어인) 영어로 강의를 해야 돼서요라고 남편은 영사 인터뷰를 했다. 복귀할 시점이 정해진 사람인지라 별문제 없이 비자가 나왔다.


이제는 내 차례. 사실 그 나머지 모든 것 세팅하기. 일 번은 집 구하기였다.

싱글일 때 나는 뉴욕과 LA의 각종 우범지역에서 혼자 슈트케이스 끌고 수없이 이사 다니며 살았다. 어린아이를 포함한 가족을 이루고서는 우선 위험하지 않은 곳에서 안정적으로 거주할 곳을 찾아야 했다.

 

신혼여행 때 팔 일간 둘러본 시카고 지역 중에서 가장 느낌이 따뜻하고 걷기 좋은 동네를 떠올렸다. 시카고 경계선에 붙은, 오크파크라는 작고 오래된 소도시였다. 시카고 지하철이 이곳까지 다니는, 서울로 치면 과천 정도의 입지. 다른 점이라면 신도시가 아니고 서촌 급의 매우 오래된 소도시였다.  미국 건축의 아버지라 불리는 프랭크 로이드 라이트의 백 년 전 작품이 많은 곳으로도 유명하고, 대문호 헤밍웨이가 태어나 자란 곳이기도 했다. 그곳의 월세 매물을 인터넷을 통해 골랐다.


다음 단계. 나 대신 그 집에 가 인스펙션을 하고 집 계약 및 초기 정착 문제들을 해결해줄 현지 코디네이터가 필요했다. 25년 경력의 강남 유학원 사장님은, 미국 유학은 다들 뉴욕과 LA를 선호하는지라 가족을 시카고에 보내는 건 저도 처음이에요 하셨다. 시카고 현지 코디네이터는 우리 가족 때문에 처음 구하고 연결해 본다며. 그렇게 좋은 분을 소개받았다.


그렇게 일사천리로 진행, 2020년 3월부터 2021년 3월까지, 시카고에 잘 다녀왔다.

음... 잘..... 


시카고 오헤어 공항 인근 호텔에서 도착 저녁 찍은 컷


성실한 남편은 가끔 어학원에서 새파란 14세 남미 소녀에게 영어 못한다 무시를 당했다며 이불킥을 하고. 

그 짜증을 아이구 내 늙은 아들~(이렇게 인지하는게 내 정신건강에 좋다고 결혼생활의 선배 누군가가 그래서 따라해보고 있슴) 하며 다 받아냈다.   

제일 큰 걱정은 한국의 유치원을 떠나기 싫었던 딸내미였다. 근 6개월을 놀이터 붙박이가 되어 친구 생기고 말문 트일때까지 기다렸다. 어느 순간 엄마 여기 참 재미있네 라고 이야기해 주었다. 

고맙구나 딸아. 이 모든것의 플래너 나를 토닥토닥하며 남편과 시카고 로컬 투어를 따라다니기 시작했다. 


(뭐가 잘 안 될 땐 모든 게 다 나 때문이라는 볼멘 부녀 때문에 씩씩거리며 밤에 문 닫은 카페 야외 좌석에서 화를 삭이며 앉아있곤 했다. 이하 생략... 생략.... 생략...)


펜데믹 시작에 한국에 들어와 지금껏 잘 웅크리고 계속 ktx 장거리 통근 직장일, 육아일 하고 있었다.


그동안 남편은 시카고 오크파크의 정말 그 동네 사람들만 아는 로컬 건축가에 대한 논문을 써냈고. 

아이가 처음에 적응을 못해 울며불며(친구 사귀고 나선 한국 안 가도 된다며 매우 잘 지냈다만) 배운 영어를 정말 빛의 속도로 홀라당 다 까먹고-_-;;

나는 애 학교 적응하자마자 시카고 건축 재단의 수많은 로컬 투어 따라다니며 취재한 것들을 글로 다 써 내려가지 못하고, 직장일 육아일에 머릿속 기억은 자꾸 흐려지고 있었다.


그러다 코로나로 순간 사라지는 주변인이 있는 시대를 사는 우리다. 얼마 전 내가 만일 갑자기 어떻게 되면 후회하는 게 뭘까 생각했다. 요 시카고를 마무리 짓지 못한 게 일 번으로 떠오르더라.  


그렇게 2022년 새해의 버킷리스트 중 하나가 이 시카고 글 마무리 하기다.


전 책들엔 건물 사진 귀퉁이나 가운데 접히는 데에 조그맣게 조카들 뒷모습 사진을 숨겨 넣어주곤 했다.

이젠 딸내미 사진이 조그맣게 몰래 들어간 책 한권을 만들고 싶어서. 


그리고 이 한 챕터를 후회 없이 덮어야, 내 삶의 다른 챕터 하나를 열 수 있어서다.


어쩌다 보니 논문의 리퍼런스로도 쓰이는 고급자 경향의 내 뉴욕 여행서는 삼 쇄가 다 소진되었으나, 출간후 십여 년이 지나고 개정판을 못 내 시중에서 중고로만 구할 수 있는 상태다.

훨씬 쉽게 쓴 LA 책은 출간 십 년째에도 아직 초판이 소진 안 되었고. (뉴욕에 갈 땐 미리 책을 사서 공부해 가지만, LA 갈 땐 딱히 책을 사서 공부해 가진 않는다 라는 나의 작은 결론이...)

시카고는 각각 풀타임 이년으로 지식적 노동을 퍼부은 지난 책들만큼 파내려 갈 수가 없다.

... 읽어주지도 팔리지도 않을 거잖아.


그리고 나도 그때만큼 시간이 없다.(글 쓰고 하루 네시 간만 자며 군만두 숫자 세며 구워 먹던 싱글 시절 만세, 코로나 시대의 우리 애는 왜 학교를 안 가냐. 나도 내 리얼 밥벌이를 해야 되고)

여기다 시카고에 대해 꼭 이야기하고 싶은 것과 가족을 이끌고 간 내 관찰기 서럽게 여기다 섞어 쓰고 마무리해야지.

 

그간 출판 환경도 많이 바뀌어서. 일단 여기에 온라인으로 정리하고 묶어서 나도 보고. 애가 크면 보겠지. 엄마의 몇개의 직업중에 작가 하나만 자랑스레 기억하는 딸아이라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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