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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안나킴 Jan 28. 2022

미국 마천루 건축의 아버지 르 배론 제니

시카고 그레이스랜드 묘지공원, 건축가들의 무덤

미국 대도시의 오래된 묘지공원에 가면 볼거리가 참 다양하다.

우리식의 잔디 떼 무덤이 아닌 울창한 수목원 느낌이라 산책하기 좋다. 

가족 묘지를 민족이나 당시의 유행에 따라 그리스 신전이나 이집트 피라미드, 혹은 당대의 유명 예술가가 만든 거대 조각상으로 장식하는지라 눈요기도 쏠쏠하다. 또한 도심지의 오래된 무덤일수록 그 도시를 세우고 가꿔나간 위인들이 다 지척에 묻혀 있어서, 푸르른 녹음을 산책하며 역사 속의 이름을 만나는 재미가 있다.  


시카고 그레이스랜드 묘지공원은 1860년부터 매장을 시작해, 시카고를 세워 나간 거물 기업가와 정치인 그리고 건축가들이 많이 묻혀 있다. 묘지공원 조성 당시에 유명 건축가들이 참여해 설계와 조경을 담당하면서 자기 자리도 맡아 두어서다. 이들이 묻힌 이후로 계속 다른 레젼더리 시카고 건축가들이 따라 묻히는 곳이 되었다.  

시카고 그레이스랜드 묘지공원의 유명인 지도


이곳에는 1880년대 시카고 건축 학파의 르 배론 제니, 루이스 설리반, 존 루트, 대니얼 번햄부터 IBM 빌딩의 미스 반 데 로에, 그리고 현대의 존 행콕 타워와 시어스 타워를 설계한 SOM의 브루스 그래험과 파즐러 칸이 묻혀 있다.

이들보단 좀 덜 유명하지만 프랭크 로이드 라이트와 오랫동안 협업한 여성 건축가, 시카고 대학 도서관을 설계한 건축가, 심지어 오클라호마 주에서 주로 활동한 건축가 등등이 이 수목원을 겸한 널따란 묘지공원에 여기저기 묻혀있다.  


더 재미있는 것은 각 건축가의 독특한 스타일로 디자인되어 있는 그들의 묘비 다.

건축가들이 생전에 자신의 묘비를 디자인해놓고 죽진 않아서, 묘비 디자인은 온전히 후대의 몫이다.

건축가의 가장 큰 특징을 잡아 디자인하거나, 설계 작품집에서 디테일을 그대로 가져다 쓰기도 했다. 건축가가 지은 건축물이 헐리자 제자가 그 잔해 중 일부를 가져다 묘비로 만든 것도 있다.


 bruce goff라는 건축가가 설계한 집이 헐리자 잔해의 유리를 올려놓은 것, 스승을 위한 제자의 디자인



시카고 건축을 설명하기엔 많은 방법들이 있다. 나는 이 그레이스랜드 묘지공원의 건축가 묘비 스타일과 그들이 시카고 내에 남긴 작품을 매칭해 설명해 보기로 한다.



... 건축을 연대기나 사조로 남들 하듯이 설명하는 것보다 묘비 디자인으로 매치하는 건 좀 재미나잖아.  






건축가 르 배론 제니(1832~1907)는 미국 마천루의 아버지라고 한다. 

프랑스에서 건축과 엔지니어링을 배웠는데, 에펠타워를 설계한 에펠과 같이 학교를 다녔다고 하면 그 뒤의 행적이 이해가 쉽다.

에펠은 파리에 철골로 에펠타워를 설계하고, 르 배론 제니는 미국 시카고로 돌아와 철골을 쓴 세계 최초의 빌딩, 홈 인슈어런스 빌딩(1885~1931)을 설계했다.

 

또한 젊은 시기의 루이스 설리반, 존 루트, 대니얼 번햄을 자기 사무소에 고용해 수련시켜, 시카고 건축 학파라는 미국 초기의 고유한 건축 사조의 시작이 되었다.


르 배론 제니의 세계 최초의 철골을 사용한 마천루, 홈 인슈어런스 빌딩. 1891년 사진


르 배론 제니는 건축가이자 토목 엔지니어, 조경가로도 활동했다.

지금은 이 분야가 엄연히 선을 긋고 서로 넘나들기 힘든 전문성을 띄고 있다. 미국이란 나라가 막 탄생하고, 대도시가 막 그 틀을 만들기 시작한 시기인지라 능력이 있는 사람들에게 많은 기회가 주어졌던 듯하다.

르 배론 제니는 최초의 마천루 빌딩도 지었지만, 시카고의 훔볼트, 가필드, 더글라스 공원과 가로 구조도 계획했고, 지금 본인이 누워 있는 이 그레이스랜드 묘지공원의 조경도 담당했다.


그래서 르 배론 제니의 묘지석은 복합적이다.

마천루의 아버지답게 그가 처음 건축물에 도입한 큼직한 철골이 보이지만, 6개로 분절된 매스는 도시와 가로 구조로 보이기도 한다. 그 사이사이에 누워서 퍼지는 종류의 관목을 깊게 식재해 조경가로서의 효과를 더 했다.

오른쪽의 조그만 돌들은 서양에서 흔히 하는 평장의 평범한 묘비석


왼쪽이 르 배론 제니, 오른쪽은 먼저 가신 마눌님



원래 이분이 사망하던 1907년엔 화장해 이 공원에 재를 뿌렸단다. 

사망 100주기인 2007년에 이분의 다양한 업적을 기념해 이 디자인으로 묘비를 만들었다. 

그래서 백년이 지난 무덤의 묘비 치고 이렇게 풍화작용의 느낌 없이 검은 돌 날이 잘 서 있는 거였다. 

르 배론 제니의 최초의 마천루는 이미 헐려서 없지만, 묘비는 이렇게 영원하겠지. 

 


그레이스랜드 묘지공원 건축가들 이야기로 경장편 이상은 나올 듯하다.

오미크론이 창궐한 새에 이렇게라도 틈틈이 방콕 하여 생산력을 높이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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