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편 육아일기
"니니! 니니!"
나를 급하게 찾는 남편의 목소리를 따라 주방으로 나와보니
오븐 앞에 서있는 그의 얼굴이 상기되어 있습니다.
"고구마들이 오븐에서 땀을 흘리고 있어! 사우나하는 것 같아!"
요 며칠 군고구마에 빠진 남편이 오븐 속을 찬찬히 들여다보더니
고구마가 익으며 즙이 흘러나오는 장면이 재밌었나 봅니다.
나는 그것을 재미있어하는 그가 꽤나 재밌었습니다.
요즘 유행이 한참 지나가버린 '응답하라 1988'을 1화부터 챙겨봅니다.
'먹고 싶은 거 없어?' 물었을 때 뭐든 시큰둥하던 그가
군고구마, 비빔밥, 라면 등등 이것저것 먹고 싶다고 합니다.
내가 아팠던 날에는 일하는 중간에 전화해 안부를 물었습니다.
지난 몇 개월 동안 그는
그는 로봇 인간처럼 감정을 배제한 채
버티는 게 답인 사람인 마냥 회색 인간으로 지내왔습니다.
유일한 친구는 담배였고요.
예민하고 아슬아슬한 그의 감정선을 지켜내느라
나 또한 많이 힘들었던 게 사실입니다.
종종 다투기도 하고요.
이것저것 먹고 싶다고 이야기해오는 그의 말이
그렇게 반갑고 귀엽고 감사하게 느껴집니다.
드라마에 빠질 수 있어서 다행이라 생각됩니다.
회복이라는 단어보다
흘러간다라는 표현이 더 어울리는 것 같습니다.
아무 일 없었던 듯
우리는 그렇게 또 고구마의 사우나 장면을 보며
깔깔거리고 웃을 수 있었습니다.
고마운 일상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