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국에 봄
장마가 시작되기 바로 직전의 6월 중순 경
엄마가 돌아가셨던 그 날의 기억과 함께 몸으로 느꼈던 날씨 때문이었을까.
축축하고 끈적거리기 시작하는 그 기간을 나는 무척이나 싫어했었다.
막상 무더위가 시작되는 7월이 되면 그래도 6월이 나았나 싶다가
'아, 역시 나는 여름이랑 안 맞아. 얼른 겨울 되면 좋겠다.'를 반복하는 게
6, 7, 8월 여름을 맞이하는 나의 연례 코스 중 하나였다.
30년을 그렇게 살았던 나에게
지금의 6, 7, 8월은 따뜻한 봄을 기다리게 하는 매서운 겨울이다.
기껏해야 한국의 늦가을 정도 날씨인 이 곳의 겨울은
보일러 같은 난방시설이 없고 히터로 잠깐씩 몸을 데우는 수준이라
차가운 공기의 실내보다는 뜨거운 햇살의 야외가 훨씬 따뜻하다.
무더운 한 여름 여기저기 관광객으로 붐비는 이 곳
요즘 이 시기는 도시 어디를 가도 한적하고 한산하다.
더운 걸 선호하지 않는 나지만 그래도 여름이 어울리는 이 곳이다.
요 몇 주 해가 점점 길어져 겨울이 끝나가나 싶더니
오늘 반가운 봄 비가 내렸다.
겨울 내 물을 아쉬워하던 다육들도
아침내 촉촉이 내리는 비를 흠뻑 맞아 탱탱하게 살이 올랐다.
작년에 처음 시도한 깻잎 기르기는 실패라 생각했는데
언제 녀석들이 씨를 주변에 흩뿌려 놓았는지
다시 촘촘히 올라오기 시작했다.
녀석들도 비가 꽤나 반가웠지 싶다.
나에게 이번 겨울은 꽤나 길었다.
여름이 시작되던 작년 12월
아버님을 보내드리러 가서 만났던 한국의 한 겨울을
이 곳까지 데리고 와 사는 기분이었다.
큰 일을 겪은 후 이민생활에 대한 회의감이 찾아왔고
서로 마음을 보듬어 줄 시간의 여유도 없이
남편이 다른 도시로 출장을 가게 되어 주말부부로 지내게 되었다.
혼자만의 시간이 중요한 그에게 숙소 생활은 꽤나 큰 스트레스였다.
그는 주말에라도 내려와 푹 쉬고 싶어 했고
나는 주말에만 내려오는 그와 나가 놀고 싶었다.
머리로는 이해하지만 마음 한편에 서운함이 쌓일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다.
혼자 지내다보니 대강 챙겨먹어서일까.
나의 건강도 급작스레 너무 악화되어
왼쪽 팔, 다리가 저리고 어지러움이 항상 따라다녔다.
간수치도 올라 피검사를 몇 번 해야했었고
무기력하고 우울한 시간이었다.
그래도 결국엔 그 시간들이 다 지나갔다.
8개월 간의 힘겨웠던 주말 부부도 이번 달 초에 마무리되었다.
오랜만에 아침에 카페에 나가 커피 한 잔을 마셨다.
가족들과 안부를 나누었고 감사의 마음을 느꼈다.
봄이 되면 모든 게 더 차오르고 따뜻해질 거라는 기대를 해본다.
설레는 이 마음을 글로 다 적어낼 수 없지만
그래도 그 언제보다 반가운 봄 비이다.
9월이 기다려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