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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나의 오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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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Anna Lee Jul 26. 2019

라이온 킹을 보다가

그립습니다. 그때 그 모든 것.

혼자 이번에 개봉한 라이온 킹을 보러 영화관에 갔습니다.


영화를 기다리며 광고를 보면서

라이온 킹에 관한 작은 기억들이 떠올랐습니다.


나의 첫 해외여행

뉴욕에서 오빠와 점심 마티네 공연으로 함께 봤던

뮤지컬 라이온 킹

시끌벅적했던 뮤지컬 극장 안과

화려했던 브로드웨이의 간판 그리고 거리의 사람들


라이온 킹에 관한 또 다른 기억이 떠올랐습니다.


안방 전축 안에 있던 소니 비디오 플레이어

대여점에서 빌려온 라이온 킹 비디오를 틀어놓고

우리가 살던 연립빌라 동네 친구들이 모여있으면

먹으면서 보라며 방으로 가져오던 엄마표 맵지 않던 떡볶이


영화는 시작되었는데

소니 비디오 플레이어의 기억은 또 다른 기억을 소환합니다.


엄마, 아빠 글라스 잔의 맥주

나와 언니 글라스 잔의 요구르트

건배를 외치고 캬아~를 외치며 보았던 그 영화

열 번도 넘게 봤을 '사운드 오브 뮤직'은

어렸을 적 엄마, 아빠와 가장 자주 본 영화입니다.


영화를 함께 본 기억의 꼬리물기는 멈추지 않았습니다.

벌써 25년도 더 된 기억입니다.


초등학생 시절 어느 겨울

따뜻한 옷으로 나를 꽁꽁 싸매는 엄마에게 어디 가는 거냐고 물으니

"아빠가 우리 만나러 회사 끝나고 종로로 오실 거야."라고 하셨습니다.

지금은 없어진 종로 3가 단성사에서

우리 가족은 '이집트 왕자'라는 영화를 보기로 했다고 했습니다.


눈이 정말 펑펑 쏟아지던 그 날

휴대폰도 없던 그 시절

아빠가 약속시간에 오시지 않아 애가 타던 엄마의 모습이 떠오릅니다.

지하철역에서 허겁지겁 계단을 뛰어올라온 아빠는

우리가 감기에 걸리지는 않았는지 염려하며

함박눈으로 교통체증이 심해져

늦게나마 지하철을 타고 오셨다고 했습니다.

이 날 우리 식구는 영화를 보고 돈가스를 사 먹었습니다.


또 다른 중학생 시절의 겨울날이 떠오릅니다.


언니가 읽던 아사다 지로의 '철도원'이라는 소설을

우리 가족 모두 돌려서 읽었었는데

그 소설이 영화화되어 개봉되었다고 했습니다.

우리는 이 날도 종로에 심야영화를 보러 갔습니다.

추운 날이었고 영화는 잔잔했습니다.


이 날의 기억이 오늘까지 남아 주어 감사했습니다.


영화는 보지 않고 이런 생각들을 쫓다 보니

나도 모르게 눈물이 펑펑 쏟아졌습니다.


어느 순간부터 산다는 이유로 서로 멀어졌지만

나는 어린 시절 분명 풍요로운 가정에서 성장했음에 틀림없습니다.

경제적으로 풍족했다기보다

이렇게 작은 기억 하나하나를 만들 수 있는

마음이 풍요로운 가정 말입니다.

너무나도 감사했습니다.


엄마, 아빠 손을 잡고 종로에 있는 극장을 다녀왔던

그 날의 냄새, 거리 풍경과 따뜻함이 아주 깊은 곳 한편에 남아있습니다.


어린 시절이 그리운 것인지

부모님의 사랑이 그리운 것인지

그저 지나간 모든 게 그리운 것인지


나의 소소한 추억들이 산재되어있는

광화문, 시청, 정동길, 종각, 종로 3가의 겨울은

잘 지내고 있는 것인지


마음 한편이 아려오며 눈물이 멈추질 않았습니다.


정말로 그립습니다.

그때 그 모든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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