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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Anna Jang Oct 14. 2019

도라지

텃밭 일기



꽃대가 가늘고 길쭉하게 뻗은 꽃들을 좋아한다. 그런 줄을 이제야 알았다.

아무리 그런다 해도 꽂꽂하게 서있다거나 존재감이 너무 두드러지면 또 맛이 나지 않는다.

대체로 쑤욱 고개를 내밀고는 있으나 송이가 크지 않고 저혼자 돋보이는 주인공격의 색도 아니며

바람이 불면 부는대로 나부끼고 그 자리에 피었다가 그런 줄도 모르게 지고 마는 꽃들이다.

라고 써놓고 다시 한번 생각해보니 꼭 그렇지도 않다.

백합류나 나리꽃 종류도 좋고, 비현실적인 컬러감으로 매혹하는 양귀비도 좋고,

그보다도 키가 훌쩍 큰 접시꽃도 좋다.

도라지 꽃도 그중 하나다. 보통 흰색이나 보라색으로 피는데

풍등 모양으로 꽃봉오리가 조그맣게 부풀어올랐다가 다섯 잎으로 터지며 꽃잎 색을 드러낸다.

재배지에 가면 이 또한 군락이겠으나 우리집 옥상에서는 두서너 줄기가 자라고 있다.

엄마가 씨를 뿌린 적은 없을 것이다. 아마도 도라지를 손질하고 남은 것들을 버린 자리에서 올라왔을 것이다.

여름 내 한두송이 피고지고를 반복하다가 찬바람 드는 녘에 다시 한번 꽃을 피웠다.


"이쁘지야"


사진을 찍고 있는 나를 보고 엄마가 거든다. 아무렴. 이쁘다.

엄마가 예뻐해서 더 예쁜 것 같기도 하고..

도라지를 위한 꽃이라기 보다는 그저 한떨기 들꽃처럼

일상적이기도 애잔하기도한 분위기가 마음에 든다.

엄마도 같은 마음일 것이라고 짐작해본다.


+


회사가 부쩍 어수선해져서 마음이 무겁다.

경쟁하지 않고 아름다운 것들을 매만지며 평화롭게 살고싶다는 생각뿐이다.

조직에 있는 이상은 힘들다.

이럴 때는 후배들에게 어떤 말을 어떻게 해야 좋을지 모르겠다.

지금은 지고 없는 도라지꽃이 눈물나게 예뻐서

소란스러운 마음 가에 꺼내본다.

7월과 9월의 볕은 이렇게나 다르다. 새삼스럽게도.




2019년 7월 7일의 도라지꽃. 도라지꽃을 벌룬 플라워라고도 한다는데 꽃봉오리가 과연 그렇다.


보라색에 대해서도 무언가 많은 감정이 밀려온다. 탓밭 작물 중에 좋아하는 것이 가지인데 그 보라색과 같은 보라색으로는 도저히 분류할 수가 없다.




갑자기 누군가는 도라지라는 담배를 떠올릴 수도 있겠다 싶다. 도라지 장미 솔, 그런 이름들의 담배가 있었던 시절이 있었다.




부풀었던 꽃봉오리가 정확하게 다섯잎으로 터지는데 그 정확한 구도또한 마음에 든다. 여린듯 한 것이 이렇게 정교하고 수학적이라니, 아름답다.





2019년 9월 22일의 도라지. 찬바람이 든 후에도 한참 동안 제 할일들을 한다. 사실 뿌리에 도라지가 얼마나 굵게 들었을지는 별로 궁금하지 않다.



엊그제 다시 올라가본 옥상에는 도라지꽃이 갑자기, 너무 많이 피어 있었다. 그런데 그것은 또 그리 어여뻐 보이지가 않으니 이것은 또 웬 심사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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