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사람을 아는 데 몇 년이 걸렸다. 그런데도 그녀를 완전히 다 알게 됐다고는 아직도 말하지 못하겠다.
나로선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미스터리 같은 일들이 그녀와 나 사이에 수십 번 아니 수백 번도 더 일어났는데, 나는 그저 속수무책이었다. 그건 그녀와 내가 서로에 대해 갖고 있는 포지션 때문이었고, 그녀와 나 사이에 있는 다른 인간관계들 때문이기도 했다.
그러나 어느 순간, 그녀로 인해 감당해야 할 무게에 나 자신이 짓눌려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자 그 짓눌림 때문에 생겨났던 영혼의 고통이 갑자기 모든 감각기관이 일제히 열리듯 생생하게 느껴졌고, 음소거 버튼이 눌려진 듯 조용하던 내면은 터져 나오는 비명으로 소란스러워졌다.
나는 그녀를 알아야겠다고 생각했다. 열 길 물 속보다 얕은 한 길 사람 속이 더 알기 어렵다는 말이 떠올랐다. 그녀가 나를 대하는 태도와 다른 사람들을 대하는 방식, 그녀의 허다한 말속에 반복되는 어휘들, 숨겨진 메시지들을 찾아내 보려 했다.
아픈 과정이었다. 알아가면 알아갈수록 점점 그녀보다 나 자신이 보이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그건 마치 아직 채 아물지 않은 상처의 딱지를 떼어내 다시 피가 흐르고 진물이 고이는 걸 확인하는 것과도 같았다. 그녀라는 사람의 배경과 역사와 됨됨이를 알아갈수록, 나는 나 자신이 미워졌다 ⎯ 대체 난 뭘 하고 있었을까. 왜 그렇게 무기력했을까. 누군가를 파악해 보리라 호기롭던 나는 서서히 무너져 갔다.
한 사람을 알아가는 건 한 세계를 알아가는 일이다. 어쩌면 이 세상을 다시 발견하는 일인지도 모른다. 한 사람을 알아가며 세상을 보는 눈이 달라지고, 나 자신을 바라보는 눈도 더 이상 흐리멍덩하지 않았다. 밝아진 두 눈은 내가 속했던 이전 세상을 더 이상 볼 수 없게 되었다. 무너졌던 나는 이제는 내 의지와 상관없이 움직이는 나의 의식을 느꼈다.
무너진 자리에서 몸을 일으켰다. 아기처럼 뒤집고 앉고 기다가 일어섰다. 그러고는 그 자리에 한참을 서있었다. 다시 넘어질까 두려워 한 발짝도 뗄 수가 없었던 것이다.
사람과 사람의 관계에 대해 더 깊이 이해하게 됐다. 누군가와 관계를 맺으면 우리 둘 사이의 공간은 좁아지기 시작한다. 관계에서 파생되는 감정과 생각들이 서로의 사이에 존재하는 밀실에 차곡차곡 들어찬다. 마침내 빼곡해진 그들은 가끔씩 치우거나 업데이트하지 않으면 부패해 냄새를 풍기기 시작한다. 사람과 사람 사이도 변해간다. 한결같은 사이란 변화를 받아들이고 새로운 길을 모색할 때 가능한 것이니, 아이러니다.
마침내 나는 두려움을 딛고 걷기 시작했다. 한 사람을 알고 나니 한 세상이 보였다. 그녀와 비슷한 행동 패턴을 가진 사람들이 나타나면 어떻게 대응해야 하는지도 알게 됐다. 물론 예외 없는 규칙은 없다. 누군가를 파악했다는 내 생각이 자만을 낳고 편견을 부를 수도 있다. 나의 지식과 인식은 무한하지도 전능하지도 않기 때문이다. 내가 가진 한계 안에서 내가 하고 싶은 생각을 할 뿐이다. 다만, 그녀를 알아가는 과정을 통해 나 자신을 찾게 됐고 자존감이 무엇인지 알게 됐으며 나 자신을 위로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가질 수 있었다.
그리고 나는 융통성에 대해 생각했다. 새로운 세계를 내 안에 받아들이는 유연함 말이다. 내 안에도 내 밖에도 늘 존재하는 다양함을 인정하지 않는다면 나 자신을 스스로 가두어 답답하게 만들지도 모르니까.
지금은 새로 알게 된 한 세계 덕분에 잠시 편안하다. 사람들은 말한다, 앞으로가 중요하다고. 나는 말하고 싶다, 앞 못지않게 뒤가 중요할 때도 있다고. 정리되지 않은 과거를 마음에 두고 살아가는 건, 부스스한 실타래를 뒤꽁무니에 매달고 앞으로 가고 있는 것과 같다고.
영혼의 소강상태, 어쩌면 그 잠시의 편안한 순간을 얻기 위해 살고 있는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