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문간방 박씨 Nov 23. 2022

엄마와 다시 한국으로

모든 쇼핑은 이집션 바자르에서 끝내자

드디어 오늘은 한국으로 돌아가는 날이다

눈앞에 보이는 아야 소피아와 블루모스크도 이제 끝이고, 잘생긴 호텔 벨보이들과도 작별이다. 난 손가락이 가늘고 긴 남자는 별로인데 우리 호텔에 있는 키 크고 마른 체형의 가늘고 긴 손가락을 가진 두 명의 벨보이는 전부 마음에 든다. 호텔에서 나갈 때마다 그 벨보이 얼굴을 보고 하루를 시작했으면 하는 설렘이 있었고, 하루 일과를 마치고 돌아올 때도 그 벨보이 얼굴과 'welcome back'이라고 말하는 목소리를 듣고 싶었다. 회사에서 칙칙하고 남을 비평하기만 좋아하며 목도 짧고 뚱뚱하기까지 한 남자들만 보다가 (내가 다니는 회사는 남초 현상이 심하다) 화사하고 슬림한 남자들을 보니까 그냥 좋더라.


오늘도 새벽 3시에 일어나서 회사 업무를 본 후 아침 식사를 하러 꼭대기층에 올라갔다.


아침 7시 30분인데도 아직 어두컴컴하다. 터키의 국민빵 시미트는 참 맛있다


오후 2시 50분 비행기였지만 엄마는 서둘러서 체크아웃하고 미리 나가자고 하셨다.

외국은 변수가 많기 때문에 엄마처럼 미리 준비하고 대응하는 것이 최고다.


우리는 호텔 앞에서 택시를 타는 대신 트램-공항버스를 이용해서 공항으로 향했다.

생각했던 것보다 짐도 없었다. 9년 전보다 터키 물가가 너무 많아 올라서 딱히 기념품을 사지도 않았다.

솔직히 내가 출장 다니면서 이것저것 사 가지고 오니까 엄마도 별로 색다른 점을 못 느끼시는 듯하다. 이집션 바자르에서 20만 원 정도 쇼핑한 것이 전부였다. 생각보다 가벼운 캐리어를 끌고 트램을 탄 후 4 정거장 지나서 한 정류장에서 내렸다. 그곳에서 우리는 공항버스를 타야 했다.


공항버스 이름은 havaist이다. 1인 요금은 6천 원 정도로 한국보다 싸다


그런데 엄마가 알아봤던 공항버스 출발 시간보다 25분이나 늦게 버스가 도착했다.

엄마는 예상과 다르게 버스가 늦자 초조해하시면서 들고 있던 종이를 구기기 시작했다. 이렇게 아무 생각 없이 서 있는 나와 엄마는 성격이 많이 다르다.


공항에 가는 사람들이 많아서 줄이 꽤 길었다. 자리가 꽉 차면 다음 버스를 타야 하니 최소 30분은 여유 있게 버스를 탈 수 있도록 하자.


공항버스를 타고 공항에 도착했다. 이번엔 이스탄불-아부다비-한국까지 전부 에티하드 타면 된다. 전부 대한항공으로 마일리지 적립했다


이스탄불 공항은 새로 지어서 굉장히 크고 깔끔하다.

다만 테러가 잘 일어나는 곳이라 공항에 들어가기 직전에 짐을 검사하는 번거로움이 있다. 엄마는 내 짐 중에서 특히 노트북이 분실될까 봐 걱정하셨다. 겉옷을 벗고 캐리어까지 짐 검사를 해야 해서 정말 힘들었다. 인천공항이 얼마나 안전하고 편리한 공항인지 해외에 있는 다른 공항에 나가보면 안다.


짐과 몸수색을 마친 후 에티하드 카운터에서 짐을 부쳤다. 그리고 입국하기 전 다시 내 노트북과 핸드캐리를 검사하고 나서야 면세 구역에 들어갈 수 있었다. 진짜 진이 다 빠지더라. (참고로 방글라데시도 똑같다)


새로 지은 이스탄불 면세점은 볼거리는 많지만 점수는 -500점을 주고 싶다.


첫째로 카트를 끌고 싶은데 돈을 내야 한다.

이런 곳은 처음 봤다. 인천공항에서는 널린 게 카트 아닌가. 참고로 방글라데시는 공항 안에 카트도 없다.


둘째로 면세 구역이라지만 너무 비싸다.

모든 쇼핑은 반드시 이집션 바자르에서 끝내자. 엄마는 면세 구역에 들어와서야 이집션 바자르에서 더 살 걸 하는 후회를 무지막지하게 하셨다. 넓은 면세 구역을 하나하나 둘러보시면서 이집션 바자르에서의 가격과 면세 가격을 비교하시면서 어쩔 줄 몰라하셨다. 이집션 바자르 31번 가게에서 시식한 카이막도 너무 달다고 안 사겠다고 해서 나만 선물용으로 500g 샀다. 그런데 이제 와서야 31번 가게 카이막이 맛있었다고 후회를 하시더라. 내 선물용을 엄마 드릴 테니 그냥 가지라고 하셨지만 엄마는 울상이었다. 이스탄불 면세점에서 대부분의 가격은 리라가 아니라 유로로 표기가 된다. 그래서 정말 어이없을 정도로 비싸다.


셋째로 공항 내에 스타벅스가 있지만 내가 모으는 컵은 안 판다.

9년 전에 스벅 컵을 사긴 했지만 스벅 신상 컵도 사고 싶었다. 이스탄불에서 스벅에 갈 시간이 없어서 공항에서 사려고 했는데 결국 못 사고 한국에 왔다.


크리스마스 분위기가 물씬 풍기는 이스탄불 면세점이다


이런 달달구리들이 이집션 바자르보다 5배 이상 비싼데 크기는 작다


양 옆의 트리만 이쁘네


엄마는 조금이라도 싼 게 있으면 이스탄불 떠나기 전에 사고 싶다고 하셨다.

그래서 나를 끌고 면세점 전 구역을 같이 돌아봤지만 공항에서 파는 가격은 전부 똑같다. 내 노트북이 13인치이고 아무리 가벼워도 백팩이 점점 어깨를 짓누르면서 힘이 들었다. 바로 하루 전날 카드를 엄마 손에 쥐어드리면서 31번 가게에서 사고 싶은 거 다 사라고 할 땐 망설이더니 지금 와서야 나를 괴롭히고 계셨다. 그래도 나는 참고 카트를 끌 생각을 하지 않았다. 왜냐면 이미 리라를 전부 달러로 바꿨기 때문이다. (이제 터키 올 일 없겠지. 게다가 외국 돈을 오래 보관하는 건 위험성이 있다. 의외로 화폐가 잘 바뀐다. 시간이 지나면 한국에서도 환전 안 해주니까 현금은 현지에서 전부 사용하자)


터키는 빵이 맛있다.

엄마는 내가 화장실에 다녀온 사이에 시미트 파는 곳을 발견하셨다. 몇 개 사고 싶냐고 물었더니 엄마는 손을 쫙 피셨다. 시미트 재고가 2개뿐이라 직원한테 물으니 빵을 지금 굽고 있고 새것이 나오려면 7분을 기다려야 한다고 했다. 그래서 빵 5개 살 테니 재고 말고 갓 나온 빵 5개로 담아 달라고 했다.


갓 나와서 정말 따끈따근하고 맛있었다. 내가 사진 찍기도 전에 엄마가 이미 뜯어 드셨다. 시미트 빵을 크림치즈에 발라서 먹으면 정말 맛있다


다시 아부다비로 돌아가는 비행기 안에 한국 사람들이 많이 보였다.

패키지로 오신 분들도 아부다비를 경유해서 한국으로 돌아가는 것 같았다.


식사는 고단백질인 닭가슴살이다. 나는 맛있게 먹었는데 엄마는 영 못 드셨다. 비행기를 타면 나는 꼭 진저에일을 마신다. 이럴 때 탄산음료 한 번씩 마셔본다


내 좌석에 스크린이 안 나와서 승무원한테 이야기했다.

스크린이 안 나오면 승무원이 내 자리와 연결된 스크린의 전원을 재부팅해주니 꼭 이야기하자. 모든 기계는 전원을  껐다 켜면 잘 작동한다


이스탄불을 지나 아부다비를 향해 가는 중이다. 돌아올 때는 1시간 이상 단축돼서 좋았다. 집에 빨리 가고 싶다


아부다비에 도착했다. 이번 경유 시간은 2시간뿐이라 좀 더 서둘러야 했다. 아부다비에서의 환승은 크게 무리되는 건 없다


이스탄불에서 티켓팅 했을 때 내 항공권에 적혀 있던 아부다비 공항 내 터미널과 게이트를 찾아 엄마와 느긋하게 걸어갔다.

게이트에 도착하니 한국 사람들이 많이 보여서 안심이 됐다. 한 가족은 요르단에 다녀왔는지 페트라 이야기를 하고 있었다. 그런데 화장실에 가겠다고 나간 엄마가 부리나케 되돌아오시면서 우리 터미널과 게이트가 바뀌었으니 빨리 나오라고 내 손목을 잡아끌었다.


외국에서는 터미널과 게이트가 바뀌는 일이 많다.

그래서 항상 화면을 잘 살펴서 나의 터미널과 게이트를 몇 번 확인하는 습관을 들여야 한다. 우리는 3 터미널이었는데 1 터미널로 변경이 돼 있었다. 이게 꽤나 먼 거리였다. 우리는 속보로 터미널 1로 향했고 마침내 우리 게이트 앞에 도착했다.


한국 돌아올 때 가장 반가운 글자 '인천'이다. 탑승 시간과 항공편이 분명히 맞다


엄마는 터미널 1로 이동하는 와중에도 나 혼자 출장 다닐 때 넋 놓고 있지 말고 항상 체크를 잘하라고 신신당부하셨다.


터미널 3에서 1로 질주한 탓인지 아부다비 공항이 정말 더웠다.

한국은 춥다고 해서 옷을 3개나 껴 입었는데 중간에 옷을 벗지도 못하니 복부에 땀띠가 날 정도였다.


우리는 많은 한국 사람들 틈 속에서 무사히 탑승했다.

아부다비 시간으로 밤 11시가 넘은 시간이지만 주는 밥은 다 먹는다. 나랑 엄마는 양고기를 골랐다.


풀풀 나는 밥이지만 맛있게 먹었다. 나는 양고기를 참 좋아한다. 이번에도 진저에일을 시켰다


탑승 후 6시간이 지나자 이제는 아침 먹으라고 깨웠다. 이번에는 양고기가 없어서 닭을 골랐다. 샐러드 정체는 뭔지 모르겠는데 정말 맛없더라


8시간 30분의 비행 끝에 드디어 인천에 도착했다.


중학교 때 장화 모양의 지도를 보면서 내가 이곳에 가게 될 거라고 생각한 적은 한 번도 없었다. 그런데 벌써 2번이나 다녀왔네


난생처음 에티하드를 타본 소감으로는 대한항공만큼 만족하는 바이다.

에티하드 화장실도 깨끗하고 밥도 맛있었다. 쓸데없긴 하지만 싸구려 파우치도 챙겨 줘서 집에 가져왔다.


올해 비행기는 이번 에티하드로 끝나는 줄 알았는데 이게 끝이 아니었다.

정말 끝날 때까지 끝난 게 아니다. 나에게는 아직도 처리해야 할 미션이 남아 있다.

매거진의 이전글 엄마와 떠난 튀르키예 4일 차 下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