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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문간방 박씨 Nov 22. 2022

엄마와 떠난 튀르키예 4일 차 下

만 보는 기본으로 걷습니다

대학생 때 이태원에 있는 모스크에 가본 적이 있다.

난생처음 바라본 모스크가 너무 신기해서 여기저기 사진을 찍고 지방에 있던 친구들이 서울에 오면 소개해 줬던 기억이 난다, 그 후로 무슬림에 대한 이미지가 안 좋아지면서 이태원에 가더라도 그 모스크에 다시 방문하는 일은 없었다.


그때는 몰랐다.

앞으로 내가 수많은 무슬림들하고 일을 하게 될 줄 상상도 못 했다. 해외 출장을 가면 새벽 4시 30분부터 알 수 없는 음색이 귓가에 울려 퍼지면서 나의 아침잠을 깨웠다. 아무리 좋은 5성급 호텔이어도 그 소리는 내 방을 가득 메웠다. 현지에 가서 회의를 하다가 직원들이 기도 시간이라고 중간에 자리를 뜨는 것도 이제는 그러려니 한다. 무슬림들이 금요일에 쉬고 토요일과 일요일에 업무 관련하여 메시지와 메일이 오는 것도 익숙해진 것은 오래다.


여행을 다니면서 모스크에 들어가도 나는 엄마만큼의 큰 감흥이 없다.

하지만, 이스탄불에 왔다면 슐레이마니에 모스크는 꼭 가봐야 한다. 이 모스크는 이스탄불과 골든혼을 한눈에 바라볼 수 있는 최고의 명당자리에 지어졌기 때문이다.


엄마랑 나는 슐레이마니에 모스크까지 걸어가기로 했다.

호텔이 구시가지 중심에 있었기 때문에 여유 있게 걸어서 갈 만한 거리였다. (그래도 1시간은 걸었다) 걷다 보니 2014년에 묵었던 호텔도 지나갔다.


엄마랑 9년 전에 묵었던 호텔이다. 그땐 신식 호텔이었는데 이제는 때가 좀 묻었다. 이 호텔을 다시 보게 될 줄 몰랐네


슐레이마니에 모스크는 9년 전에도 갔다고 하는데 나는 전혀 기억이 안 났다.

엄마의 기억에만 의존해서 골목을 걷다가 현지인들의 도움을 받아서 잘 도착했다. 슐레이마니에 모스크는 정말 유명하기 때문에 아무나 붙잡고 물어봐도 길을 잘 가르쳐 준다.


옛날 성벽 사이로 집이 지어진 게 이색적이다. 오래 걷다 보니 화장실이 몹시 급했는데 슐레이마니에 모스크 화장실은 무료로 이용할 수 있었다


나는 외국에 나가서 가장 중요한 게 바로 화장실이다.

한국은 어디서나 무료 화장실이지만 외국은 화장실 사용에 인색하다. 유럽에 가면 그 많은 성당에 화장실이 설계된 곳이 단 한 군데도 없었다. 다들 예배 보다가 볼일 보러 어디로 가는 걸까? 이스탄불에 있는 모스크 역시 화장실이 없거나 돈을 받는다. 하지만, 슐레이마니에 모스크 화장실은 무료인 데다가 깨끗하게 관리가 잘 되고 있으니 여기서 급하지 않더라도 무조건 화장실에 가야 한다.


슐레이마니에 모스크는 건축가 미마르 시난이 설계하고 건축했다.

미마르 시난은 이슬람 문화권 최고의 건축가로 굉장히 유명한 인물이다. 미마르 시난은 수많은 건축물을 남겼지만 슐레이마니에 모스크를 가장 좋아했다고 한다. 그는 아야 소피아를 참고해서 이 모스크를 짓게 되었다. 하지만 아야 소피아가 정교회 특유의 이콘과 모자이크로 화려하다면 슐레이마니에 모스크는 훨씬 단아한 느낌이 난다.


2014년엔 기도 시간이라고 문이 닫혀 있어서 못 들어갔다. 엄마는 이번에도 시간이 안 맞으면 내부를 못 볼 수 있으니 나에게 꾸물거리지 말고 빨리 걸으라고 하셨다


지렁이 같은 글씨도 이제는 익숙하다. 미세먼지 없는 하늘이 정말 예쁘다



발 씻는 곳인데 나는 이곳을 지나칠 때마다 괜히 물 잘 나오나 수도꼭지를 틀어 본다


슐레이마니에 모스크 내부에 묘도 있다.


1600~1700년대 묘인데 관은 썩지 않고 어떻게 남아있는 걸까? 너무 궁금한데 물어볼 사람이 없었다


슐레이마니에 모스크 중간중간 출구가 있다.

출구도 아무 생각 없이 나가면 길을 못 찾으니 제대로 알고 나가야 한다. 나는 그냥 엄마가 나가자고 하는 쪽으로 나갔다. 그래야 길이 틀려도 엄마한테 원망을 덜 듣는다.


이런 돌계단을 우리는 정말 좋아한다


저 멀리 이스탄불 시내가 보이고 골든혼도 보인다. 풍경이 최고이니 모스크에 관심이 없어도 경치를 보러 이곳에 꼭 방문하자


다음 코스는 발렌스 수도교였다.

아까 엄마 손잡고 그냥 빠져나온 출구에서 우리는 잠깐 헤매다가 그냥 큰길로 나가기로 했다. 이쯤 되면 수도교가 보여야 하는데 사방을 둘러봐도 수도교 비슷한 게 안보이자 엄마는 당황하기 시작했다. 여행 와서 길을 잃어도 '별 수 있나'라는 생각을 가진 나랑 엄마는 이렇게 다르다. 나는 전혀 당황하지 않는다. 그냥 엄마 손잡고 골목보단 큰길로 다니자고 길을 안내하는 순간 저~~~~~~~~멀리 수도교 머리가 보였다.


엄마 : 아이고 네가 찾았구나! 바로 코앞에 두고 몰랐네

Sorita : 엄마, 여기서 수도교 꼭대기만 보일 정도면 ㅈㄴ 먼 거리예요

엄마 : 그래도 여기까지 왔는데 가봐야지 


엄마가 가자고 하면 난 무조건 간다.

한 40분을 걸었나... 드디어 수도교에 도착했다.


힘들게 왔는데 공사 중이었다. 9년 전에는 수도교를 만져볼 정도로 가까이 갔었는데 너무 아쉬웠다. 이스탄불은 현재 대대적인 보수공사 중이다


발렌스 수도교는 로마 황제 발렌스의 지시로 세워졌기 때문에 발렌스 수도교라고 한다. 현재 이 수도교는 사용되지 않고 아래로 차만 지나다닌다


엄마랑 수도교 첫 시발점부터 남아 있는 끝부분까지 꼼꼼하게 살펴본 후 트램을 찾아 언덕길을 한참 내려왔다. 한 50분 걷자 큰길이 보였고, 드디어 멀리서 트램이 지나가는 것을 발견했다. 낯익은 그곳은 바로 우리가 공항버스를 내렸던 그 트램 정류장이었다. 온 김에 엄마는 한국에 돌아갈 때 어디서 버스를 타야 하는지 다시 한번 확인하셨다.


에너지 소비가 많았는지 엄마는 지나가다가 홍합밥을 발견하셨다.

먹고 가자는 말씀도 없이 가게 앞에서 떠날 줄 모르고 서 계시길래 저녁을 여기서 먹고 가자고 제안했다. 9년 전에 엄마가 홍합밥이 차고 맛이 없었다고 하셨는데 이번에 다시 도전해 보실 거냐고 물었더니 몇 개만 먹어보자고 하셨다.


홍합 큰 사이즈로 10개와 석류주스 2잔 주문했다. 총 120리라로 만원 정도다


나는 홍합밥을 정말 맛있게 먹었는데 엄마는 이번에도 밥이 차고 홍합이 거의 안 들었다면서 3개만 드시고 더 먹기를 거부하셨다. 엄만 어렸을 때부터 소고기만 드시고 (아빠랑 결혼하고 나서 처음 삼겹살을 먹어봤다고 하셨다) 부유하게 자란 탓인지 찬밥 더운밥 안 가리는 나랑 이럴 때 비교가 되더라.


트램을 타고 호텔로 돌아가기 전 엄마는 이집션 바자르에 한번 더 가길 원하셨다.

트램을 타고 창밖을 구경하다가 우리는 시르케지 역에 내려서 오리엔탈 특급열차 살인사건의 배경이 되는 곳을 가보기로 했다.


어렸을 때 오리엔탈 특급열차 살인사건 영화를 보다가 너무 길어서 끝까지 본 적이 한 번도 없다.

그래서 지금도 결말이 뭔지 정확히 모르겠다. 탐정이 부자 할머니와 사람들을 추궁하면서 범인을 밝혀내는 과정만 기억이 난다.


마치 영화 세트장 같은 시르케지역이다


내부에 열차 박물관도 있는데 무료니까 꼭 들어가 보자.

9년 전에는 늦게 가서 문이 닫혀 있었다. 들어가면 귀여운 꼬마열차와 옛날 사진들 그리고 오래된 자료가 많다.


아기자기한 박물관이 정말 예쁘다


옛날 대합실이었다. 1898년 파리에서 출발했던 초특급 호화열차의 종착역에 나도 두 번 와 봤네


시르케지역 근처에 이집션 바자르가 있다.

우리는 또 31번 가게로 향했다. 여기가 가장 싸고 서비스도 잘 준다. 사실 나는 해외 출장을 다니면서 해외 법인에서 함께 일할 사람들을 스카우트하러 다니기도 한다. 31번 가게 사장님도 스카우트 대상 중 하나였다. 내 명함을 주려다가 그냥 사장님 명함만 2개 받고 나왔다


백종원 덕분에 유명해진 카이막이다. 솔직히 맛있다! 그러니 여기서 꼭 사자! 31번 가게에 천연 향수도 판다. 향이 정말 좋으니 필요하면 여기서 사기


엄마가 근처에 봐 둔 모스크를 가고 싶다고 하셔서 2kg 넘는 짐을 들고 이동했다.


또 1700년 대 관이 있다. 석관도 아닌데 관이 썩지 않다니 도대체 정체가 뭘까? 왠지 관을 열면 1700년대의 시신도 있을 것 같다


푸른색 타일로 유명한 모스크가 있다고 해서 마지막으로 이집션 바자르 안에 있던 모스크로 출발했다.


모스크는 남녀 차별이 심해서 여자는 구석에서 따로 기도를 올린다. 그래서 푸른색 타일 모스크는 가림막 틈새로 겨우 봤다. 남자 기도하는 곳에 타일 모스크가 예쁘게 장식되어 있더라


오늘은 마지막으로 하맘 하는 날이다.

하맘은 정말 기회가 되면 꼭 해봐야 한다. 몸을 따뜻하게 데웠다가 답답하면 찬물을 틀어서 몸을 식히고 다시 대리석 침대에 누워서 땀을 쭉 빼면 하루의 피로가 싹 없어진다. 나중에 돈 많이 벌면 집 안에 하맘을 두고 싶을 정도다.


오늘도 하맘을 통째로 빌려서 엄마랑 둘이 들어왔다. 나는 가운을 벗었기 때문에 엄마 사진만 올리겠다


튀르키예에서 가장 좋았던 것 중에 하나가 하루의 끝을 하맘으로 장식했던 것이다.

개인적으로 반신욕보다 천 배 더 좋았다. 하맘은 진짜 강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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