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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문간방 박씨 May 07. 2023

페루는 어째서

리마에서의 혹독한 신고식

3시간의 기다림 끝에 드디어 나는 페루 리마로 향하는 비행기에 탑승했다.


밤 비행기라고 전부 재우려고 그랬는지 불을 다 꺼버렸다


한국은 새벽 시간이었다.

엄마께 이제 페루로 이동한다는 메시지를 남기고 나는 콜롬비아 메데진을 떠나 3시간 40분의 비행 끝에 리마에 도착했다.


내가 타고 온 비행기다. 기내식은 감자칩하고 물을 주더라. 배고파 죽는 줄 알았다


혼자서 페루에 도착했는데 전혀 무섭지 않았다.

지금으로부터 9년 전 페루에 몇몇 사람들과 출장을 왔던 기억을 떠올리며, 그때 혹시 내가 뭐 흘리고 간 건 없었는지 바닥도 살폈다.


입국 심사의 줄은 다행히 그리 길지 않았다


30분을 기다린 끝에 내 차례가 된 입국 심사는 3분도 안 돼서 끝났다.

짐을 찾으러 나와보니 그제야 9년 전 이곳에서의 일들이 떠오르기 시작했다. (그때는 5명이 함께 한 출장이었다. 그런데 이 공항에서 대단한 에피소드가 펼쳐지는 바람에 3시간을 공항에서 발이 묶였었다)


콜롬비아에서 부친 내 수하물 2개가 무사히 나오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기다렸다. 다행히 내 짐 2개가 약간의 시차를 두고 나왔다


이제 공항 밖으로 나가면 나를 픽업 나온 호텔 직원의 차를 타고 내 숙소로 이동하면 되는 일이었다.

리마는 특히 관광 도시이기 때문에 호객꾼들이 상당히 많다. 마스크도 쓰지 않은 채 본인 택시를 타라고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던 택시 기사들을 전부 뿌리친 채 나는 호텔 직원을 기다리고 있었다.


그런데 아무리 기다려도 호텔 직원이 보이지 않았다.

살펴보니 이 공항의 출구는 여러 개인데 나와 만나기로 한 직원이 몇 번 출구에서 기다리는지 나로서는 아무 정보가 없었다.


리마 공항은 9년 전이나 지금이나 변함이 없었다. 출구는 내가 나오고 싶은 곳으로 나오면 되는 곳이라 사전에 약속하지 않으면 절대 상대방을 만날 수 없다


그때 말끔하게 택시 기사의 복장을 한 현지인이 나에게 다가왔다.

그는 내 수하물 2개를 뺏더니 나를 데리러 왔다고 본인을 소개했다.


나 : 네가 **호텔 직원이니?

택시 기사 : 응 맞아. 너 픽업하러 왔어

나 : **호텔 맞는 거지?

택시 기사 : 응! 맞다니까


나는 그의 복장과 차를 보고 의아했다.

그는 호텔 직원의 옷을 입지 않았고, 호텔 버스가 아닌 택시일까? 그래서 사전에 그에게 3번을 확인했지만 그는 본인이 맞다면서 얼른 차에 타라고 했다.


인간이란 어리석어서 상황을 합리화하려는 경향이 있는 것일까?

나는 호텔에서 택시를 불러서 공항으로 보냈을 거라는 나름의 결론을 내린 채 아무 의심 없이 이 택시를 탔다. (실제 공항 앞에서 20분 이상을 기다렸지만 호텔 팻말을 들고 나를 기다리는 직원은 아무도 없었으니까)


택시 기사는 굉장히 활발한 사람이었고, 내가 귀찮을 정도로 이런저런 질문을 해대기 시작했다.


택시 기사 : 페루는 처음이야?

나 : 아니, 9년 전에 왔었어

택시 기사 : 와우! 그 후로 한 번도 안 왔던 거야? 페루에 다시 돌아온 것을 환영해. 마추픽추도 보러 가니?

나 : 아니, 일주일 정도 있을 거라 리마에만 있을 거야

택시 기사 : 이런... 마추픽추는 꼭 가봐야 하는데...


9년 전 출장으로 마추픽추에 이미 방문을 했지만 택시 기사와 사사건건 대화를 이어나가는 것이 몹시 귀찮았다.

그런데, 택시 기사가 갑자기 속력을 늦추더니 두꺼운 영수증을 꺼내면서 나에게 호텔 주소와 내 이름 그리고 전화번호를 적으라고 했다. 그 옆에는 USD 80이라는 금액이 적혀 있었다!


나 : 이봐! 호텔 주소 안다면서?

택시 기사 : 응, 아는데 다시 한번 알려줘

나 :......


상황이 상당히 이상함을 이제야 깨달은 나는 당혹스러움과 동시에 화가 나기 시작했다.

그는 호텔 직원도 아니었고, 호텔과 연계된 택시도 아니었다. 나에게 거짓말을 해서 내 수하물 2개를 가로채듯이 끌고 가 트렁크에 실어 놓고는 나를 태운 채 무작정 리마 시내로 진입을 했던 것이다.


일단 나는 호텔 바우처를 꺼내서 그에게 건넸다.

그는 호텔 주소를 내비게이션에 하나씩 느리게 찍고는 금액은 USD 80이라고 한번 더 강조했다. 그렇게 우리의 대화는 멈췄다.


한국에서 쓰레기 같은 배임과 횡령범들을 겪은 나로서는 타국에서 또 다른 사기꾼을 만났다는 사실에 화가 났다. 대한민국에서 이 정도 경험을 한 내가 이런 3류 택시 기사한테 속아 넘어가서 엄한 차를 탔다는 게 믿기지가 않았다.


나 : 야! 너 호텔 직원 아니지? 너 왜 거짓말했어?

택시 기사 : 뭐라고? 못 알아듣겠는데?

나 : 야! 네가 호텔에서 픽업 나왔다고 했잖아? 근데 네가 거짓말해서 내가 이 택시를 탔는데 요금이 USD 80이라고?

택시 기사 : 이것 봐! 내가 널 기다리느라고 이미 지불한 공항 주차료와 톨게이트 비용이야. 영수증 보라고......


참고로 페루와 콜롬비아의 화폐 단위는 미국 달러와 동일하다.

내가 그에게 이곳이 출장이 아닌 관광을 왔다고 처음에 소개를 했기 때문에 그는 내가 무슨 핫바리 정도라고 생각했을지도 모르겠다.


나 : 이봐! 이거 다 더해봤자 미국 돈으로 USD5잖아

택시 기사 : 몰라! 어쨌든 너는 USD80 내야 해

나 : 나 돈 없어.  (실제로 현금은 USD 200 이 있었다) 네가 나한테 돈 받고 싶으면 USD 30 까진 줄게

택시 기사 : 그건 말도 안 돼. 무조건 USD 80이야

나 : 야!!!! 너 때문에 정작 나 픽업 나온 호텔 직원은 지금 공항에 있는 거잖아!

택시 기사 : 그럼 공항으로 지금 돌아갈까?

나 : 어! 당장 핸들 꺾어서 공항으로 돌아가!


택시 기사는 할리우드 급 액션으로 깜빡이를 켜더니 공항으로 돌아갈 연기를 하고 있었다.

하지만 그는 백미러로 계속 내 눈치를 보면서 깜빡이만 켠 채 200미터 이상을 직진하고 있었다.


영화에서 보면 이럴 때 주인공이 운전석 핸들을 확 꺾어버리던데......

그래도 참자. 나도 죽을 수 있으니까......

이건 영화가 아니야...


시간을 보니 페루 시간으로 새벽 12시가 넘었다.

나는 그에게 USD 30 이상 못 주겠다고 강하게 나섰고, 그는 더 이상 못 가겠다면서 길가에 차를 세웠다.


나 : 그러니까 왜 거짓말을 했어. 너는 호텔 직원이 아니잖아. 네가 처음부터 거짓말을 해서 이렇게 된 거잖아

택시 기사 : 네 호텔까지가 워낙 먼 거리라 USD 80을 받아야 해


이 미친 택시 기사는 이제 아예 동문서답을 하기 시작했다.


그때 마침 거래처에서 내가 호텔에 잘 도착했는지 안부 전화가 왔다.

나는 이 모든 상황을 거래처 직원에게 설명했고, 그녀 역시 굉장히 당황해했다. 그녀는 택시 기사와 통화를 한 끝에 USD 40에 합의를 보고 호텔까지 이동하기로 했다.


하도 기가 차서 사기꾼 사진까지 찍었다. 작년엔 콜롬비아 놈들이 속 썩이더니 올해는 페루 놈이 내 발목을 잡는구나


호텔 카운터에 도착하자마자 나는 호텔 픽업 서비스가 얼마나 개판이었는지 일장 연설을 늘어놓은 후 내 방으로 올라왔다. 참고로 공항에서 호텔까지 택시비가 USD 40이면 아주 나쁜 편은 아니다.


내 호텔방은 꽤 좋았지만 화가 너무 나서 방이 눈에 들어오지도 않았다.


내가 6일 간 일할 책상과 휴식을 취할 침대다


반신욕을 하기 위한 욕조인데 자쿠지라 거품 목욕이 가능한 곳이었다


한국에서 챙겨간 입욕제를 가득 풀어서 마음을 진정시키려고 했지만 물이 너무 뜨거워서 족욕부터 시작했다


스파를 하면서 정현종 시인의 방문객을 떠올려봤


사람이 온다는 건
실은 어마어마한 일이다
그는
그의 과거와
현재와
그리고
그의 미래와 함께 오기 때문이다
한 사람의 일생이 오기 때문이다


작년에 나는 뉴스에 나올 정도로 세상을 뒤흔들고 균열을 낸 수많은 문제적 인간들을 만났다.

7명의 횡령범들은 10년 동안 고결한 부화에 성공했지만, 11년 후 아예 박살이 나 버렸다.


엄청난 금액을 종교 기관을 통해 돈세탁을 하고도 주님께 전부 빌어서 회개했으니 본인은 떳떳하다고 말하던 한 사람이 있었다. 그런데 그의 인생이라고 내가 쉽게 판단할 수 있을 것인가? 하지만 그들이 만들어낸 흉악한 파괴와 균열은 또한 미세하게 나의 인생에도 영향을 미쳤다.


모든 사람의 인생은 존재만으로도 다 가치 있는 법이라고 누가 그랬는지 멱살을 잡고 따지고 싶다.


작년부터 많은 사건을 경험한 나는 인생의 중요한 깨달음을 얻었다.

국적을 불문하고 이 세상에 오지 말아야 할 사람들은 분명 존재한다고!


별 잡놈 하나 때문에 페루 1일  새벽부터 큰 곤욕을 치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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