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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앤 쑤 Aug 24. 2020

잠 못이루는 밤

어떤 생각에 괴로와서 잠을 못이룬다는 걸

처음 경험한 건

고등학교 1학년 때였다.

당시 함께 버스를 타고 다니던 반친구들이 여럿 있었는데

그 중 한 명은 아파트 같은 동에 사는 친구였다.


그 친구를 어떻게 묘사하면 좋을까.

이전에 보지 못한 독특한 캐릭터의 아이였다.

생긴 건 시골 애처럼 촌스러운 편이고

말하는 것도 어떻게 보면 약간 아줌마처럼 떼뗴거리면서 말했다.

딸만 넷인 집의 둘째로

아버지가 예술 쪽 일을 하셔서 중학교 까지도 경제적인 어려움이 있다가

갑자기 집안 형편이 폈다.

그 애 막내 동생은 그야말로 늦둥이라 집에 가면 엄마를 도와 아이를 돌보기도 하는데

천성이 밝고 거칠 것이 없는 편이라

친구들을 데려가서 놀면서 동생을 돌보기도 했다.

같이 어울리는 친구들은

그 애가 가진 특유의 유머 감각과 쿨함에 매료된 거 같았다.

나는 늘 그렇듯 어떤 사람에게 홀릭이 잘 되지 않는 편이라

집에 같이 가게 되고 다같이 어울렸지만

으레 적당한 거리를 두기도 했고,

뭐랄까, 그녀들은 시골출신 친구들이 보여주는 거 같은

털털하고 경계를 맘대로 드나들며 상대에게 농담을 거는 식의

과격한 친근감을 과시하곤 했다.

나는 그런 게 천성적으로 잘 안되는 사람이다.

어쩄든 그 그룹에 껴주고 안 껴주고는

그 친구가 최종 결정권자인 듯 했다.

나는 그 무리와 아무 공통점이 없는데(그들의 공통점이 뭐였을까? 뭔지 모르는 공통점이 있었다)

그냥 같이 우르르 하교길을 오곤 했다.

어느날 집에 오는데

그 아이가 뭐가 맘에 안 들었는지 나를 조용히 제외시키고 있다는 게 느껴졌다.

그러나 그녀의 이미지는 말하자면 모든 이에게 너그럽고 넉넉한 사람으로 통했다

누구든 그녀의 집에 간다고 하면 가서 벽장에 있는 엄청난 비디오를 맘대로 꺼내 틀고

소파 위에서 뛰고 놀다가

또 벽장에 있는 여러 가지 라면 중에 골라서 끓여 먹을 수 있게 하는 하루 종일 놀게 해주는

그런 아이 말이다. 친구가 경제적으로 좀 어려운 애일수록 더 너그러웠다.

아니 너그럽고 자시고가 아니라 그냥 천국 비슷한 곳이었다.

그녀는 천국의 주인이었다.


집으로 오는 길에 왁자지껄 웃긴 얘기를 하는데

웃긴 얘기하면 또 그녀 차례지.

한바탕 그녀가 내 놓은 재밌는 얘기에 아이들이 저마다 한 마디씩 하는데

나도 웃으며 입을 벌리려는 순간

그녀가 잽싸게 화제를 돌리는 것을 보았다.

집으로 오면서 내내 같은 일이 일어났기에

그저 우연이 아님을 알게 되었다.

이야기는 계속 그 애가 주도권을 잡고 있었고

모두들 그걸 원하기도 했다.

그날 역시 그녀의 집에 여러 명이 가려고 따라왔는데

나보고 같이 가자면 웃는 그녀의 얼굴에 하마터면 소릴 지를 뻔 했다.

예의 그 친절한 웃음으로 몇 마디를 건네면서

자신의 너그러움을 과시하듯 나를 한번 챙기고 우르르 자기 집으로 들어가버렸다.

나는 바보가 된 기분이었다.

모두들 웃을 떄 나만 웃을 수 없게 만드는 그 교묘한 따돌림.

아무도 눈치 채지 못하게 나를 외롭게 만들어버렸다.

 

그 날 나는 저녁을 먹지 못하고 침대에 누워 분노의 엎치락 뒤치락을 했다.

태어나서 그렇게 큰 분노는 처음이었다.

밤새토록 혼자 화를 내고 반격을 하고 그 애 얼굴을 떠올리면서 치를 떨었다.

나중엔 뼈가 아프고 그 애를 다시 보고 싶지 않다고 생각했다.

내일 학교를 어떻게 가나. 그 애가 내 앞에서 아이들 앞에서 좋은 사람인 척 하고

아이들이 그 애를 좋은 사람으로 알고 따르는 걸 어떻게 보나.

속이 뒤틀렸다.

한번도 괴로운 생각으로 잠을 못 이룬 적이 없었다.

늘 오는 잠을 쫓으면서 라디오를 더 듣거나 레코드 판을 올려놓고 남몰래 만끽하던 밤 시간이

그토록 저주스러운 건 처음이었다.


그 다음 날 어찌 되었는지는 기억이 안난다.

나는 별 수 없이 아침에 일어나 밥을 먹고 학교를 갔을 것이다.

아마도 나는 그 애와 엮이고 싶지 않아 다른 아이들과 같이 하교를 하거나 혼자 하교했던 것 같다.

외로움은 무서운 것이다.

그래서 선뜻 자의로 선택하기 힘들다.

그런데 내가 선택한 외로움은 고요하고 처량하지만

여러 명 안에서 배제되고 존재가 무시되며 겪는 외로움은 나의 영혼을 숨막히게 한다.

그때 나는 알아버렸다.

그런 외로움은 누구도 겪어서는 안된다는 걸.


그리고 시간이 지나 그 애나 그 애 무리와도 별 일 없이 같이 놀기도 하고

졸업 후엔 동창모임이라고 모여서-여전히 그 애 집에서- 신나게 육아 고민을 나누기도 했다.


그 애나 그 무리가 나보다 특별히 나쁘거나 혹은 더 낫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나도 어쩔 수 없는 인간이니까 외롭고 나눌 사람이 필요하고 옆에 있으면 그렇고 그런 사람들과 교제를 한다.

졸업 후 한참 만에 만났을 때 그 애는 건강 문제가 생겨 여러 건강식으로 살을 뺀 후였다.

그녀를 보니 표정에서 뭔가 거품이 빠진 거 같은 느낌도 있었고 당시 유전병으로 고생한 내 조카 얘기를 듣더니 진심으로 걱정도 해주었다.

생각해보면 당시에 그렇게 죽을 것 같이 화가 나고 괴로왔던 일도 별일이 아닐 수도 있다.

내가 제대로 의사 표시만 해도 상황이 달랐을 수도 있으니까.


그 후 내가 겪은 수많은 불면의 밤들. 분노에 차서 잠 못이루었던 일들은 아예 설명도 불가하다

내 인생에 그보다 괴로운 일이 훨씬 많을 거라는 걸 그땐 알수도 없었으니.


놀라운 건 아침이 되니

분노가 이슬처럼 스러지면서

일상의 힘이 나를 일으킨다.


어제밤 미워하던 사람을

아침에 떠올리니

좋은 기억과 감사가 올라온다.

그 사람이 진정으로 의도했든 아니든

나라는 사람은 타인의 도움을 먹고 살 수 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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