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2살이 되어 나는 합격 연락을 받았다. 합격이 되어도 문제, 안되어도 문제인 회사의 최종 합격 연락이었다. 지금 가진 대리 직함과 높은 연봉을 포기하고 다른 직무로 새로운 도전을 시도하는 것은 불안하고 무서웠다. 나는 포기하는 것이 크더라도 P 회사는 벗어나고 싶었다. 그렇지만 나에게 퇴사의 선택지가 이직뿐이라는 게 문제였다.
나는 백수가 되는 것이 정말로 두렵고 불안했다. 당장의 월세와 카드값과 결혼에 대한 압박감에 경제 활동을 쉬는 선택지는 없었다. 오갈 데 없는 나를 품어주는 고향도 없었으니까. 그래서 나는 다른 회사로 환승을 해야 했다. 이직은 쉽지 않았다. 다음 회사로 합격은 했지만 P사에서 나를 괘씸히 여겨 퇴사 처리를 미루었다. 우린 널 놓아주지 않을 테니 거기 가지 말고 계속 내 곁에 있으란 의미의 협박도 했다. 사규는 근로자보다 위에 있었다. 나는 퇴사냐 백수냐 잔류냐라는 혼돈에 빠졌다.
나는 혼돈을 눈물로 쏟아냈다. 3일 동안 붕어 입같이 눈두덩이가 부어있었다. 눈물은 혼돈의 해결책은 아니었다. 생각을 하자. P사에서 과열된 모터는 터지기 일보 직전이다. 퇴사 번복은 없다. 늦어진 퇴사 처리로 새로운 직장에 입사 처리가 안되면? 대구에 다른 회사는 없다. 32살 여자는 신입사원으로 마지노선이다. 백수는 두렵다. 이직을 해야 한다. 결론이 나왔다. 나는 정에 호소하며 P사 사장에게 읍소했다. 하루 만 번의 마우스질로 너덜 해진 손목을 핑계 삼아 퇴사하게 해달라고 철저히 을이 되었다.
이놈의 P. 당당히 나가려던 그림은 일그러졌지만 정은 통했다. 나의 간곡함에 P사는 대인배처럼 나를 놓아줬다. 꼭 내 인생을 망치러 온 구원자 같았다. 혼돈도 결국 끝이 났다. 그 혼돈은 다음 해에 몰리에게도 반복되었지만... 혼돈 앞에서도 굽히지 않는 무언가가 있으면 된다. 그러면 이긴다. 난 이직에 성공했으니 행복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