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왕과 사는 남자]를 보고
단종에 대한 이야기는 역사에 그리 크게 나오지 않는다. 그저 ‘수양대군이 단종을 몰아내고 왕위를 차지했다.‘는 한 줄로 이해할 뿐이다. 그래서 이 영화를 보러 가면서도 크게 기대를 하지 않았다. 그저 약한 영웅에서 뛰어난 연기를 선보인 박지훈이 나온다길래 궁금해서 보러 간 것뿐이다. 실제 영화를 보면서도 갑자기 너무나 CG 같은 호랑이의 등장에 당황하고, 길었던 영화를 최대한 짧게 만들려고 했던 건지 장면의 전환이 ’엥, 갑자기 이렇게?‘하는 부분이 있었다. 하지만 다른 관람평들처럼 영화가 끝나고 나니 ‘10점 만점에 9점입니다.‘라는 마음이 절로 들었다. 영화가 끝난 후에는 역사를 다시 찾아보게 되고 영화의 장면들을 곱씹게 되었다. 자꾸 생각이 났다. 그렇게 나는 이 영화를 몇 번이나 더 보게 되었다.
이 영화가 계속 생각나는 이유는 오랜만에 얼마나 많은 의미를 품고 있는지, 어떤 멋진 미장센이 있는지, 얼마나 멋있는 액션과 감독의 숨겨진 의도가 숨어 있는지 등의 분석과 평가보다 영화 자체의 따뜻하면서도 한 많은 이야기가 빛나기 때문이다. 최근의 작품들은 이렇게 피로했던 것 같다. 영화가 끝나면 평론가들의 분석이 이어지고 얼마나 대단한 영화를 만들었는지 평가가 난무했다. 넷플릭스 같은 OTT플랫폼에 들어간 작품들은 재미있지만 너무나 거창하고 화려하다. 그런데 이 영화는 우리 역사에서 모두 알고 있는 이야기이지만 사람들이 잊어버린 이야기가 사실 정의였다는 것을 일깨워주었다. 영화에 나오는 사람들은 따뜻하다. 역사라는 것도 사실 사람의 이야기라는 것을 실감케 한다. 이 영화를 만든 감독님의 따뜻한 시선을 처음부터 끝까지 느낄 수 있다.
유별나게 이 영화를 보면서 생각난 사건이 있었다. 단종이 결국 유배형을 받고 성을 나갈 때, 백성들이 모두 울며 곡하던 장면에서부터였다. 기억 속 어느 날이 떠올랐다.
그날은 여느 아침과 비슷했다. 느지막이 일어나 인터넷을 켰는데, ’ 노무현 대통령 서거‘라는 뉴스 제목을 보았다. 충격이었다. 그것도 절벽에서 투신하시다니. 믿을 수 없었다. 근래 노무현 대통령이 계속 정치적인 공격을 받고 감옥에 갈 수도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지만, 이렇게 될 줄은 몰랐다. 노 대통령은 내가 사회와 역사에 대해서 인지를 했던 나이에 대통령이셨던 분이다. 그 전 대통령들은 아직 내가 멋모를 시절의 사람들이라 마치 역사같이 생각하고 있었다. 그런데 노 대통령은 나의 고등학교 시절 검사들과의 대화, 수도 이전, 화폐 개혁 시도, 탄핵의 위기, 최초의 촛불 시위까지 많은 일들을 만들어낸 살아있는 사람이었다. 내가 현실에서 겪은 최초로 개혁적인 사람이었다. 그런데 그분이 돌아가셨다니! 그것도 스스로. 나는 그분을 엄청 좋아하지도 않았고 당시 정치에 크게 관심이 없었다. 언론에도 그분에 대해 매일 안 좋은 이야기만 나오니 자연스레 멀어졌다. 다만 대통령 임기가 끝난 후 봉화마을에서 소탈하게 사시는 모습이 참 좋았는데 이런 일이 생겼다는 게 믿어지지 않았다.
다른 사람들도 비슷했던 것 같다. 당시 mbc에서 특집 프로그램이 생겼다. 노 대통령의 그간의 행적과 사람들의 슬픔, 장례를 치르는 사람들을 찍은 방송이었다. 그곳에 나온 유시민 님의 한이 서린 눈을 잊지 못한다. 슬픔과 분노가 가득 차 마음이 갈기갈기 찢어진 사람 같았다. 서울 광장에서도 많은 사람들이 울면서 그를 추모하고 노란색 물결이 일렁이던 게 눈에 선하다. 나도 함께 울었다. 그냥 눈물이 흐른 정도가 아니라 꺼억꺼억 소리를 내며 울었다. 나를 비롯하여 사람들은 왜 그리 슬퍼했을까? 그때 든 생각은 ‘정의가 무너졌다 ‘는 생각이었다. 공과 과가 어떻든, 노 대통령은 이 나라의 불의를 개혁하려고 했던 대통령이다. 김대중 대통령 다음에 두 번째 민주정부였다. 개혁을 하는 과정에서 수많은 반발과 사람들의 미움을 샀다. 어린 나이에 느끼기에도 자신이 개혁하려는 것을 그렇게 사람들에게 권위를 따지지 않고 쉬운 말로 말하는 대통령은 신기했다. 파격적이었던 검사들과의 대화에서는 무려 대통령을 검사들이 무시하는 장면을 보면서 묘한 불쾌감을 느꼈다.
내가 아무리 정치를 몰라도 대통령 임기가 끝난 후에 검찰과 언론의 많은 공격이 이 사람이 검찰을 비롯한 기득권을 개혁하려고 했기 때문에 일어난 일어난 일이라는 것은 알았다. 전국에서 추모의 바람이 불었을 때, 다른 사람들도 그것을 느꼈던 것 같다. 단순히 ’ 대통령이 사망했다.‘가 아니라 기득권에 저항했던 ‘정의’가 무너졌다는 지울 수 없는 생각.
단종은 태조, 태종, 세종, 문종을 거친 완벽한 정통의 상징이었다. 단순한 정통이 아니라 고려 말기의 타락하고 부패한 나라를 개혁하고 조선이라는 새로운 나라를 만든 사람들의 후손, 그리고 그 정신을 이어갈 사람이었다. 이 과정에서 우리는 ‘한글’이라는 유일무이한 과학적인 글자를 선물로 받았다. 조선 초기에는 과거제의 시행으로 누구나 입신양명을 할 수 있었다. 노비였던 장영실이 우리나라의 과학을 발전시키는 역할을 하였다. 우리 역사 이래로 가장 파격적인 개혁이 이루어진 시대였다. 한글 창제를 함께 도왔던 문종의 아들 단종, 어렸을 때부터 총명하다고 기록되어 있는 단종은 할아버지 세종 대왕과 아버지 문종을 보면서 자랐다. 그런데 그가 과거 급제도 하지 못한 한명회의 농간과 그 시대 수재였던 금성대군, 안평대군을 비롯한 자신의 친동생을 죽여버린 수양대군에 의해 죽음을 당했다. 이때 조선의 개혁이 멈추었다. 단종의 폐위를 반대하고 저항했던 사람들은 모두 그 시대를 이끌어가는 젊은 학자들이었다. 우리가 아는 사육신과 생육신도 그런 사람들이었다. 그런데 그들의 자손들까지 죽음을 당하고 노비로 팔려가면서 이 나라의 아까운 인재들이 없어졌다.
수양은 자신이 왕이 되게 한 공이 있는 공신들을 무시할 수 없었다. 공신들의 아들들은 음서 제도를 통해 과거 시험이 아니고도 조정에 진출할 수 있었고, 많은 땅들이 공신들의 것이 되었다. 그들은 세금을 내지도 않았고 군역은 면제되었다. 그것이 전통이 되어 점차 나라의 세수가 줄게 되었고, 양반들의 권위는 더욱 공고해져 과거 시험은 양반만 볼 수 있는 시험이 되어버렸다. 신분제는 더 뿌리박게 되었고, 고려 말기와 조선 초기만 해도 비교적 높았던 여자들의 자리는 더욱 낮아지고 좁아졌다. 똑똑했던 대군들은 수양의 전철을 밟지 않게 하기 위해 바보가 되어야 했다. 조선은 그 후로 달라졌다.
조선의 왕들을 살펴보자. 한명회로 인해 죽음을 당한 폐비 윤 씨의 아들인 연산군은 많은 사람들을 죽였고, 자신의 형을 죽이고 왕좌를 차지했다는 의혹을 받는 영조는 자신의 아들인 사도세자를 죽였다. 정조가 개혁을 시도했으나 젊은 나이에 사망하였고 그 죽음도 타살이라는 의혹이 많다. 조선의 마지막 불꽃이었다는 소현 세자는 왕이 되지 못하고 하늘로 갔고, 그 죽음 또한 아버지 인조에 의한 것이라는 속설이 있다.
그래서 단종의 죽음은 단순한 죽음이 아니었다. 정의가 하잘것없는 사람들에 의해 무너지고 나라의 기둥에 금이 가는 일이었다. 그래서 세조 시대에 많은 사람들이 끊임없이 저항하고 다시 이 일을 되돌리려 애썼던 게 아닐까? 수양은 저항을 잠재우기 위해 그 사람들 주변 마을 사람들까지 모두 죽여버려 사람들의 피가 이곳까지 흘렀다는 ‘피끝마을’이라는 곳이 생겼다. 집현전 학자로서 세종 대왕에게 곤룡포로 덮임을 받는 영광까지 누렸던 신숙주는 쉬이 배반하여 잘 먹고 잘살아, 빨리 상해버리는 녹두나물은 그 이름이 ‘숙주나물’로 바뀌었다. 피끝마을과 숙주 나물의 어원이 아직까지 남아있는 것을 보면서 그때 조선 사람들의 분노가 얼마나 강하고 한이 컸는지 알겠다.
하지만 우리는 이 역사를 알면서도 승자인 수양의 역사를 더 많이 배웠다. 단종의 죽음과 그것이 조선에 미친 영향보다 세조의 업적을 배웠다. 사람들이 잊고 있었던 이야기를 장항준 감독이 영화로 보여주었다. ’ 실패한 정의라고 잊혀야 하는가?’라는 그의 질문이 우리를 일깨워주었다. 우리가 역사를 배우는 것은 역사는 반복되므로 현실에서 다시 같은 실수를 하지 않기 위해서이다. 노무현 대통령의 죽음도 실패한 정의였다. 518 민주화 항쟁도 마찬가지였다. 하지만 사람들은 그 원통함을 잊지 않았고 그 눈물들은 씨앗이 되어 우리나라는 최초로 친위 쿠데타를 시민들이 막아낸 나라가 되었다.
영화를 보면서 사람들은 함께 단종의 추모식을 치렀다. 사람들의 마음에 단종의 죽음에 대한 한과 분노를 일깨워, 실패한 정의 또한 역사에 기록되어 결국에는 성공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었다. 수양과 한명회는 사이버 부관참시를 당하는 굴욕을 겪고 있지만, 무엇보다 불의한 권력은 그 당시는 잘 살아도 결국에는 불의했다는 기록을 남기고야 만다는 의미를 준다. 수많은 역사서와 강의보다 이 영화 하나가 그 역할을 해내고야 말았다. 이 영화는 요즘의 많은 작품들처럼 화려하지 않다. 하지만 사람들의 마음을 움직인다. 그리고 계속 생각하게 만든다. 그래서 결국 사람들은 극장에 또 오고야 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