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르셀로나의 유서]를 읽고 두서없는 글

by 새벽

백세희 작가가 영면했다. 나는 그녀의 베스트셀러를 읽어보지 않았다. 단지 ‘죽고 싶지만 떡볶이가 먹고 싶어.’라는 제목에 깊이 공감했던 기억이 있다. 우울증 환자의 단상을 한 문장으로 서술했다는 생각에 좋았다. 이렇게 우울한 사람들도 잘 살아가고 있다는 것에 힘이 되었다.

그런데 그녀는 가버렸다. 얼마나 힘들었을지 내가 가늠할 수는 없다. 그렇지만 그녀는 나에게 준 희망도 가지고 가버렸다. 나는 그게 무섭다. 우울증 환자의 끝이 이 세상을 떠나는 것일까 봐 두렵다.

거참 공감능력이란 게 없다. 그녀의 명복을 빌어주고 이제 행복하시라고, 얼마나 힘드셨냐고 해야 하는데, 이렇게 희망을 주고 떠나버리면 어떡하냐고 원망의 마음이 든다. 그렇게 가버리는 건 너무하지 않냐고, 당신이 글을 쓰고 당신의 이야기를 해주는 것만으로도, 아니 그냥 살아있는 것만으로도 누군가에게는 희망을 주는 거였는데 이럴 수 있냐고 아우성치는 나의 시끄러운 마음만이 남아있다.

정말 인간이 이기적이다. 나는 내 이야기를 쓰고 소설을 써서 유명해지고 싶다. 그게 누군가에게 기쁨이 되고 희망이 되었으면 좋겠다. 아니, 그렇게 생각했다. 천박하게도.

사실 글을 쓴 것은 내가 살기 위해서이다. 이렇게라도 토해내지 않으면 내가 살 수 없으니까. 미칠 것 같으니까. AI고 뭐고, 그게 작가를 대체한다고 해도, 글을 써서 살아갈 수 있는 사람의 마음까지 살릴 수는 없을 것이다. 작가는 누가 읽어주길 바라는 것보다 자기가 그 글을 써서 살아가는 걸 목표로 하는 거니까.

그녀가 가고 마지막 책인 [바르셀로나의 유서]를 샀다. ‘아, 그때까지 살아있을 리 없는데.’라는 말은 마음을 후벼 팠다. 2025년 6월에 나온 책. 그녀는 이때 이미 준비하고 있었구나. 마지막을. 유서인 동시에 어쩌면 다시 살 수 있지 않을까 하는 마지막 몸부림이 아니었을까 한다. 한 문장 한 문장이 이해되었다. 교통사고 이후로 살이 쪄서 예전과 같은 외모로 돌아갈 수 없다는 것. 사실 그게 내 우울의 원인은 아닌데, 그걸 알면서도 ’ 침대 안이 가장 좋아’하고 있는 나. 하지만 동시에 징그러운 나. 어째서 남들처럼 살지 못하는 걸까?

그녀처럼 나도 여행을 갔다. 그때 나는 내가 뭔가 달라지길 바랐다. 첫 번째, 두 번째 여행은 나를 바꾸어놓았기 때문에 세 번째 여행도 그러리라 믿었다. 하지만 이번 여행에서는 한국에서의 일상과 별반 다르지 않았다. 미술관을 가고, 좋은 풍경들을 보았지만, 호텔로 돌아오면 집에서처럼 똑같이 침대 안에만 있었다. 여기까지 오면 글을 쓸 줄 알았는데. 나는 또 인터넷 커뮤니티와 유튜브를 보고 있었다. 그 안락함이 서서히 나를 죽인다는 것을 알면서도. 이 굴레에서 벗어나고 싶다. 그건 내가 여행을 간다고, 이사를 간다고, 학교를 옮긴다고 바뀌는 것이 아니다. 그냥 내가 지금 여기에서 결단을 해야 한다.

‘몰입’을 하고 싶다. 글 속으로 빠져드는 몰입.

그래서 이제는 꾸준히 써보려고 한다. 뭐가 되지 않아도 그냥 내가 하고 싶은 것을 해보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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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님이 언젠가 내가 갈 좋은 곳에서 마음껏 글을 쓰고 계시기를. 명복을 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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