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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문정 Jan 30. 2016

나와 싸우지 않아도 된다는 것

책 <별로여도 좋아해줘> 에서 하고 싶었던 말


<별로여도 좋아해줘> prologue


“~하면 행복할거야” “~하면 사랑받을 수 있을거야” 이 두 가지 가정법에 오래 사로잡혀 있었다. 행복하고 싶었고, 사랑받고 싶었다. 그러려면 지금의 나로는 불가능했다. 주변 사람들과 대중매체는 끊임없이 세뇌시키는 것 같았다. “지금과 전혀 다른 사람이 되어라. 그러면 사랑받고 행복할 수 있을 것이다”

인생에서 생물학적으로 가장 생기가 넘칠 때 남들을 부러워하고 나를 미워하는 데 너무 많은 시간을 썼다. 사람들은 저마다에게 달과 같아 밝게 빛나는 면을 보이지만 사실은 모두 어두운 절반을 안고 산다는 것을 그때는 상상하지 못했다. 나에게 얼굴과 몸은 꾸준히 관리하고 평가 받는 대상이었고, 의지는 싸워서 이겨야 하는 대상이었다. 육체는 결점투성이였고 정신은 개조가 필요한 것으로 자주 결론이 났다. 나는 나와의 싸움에서 항상 졌다. 그런 상황에서 자란 여자아이의 자존감이 높다면 그게 더 이상한 것 아닐까?

이 책의 거의 모든 내용은 20대 중반에서 30대가 되던 시기에 써졌다. 가장 극렬하게, 그동안 내가 믿어왔던 것들을 부정함과 동시에 나 자신과 화해를 했던 시기다. 요즘의 20대 중후반이란 우리 부모님 세대의 20대 초반과 비슷한 것 같다. 부모 세대와 결별하고 금전적으로나 정신적으로 독립하는 나이. 또는 그래야만 한다고 사회적인 압박이 있는 나이. 완전한 어른도 아니고 아이도 아닌 어정쩡한 나이. 본격적으로 취업과 결혼 소식이 들려오고 인생의 레이스에서 격차가 크게 나기 시작하는 나이. 이 길이 진짜 맞는 건지 기웃거리게 되는 혼란스러운 나이.

그 시기에 나는 많이 헤매었다. ‘인간은 노력하는 한 헤매인다’고 말한 괴테의 말을 응용하면 가장 많이 노력했다, 고도 말할 수 있을 것이다. 유년 시절 사람들이 ‘현실’을 가르쳐준답시고 나에게 툭툭 내뱉던 “여자라서 안돼” “기가 세서 문제야” “남자들은 너 같은 애를 좋아하지 않는다” “그런 건 돈 있고 빽 있는 사람들이 하는 거야” “어차피 안되니까 하지 마라” 같은 말이 오래된 벽지처럼 덕지덕지 붙어 있었다. 그 말들을 한 겹 한 겹 떼어내며 지나왔다. 그래서 나는 가난한 아이들일수록 폭력 성향이 높다는 식의 연구결과나 수저계급론의 구체적인 구분법 같은 이야기를 싫어한다. 어린 세대에게 그런 ‘현실’을 알려주어 좌절시키는 것이 무슨 의미가 있는가?



<별로여도 좋아해줘>는 다른 사람들이 애정없이 하는 말들을 진짜로 믿으면서 자라왔던 자존감 낮은 여자의 성장기다. 남에 대해서는 결과만 보지만 자기에 대해서는 모든 과정을 다 알 수 밖에 없는지라 자꾸 시시하게 느껴질 수 밖에 없다. 수영을 처음 배우러 가면 물에 뜨도록 허리에 보조기를 착용하고 손에도 보조기를 들게 된다. 물을 먹기도 하고 숨이 차기도 하고 발이 저려오기도 할 것이다. 그때 보이는 옆 레인의 상급반 사람들이 멋져 보이는 건 당연하다. 하지만 누구나 처음에는 그 시기를 겪을 수 밖에 없다는 것을 잊으면 안된다. 또 인간의 가치는 성취와 비례하거나 그에 절대적으로 연관되지 않으며, 나는 개별적인 나로서 존재 가치가 있다는 것을 이해해야 한다. 이걸 믿어야 다음 단계로 나아갈 수 있다. 책 제목인 <별로여도 좋아해줘>는 그렇게 허우적대는 자신을 믿어 달라는 부탁이기도 하다.

나 역시 이 말을 꾸준히 나에게 해왔다. 다른 사람들이 내게 말해주지 않아서 나만이라도 스스로에게 계속 해와야 했으며, 그 연습들이 결국 전보다 더 훨씬 단단한 사람으로 만들어 주었다는 걸 이제 더 확실히 알겠다. 다른 사람들의 인정에 매달리지 않는 것. 욕망에 솔직해지는 것. 외롭더라도 진실한 사람이 되는 것. 나에게 관대한 만큼 다른 사람들에게도 관대해 지는 것. 이것은 내 삶의 목표이자 앞으로도 계속 하고 싶은 이야기이다.




추천평

이 책은 삶을 말한다. 상처받기 쉽고, 털어 내기 쉬운, 좌절하기 쉽지만 다시 시작할 수 있는 삶. 삶은 경계가 없다. 기쁘기도 하고 슬프기도 하고, 사랑을 주기도 상처를 주기도 한다. 그렇기에 이 책은 경계가 없다. 삶은 그 감정의 깊이를 가늠할 수도 없다. 이 책은 ‘무경계 무제한 인생 에세이’다. 그녀가 살아온 삶을 들려준다. 그런데, 왜 ‘우리 모두의 삶’을 이야기하는 기분이 들까. 그녀의 글이 성별을 뛰어넘어 남자인 나의 가슴을 아리게 한다.
- 최민석(소설가)

‘edge’라는 말은 세련됨과 품위, 강단 등을 의미하는데, 동글동글했던 젊은 날을 갈고 깎아 오늘의 edge를 얻기까지의 치열한 과정이 엿보인다. 성장이 자아도취와 자조의 순환적 투쟁 속에서 이루어진다고 볼 때, 《별로여도 좋아해줘》는 생떼가 아닌 성장의 흔적으로, 여유와 용기가 담긴 유쾌한 선언이다. 두서없는 수다 속에서 공감과 위안을 얻는 ‘단톡방’이자, 두려움과 낯섦 속에서 뒤늦은 깨달음을 얻는 ‘구여친의 미니 홈피’다.
- 송재경 (’9와 숫자들’의 리더 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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